삶의 전환점은 새로운 역할에서 시작한다. 남자 친구에서 남편으로 남편에서 아버지로 역할을 수행할 때마다 삶의 패러다임은 바뀐다. 고여있지 않고 늘 깨어있으며 새로운 관점을 얻으려면 스스로 역할을 쟁취해야 한다. 역할은 누군가 자신에게 부여하는 게 아니다. 그건 나를 위한 역할이 아니다. 역할을 부여한 사람을 위한 역할일 뿐이다.
내가 아는 형은 원래 카페 매니저 일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 했다. 그 형이 구상한 사업은 어린이집의 노인 버전인 노인의 집이었다. 개념은 어린이집과 같다. 아침에 봉고차로 노인분들을 센터에 모시고 놀아주고 먹여주며 시간을 보내다가 자식들이 퇴근하고 오면 다시 모시고 가는 시스템이다. 이 사업을 구상한 건 순전히 형의 어머님이 외로이 집에 혼자 계신 게 마음에 걸려서다. 형은 사업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사회복지 공부를 하며 자격증을 땄고 제약회사 다니던 친동생과 함께 사업을 성공적으로 시작했다.
이 형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갑자기 광고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광고에 광자도 생판 모르는 형이었다. 그리고 그 형은 작지만 광고회사를 만들었다. 비록 대대행으로 일을 넘겨주며 바이럴 광고 정도 하는 회사지만 어쨌든 광고회사도 운영하고 있다. 이 형은 역할을 기다리지 않았다. 형은 스스로 역할을 쟁취했다.
타인이 나에게 부여한 역할은 모조리 박살내야 한다. 스스로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며 사는 게 인생의 재미다. 아침에 자기 집 앞을 쓸고 치우면 그때부터 환경미화원이 되고 글을 써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작가가 되는 거다. 출퇴근 길에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포토그래퍼가 된다. 회사에서 맛있게 커피를 내려 동료에게 건네주면 바리스타가 되는 거다. 누가 나에게 역할을 인정해 주지 않아도 내 역할은 내가 만드는 거다. 토니 스타크는 세계 최고의 무기 회사 CEO 였지만 그걸 버리고 아이언맨이 됐다.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영웅이 되라고 한 것도 아니다. 스스로 소명의식을 만들어 그걸 수행했다. 그리고 영웅이 됐다.
자신의 역할 스펙트럼 안에 있는 역할 감각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의 역할을 몇 가지로 단출하게 생각한다. 회사의 직원이자 아내의 남편, 부보님의 자식 그리고 누군가의 친구 정도다. 삶 속에서 우리의 역할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단지 누군가 그 역할을 인정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역할의 스펙트럼에서 지운다. 좋은 배우는 시나리오에 없는 역할을 스스로 만든다고 했다. 시나리오가 미처 묘사하지 않는 부분을 메우면서 분량을 늘리고 역할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역할 감각을 인식하고 있어야 그에 대응하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거기서 삶의 전환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