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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Aug 28. 2020

저승에 들고 가고 싶은 추억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

내 인생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다.  영화 내용은 단순하다. 이승과 저승의 중간지점인 림보로 죽은 자들이 모인다. 그곳은 이승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재연해주는 곳이다. 사람들은 행복했던 순간을 재연하며 그때의 기분 그대로 저승으로 넘어가 영원히 그 기억을 안고 무한한 시간을 보낸다.


이 영화의 전반부는 담당 직원이 죽은 자들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 걸로 상당 부분 차지한다. 모두 각자 행복했던 순간을 말한다. 하지만 한 남자는 행복했던 순간이 없다며 벽장 안에서 컴컴한 기억만 안고 저승에서 평생을 보낸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저승에 안고 가고 싶은 행복했던 기억이 딱히 없었다. 순간 번쩍했다. 난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 거지? 이 영화를 다 보고 든 생각은 하나다. 내가 죽었을 때 "당신이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젠가요?"라는 질문에 뭐를 골라야 할지 고민될 정도로 행복한 순간을 많이 쌓는 거다. 그 이후부터 내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바뀌었다. 이 영화는 무기력하게 살던 나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여자 친구와 몰디브로 여행을 갔었다.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 파란 바다를 보며 선베드에 함께 누워 있었다. 저녁노을 바람이 살살 불며 몸에 묻은 바닷물을 데려갔다. 평온했다. 순간 원더풀 라이프가 떠올랐다. 난 여자 친구에게 말했다. 나 죽으면 이때의 순간을 기억해서 저승으로 갈 거야. 내가 추천해서 함께 원더풀 라이프를 본 여자 친구는 자기도 그럴 거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난 이 순간을 저승으로 가지고 가지 않을 거다. 더 행복하고 더 좋은 기억을 앞으로 만들 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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