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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Jan 08. 2021

대화의 기본 전제

대학교 때 철학 교수님 연구실에 무턱대고 찾아가서 인사드린 적 있다. 으레 교수님이라면 뭐 힘든 거 없냐? 공부는 잘 되냐? 같은 질문을 하며 교수라는 본분에 맞는 정형화된 훈수 놀이를 했을 거다. 그런데 그 교수님은 자신이 최근에 산 아이패드 자랑을 하며 아이패드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자기가 요즘 앱 개발 공부를 하고 있는 데 어쩌고저쩌고 말하다가 자기가 학교 근처에 간 맛집 얘기를 막 했다. 수업 시간에는 이론적이고 정교한 논리로 강의를 이끌며 공부의 중요성을 말하시는 분이었는 데 막상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니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학생인 내가 자기를 어려워할까 봐 먼저 나를 배려하며 대화가 지루하지 않도록 노력하신 거 같았다. 


대화를 한다는 건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기본 전제다. 자신의 생각과 취향을 공유하며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걸 간접적으로 말하는 거다. 그분은 나를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대화를 시도하신 거다. 아이패드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말하고 앱 개발 공부를 하며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을 얘기해줬고 맛집을 소개하며 자신의 입맛을 알려줬다. 난 이 모든 것이 또 다른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꼭 A=A라는 걸 알려줘야지 교육자는 아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과 취향을 가감 없이 보여줄 수 있는 태도에서 또 다른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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