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림 이야기
어릴 적부터 손으로 하는 거라면 뭐든지 야물딱지게 잘했다.
중학생이 되고 화실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학창 시절 내내 늘 나와 함께 했던 그림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화실에 앉아 그림을 그렸고 그 흔한 사춘기도 모르고 지나가게 해 준 고마운 그림이다.
파리에서 보낸 대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그림과는 동떨어진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때부터 가끔 큰 목적 없이 전시회에 가는 정도였지 그림은 내 마음에서 떠나 있었다.
지금은 10살, 6살 두 아이 그리고 11살 냥이의 평범한 엄마인 나.
너무나 소중한 아이들이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엄마라 난 모든 게 서툴렀고 완벽주의적인 내 성격은 육아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알았고 좌절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다시 올 수 없는 그 시간들이 가슴 저미게 소중했고 한편으로는 눈물 나게 힘들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며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는 나 스스로를 살피고 챙기는 법을 잊고 살았다.
몇 해 전 지치고 힘들었던 몸과 마음이 나에게 신호를 보냈고 그렇게 몇 달을 많이 앓았다.
이후 우리 가족은 큰 아이 초등학교 입학에 맞추어 서울 옆 조그마한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자연이 곁에 있고, 공기가 맑고, 이웃들이 좋은 이곳에서 아이들이 등교한 어느 날.
집 정리를 하다 발견한 학창 시절 나의 화구 가방을 열어 보게 되었다.
굳어버린 팔레트 속 물감들, 많이 써서 모가 빠지고 닳은 붓.
그곳에는 어릴 적 나의 모든 열정과 추억들이 뒤엉켜 담겨 있었고 내 가슴속 어딘가에선 알 수 없는 뭉클함이 올라왔다.
아이의 스케치북을 꺼내어 팔레트와 붓을 들고 식탁에 있던 작은 식물을 그렸다.
오래도록 잡지 않았던 붓의 감촉, 물감이 붓에 스미고 또 물속에 녹아드는 모습.
오래전 잊고 지냈던 화실에서의 느낌들이 생생하게 다시 떠올랐다.
어쩜 그때의 기억은 수많은 세월이 지났는데도 이리 생생히 되살아 나는 것일까?
마치 오랜 시간 아무도 건들지 않아 수면 아래로 내려 앉았던 무언가가 누군가 무심코 휘저은 물결에 살며시 수면 위로 떠오르듯.
나는 그렇게 다시 붓을 잡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며 편안하고 집중되는 그 시간이 참 좋았고, 용기 내어 올린 SNS 속 옛 친구들의 '아직 사롸있네~'하는 장난 섞인 응원이 좋았다.
그렇게 어릴 적 지난 나의 시간들을 돌이켜 보며, 내가 꾸던 꿈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늘 나와 함께하며 내가 꾸었던 꿈.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미처 함께 챙기지 못했던 나의 꿈.
아직 뚜렷하지는 않은 꿈이지만, 나에게 평온함을 주는 그림을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어렴풋한 나의 꿈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곧 일 년이 된다.
바쁘고 지친 일상에서 내가 그림을 그리며 느끼는 편안함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이 공간이 그림과 함께 평온한 마음으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
누군가 나와 같은 마음, 같은 상황의 날들을 지나고 있을 때, 나의 그림과 글이 마음속 조그만 위로와 평안을 가져다줄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