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마티스 I 성모자 드로잉
큰아이가 태어나고 일주일쯤 되었을 때일까,
너무나 작은 아이의 오물거리는 입, 손짓, 발짓 그 무엇 하나 신기하지 않은 게 없었다.
아이를 안는 것도 어색한 초보 엄마인 나는 그 작고 소중한 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일 때면 가슴이 벅차올랐다.
모성애보다는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이 내 마음에 먼저 자리했던 것 같다.
잠을 거의 못 자가며 반쯤 뜬 눈으로 수유를 하면서도 아이 황달에 분유를 주면 금방 좋아진다는 조리원 원장님의 조언도 한 귀로 흘려들은 채 모유 수유만을 고집하던 나.
그때의 내가 지금 옆에 있다면 ‘쉬이 키워도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아이는 다 잘 크더라~’하고 말해주고 싶다.
별들에 둘러 쌓여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마음이 들어왔던 그 날.
집안에 온종일 붙어 있는 네 살 터울 남매는 티격태격 말다툼을 하고 싸우기 일쑤였고, 말리고 중재하고 혼내느라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던 그런 날이었다.
마음을 추스르려 화가들의 그림을 모아둔 서랍을 꺼내어 뒤적뒤적 정리를 했다.
복잡하고 답답했던 내 마음은 자연스레 단순하고 밝은 마티스의 드로잉에 이끌렸나 보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아이들 고모가 선물해준 안티-스트레스 차를 한잔 타 드로잉을 준비한다.
이 그림이 잠시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줄 것 같은 기분과 한 가지 색 드로잉이니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을 것 같아 시작하는 마음이 편하다.
나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타일 회사를 운영하셨다.
지하철 공간에 타일 벽화를 처음 시도한 사람이 아버지였다고 한다.
외국 출장을 다녀오시는 길에 아빠는 엄마에게는 예쁜 잠옷을, 나에게는 알록달록 예쁜 색연필을 사다 주시곤 했다. 그림과 음악, 사람들을 좋아하셨던 아빠는 예술을 깊이 알지는 못하시지만 늘 애착을 가지고 주변에 함께 두려고 하셨던 것 같다.
지금은 여든이 넘으신 우리 아버지, 그때는 늦은 저녁 술냄새를 풍기며 들어온 아빠가 잠든 척하는 나의 볼에 뽀뽀를 하고 가시면 그게 참 싫었는데,
생각해보면 이렇게 로맨틱하고 자상한 우리 아버지였다..
언젠가 아이들에게 쓰라고 무심코 건네주었던 그 오일파스텔을 아이들 서랍에서 찾아와 정리한다.
나의 어릴 적 그리고 아빠의 젊은 시절 모습 속 세월을 생각하며, 이미 짧아진 검은색 몽당 오일파스텔을 꺼내 조심스레 깎는다.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님 그리고 그 주위를 밝게 비춰주는 별들.
이 드로잉은 마티스가 노년에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 방스에 지어질, 로사리오 경당 벽면에 들어갈 성모자 이미지를 위해 연습한 여러 습작 중 하나이다.
마티스는 아버지의 뜻대로 법관이 되기 위해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법을 공부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법률사무소에서 서기로 일하던 중 급성 맹장염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그때 어머니로부터 화구를 선물 받았고, 그 순간을 이렇게 기억한다.
예전에는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화구를 손에 넣은 순간부터 나는 이것이 내 삶이라고 느꼈다.
그것은 엄청난 이끌림이었다. 나 자신이 온전히 자유롭고 홀로 평화를 누리는, 일종의 파라다이스를 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 마티스는 화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마티스는 강렬한 색과 빛의 야수파를 대표하는 그림을 많이 남겼지만, 회화를 그리는 것과 드로잉을 그리는 것을 동일하게 생각한 그는 펜과 먹, 목탄을 사용한 선 드로잉도 많이 남겼다. 그는 선 드로잉에 몰두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끌리는 것이지 이끄는 것이 아니다.
마티스는 대상의 모습을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지닌 에너지, 그 에너지와 자신의 감정이 만나면서 느껴지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한다. 하나의 작품을 위해 수없이 드로잉을 하고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되었는지 알기 위해 마지막엔 눈을 감고 그렸다는 마티스. 마티스는 글을 통해 화가로서의 자신의 목표를 이렇게 남겼다.
내가 꿈꾸는 것은 근심스러운 주제가 없는 균형적이고 순수하면서도 고요한 예술이다.
이는 작가나 사업가 같은 모든 정신 노동자를 위해,
그들의 피로한 몸을 편안히 쉬게 해주는 좋은 안락의자처럼 정신의 안정을 주는 것이다.
마티스의 그림을 바라보면 마음이 밝고 유쾌해진다.
평소 자연과 동물을 사랑한 그의 순수한 마음과 희망이 느껴지는 마티스의 그림은, 화가로서의 바람을 사람들에게 ,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확실하게 전해주고 있다.
반짝이는 나의 별, 내 아이.
성모자 드로잉의 꽃별 패턴은 하늘을 나타낸다고 한다.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님의 아름다운 하늘이지만 나에겐 ‘처음 내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의 하늘’을 느끼게 해 준 그림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서로 자꾸 부딪히고 화를 내게 되던 답답한 날들 속,
그림을 그리며 처음 아이를 만났던 그때의 순간을 기억해보며 잠시나마 편안히 미소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아이를 이만큼 키웠음에 스스로에게 대견하다고 칭찬해본다.
괜찮다고도 말해본다.
화를 내고 속상해해도 괜찮다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던 그 작은 아이는 이제 asmr을 하는 10살이 꾸러기 소년이 되었다.
또 한 번 나를 추억 여행에 데리고 가준 ‘고마운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