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드 루이스 I 사과나무 꽃과 노래하는 새
완연한 봄날이었다.
두 자릿수로 줄어든 코로나 확진자에 큰아이는 조심스레 태권도에 가기 시작했고 작은아이도 어린이집에 다녀오는 사이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 나는 주말에 근처 꽃시장에 가서 옥상 화단에 심을 꽃을 사 왔다.
내가 좋아하는 꽃 그리고 아이들이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딸기와 블루베리도 심고 나니 새와 벌, 작은 곤충들이 찾아왔다.
그렇게 우리 집엔 작고 예쁜 정원이 생겼다.
봄의 색처럼 알록달록한 오일 파스텔을 꺼낸다.
유화는 마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다 보니 아이들을 보며 작업하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난겨울 사두었던 오일파스텔을 봄이 되어서야 열어 본다.
상자 속에는 형형색색의 오일파스텔이 쫘르르~바라만 보아도 힐링이 된다!
좀 귀찮아도 발색 표를 간단하게 만들어 놓으면 그 질감과 색감을 알 수 있고, 나중에 그림을 그리며 색을 찾을 때도 큰 도움이 된다.
종이에 색을 하나하나 칠하며 지루할 법도 한데, 그 모양새에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오는 걸 보니 지금 이 시간이 격하게 반가운 것 같다.
오늘은 모드 루이스의 사과나무 꽃과 노래하는 새들이 있는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모드 루이스는 타고난 신체장애와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고 정겨운 그림을 많이 남긴 캐나다의 여성 화가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모드의 그림을 몇 달 전 도서관에서 [내 사랑 모드]라는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
표지에 있던 그림, 하늘색 바탕의 노란 새와 꽃들 그리고 그 위에 적힌 '나의 계절은 겨울에도 꽃이 피어요'란 글귀가 참 좋았다.
그 후 중고서점을 통해 책을 샀는데 번역가님의 ‘번역하면서 행복했던 책입니다.' 하는 친필 사인을 만날 수 있어 기뻤다.
그녀의 삶 속에는 어떤 행복이 담겨 있을까 궁금했고 그 이야기를 빨리 듣고 싶었다.
모드는 굽은 손가락과 몸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을 보낸 캐나다 해안가 작은 마을, 시골집에서의 기억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아버지는 대장장이로 풍족한 삶을 꾸릴 수 있었고 음악을 사랑하는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연주하기를 즐겼다. 오빠 또한 댄스 밴드의 연주자였다.
모드는 어머니에게 그림을 배우고 어릴 적부터 크리스마스 카드를 그려 팔기도 하며 총명하고 적극적인 아이로 자랐다.
모드의 어린 시절은 부모님과 오빠와의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은 훗날 평생 동안 남긴 작품의 바탕이 되어 주었다.
가족이 함께 바닷가로 소풍을 가곤 했어요. 이제는 모두 떠나고 없지만요.
부모님이 연이어 돌아가시고 가까웠던 오빠와도 멀어지게 된 뒤, 모드는 이모집에서 지내게 된다.
그곳에서 모드는 집안일을 도와줄 가정부를 구하던 에버릿과 만나게 되고, 가난한 생선장수였던 그와 그녀 나이 서른네 살에 결혼을 한다.
결혼 후 작은 오두막에 살면서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모드는 자신이 에버릿의 아내라는 사실을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제껏 누군가에 의존해 살던 그녀가 이제는 자신이 루이스 부인이고 남편과 함께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한 여자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나는 여기가 좋아요.
어차피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으니까요.
내 앞에 붓만 하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가난한 그녀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재료는 따로 없었다.
해안가 마을에 살던 모드는 남편이 구해다준 선박용 페인트로 나무보드, 가리비 껍데기, 해변의 돌 등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모든 곳에 그림을 그려 넣었고 그들의 보잘것없는 오두막집도 모드의 캔버스가 되어주었다.
거의 모든 그림을 기억에 의존해서 그렸던 모드는 기억 속 행복했던 어느 장면이 떠오르면 손에 닿는 붓을 집어 들고 , 가장 가까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물건에 자신에게 남아 있는 물감으로 그렇게 그림을 그렸던 거다.
모드는 가난과 신체적인 고통을 모두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그녀가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렸다.
병원에 있던 마지막 길에도 간호사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그려 주었다는 모드.
그녀는 가슴속 행복했던 기억과 장면들을 꺼내어 그림으로 남기며 그녀의 일생을 후회 없이 살았다.
그리고 싶으면 그리는 거죠.
기억에 있는 장면을 그려요.
만들어 내는 거죠.
붓 한 자루만 있으면 아무래도 좋아요.
모드의 삶은 담은 영화 [내 사랑] 속 모드는 항상 오두막의 작은 창가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마치 그 창을 통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처럼 편안한 미소를 지으면서..
전 바라는 게 별로 없어요.
창문을 좋아해요.
지나가는 새, 꿀벌들 매번 달라요.
내 인생 전부가 이미 액자 속에 있어요.
바로 저기..
나의 계절은 겨울에도 꽃이 필까?
무엇을 시작할 때 마음의 소리보다는 구색을 갖추어 놓고 시작하려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늘 좋은 것을, 기왕이면 더 나은 것을 바라곤 했던 나는 어려서 부족함이 없이 자랐다.
29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 낳고서야 조금씩 철이 드는 중이다.
가진 것에 감사해하며 불평하지 않고 그녀가 할 수 있는 그림으로 행복했던 어린 시절 기억을 수많은 작품으로 남긴 모드 루이스.
그녀에게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어린 시절 단순하지만 행복했던 가족과의 시골 생활, 가난했지만 자신의 남편인 에버릿과 함께 한 순간들, 그녀가 가장 그리기 좋아하던 고양이와 꽃들.
이런 게 그녀에겐 행복이었겠지..
그림을 그리며 나에게 행복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겨울에도 꽃을 피울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나.. 묻게 해 준 모드의 그림이다.
나의 계절은 겨울에도 꽃이 피어요.
_모드 루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