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카사트 I 말 밤나무 아래에서
푸르름과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이 찾아왔다.
마스크가 일상이 되어버린 아이들은 답답할 법도 한데 햇살 아래서도 불평 없이 잘 쓰고 다닌다.
어른들이 미안한 지금 현실에, 다행이면서도 미안하고, 고맙고 또 고맙다.
10살 큰아이와 6살 작은아이는 늘 티격태격 다툰다.
3살 터울 오빠와 어려서부터 사이가 좋았던 나는 아이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 이해가 되다가도 너무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다정다감한 성격의 아들은 유독 동생에게만 쌀쌀맞게 대하고 야무진 성격의 딸은 오빠를 이기려 꼬박꼬박 말대답을 하니 늘 다툼이 생길 수밖에..
그러다 가끔 일주일에 ‘한두 번, 한 15분 정도’ 둘이 사이가 참 좋을 때가 있다.
다행히 개그 코드는 잘 맞는 둘은, 가끔 배를 잡고 웃으며 즐거워한다. 또 아주 가끔은 서로 손을 잡고 안아주고 하는데 그럴 때면 내 마음은 큰 구름처럼 한없이 넓어지고 그 안은 기쁨으로 가득 찬다.
하지만 너무 짧게 끝나버리는 그 다정한 시간.
차차 좋아지기를, 부모님에게 말 못 할 일이 있을 때 서로에게 의지하고 도움이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사이로 커가기를.. 기도한다.
어느 여름날, 초록이 가득한 나무길을 나란히 걷는 너희는 내 마음 가득 들어왔고 짧게 지나갈 그 순간을 얼른 사진기를 꺼내 담는 난 너무나 행복하다.
너희가 이렇게 나란히, 천천히 걷기를 바라며...
땀이 송글 맺히는 더위를 식혀 줄 시원한 아이스티를 얼음 한가득 넣어 만든다.
오늘은 미국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메리 카사트의 ‘urder the Horse-Chestnut Tree 말 밤나무 아래에서’라는 그림을 그릴 준비를 한다.
푸른 잔디 위, 엄마와 아이가 있는 그곳의 계절도 지금 내가 있는 이곳과 같은 계절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여성 작가들의 그림 릴레이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때 떠오른 사람이 메리 카사트였다.
메리 카사트는 인상파 화가들 사이에서 활동한 몇 안 되는 여성 화가들 중 한 명이었다.
미국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메리는 어려서 부모님과 유럽 여행을 다녔고, 11살 때 파리 국제박람회에서 본 구스타브 쿠르베의 그림을 보고 감동해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큰 반대에도 15세에 아카데미에서 미술교육을 받기 시작한 메리 카사트.
하지만 이미 유럽 대가들의 그림을 접한 그녀에게 아카데미 교육은 진부했고, 그녀는 파리로 떠난다.
파리에서 마네, 쿠르베, 드가를 진정한 스승으로 여기며 자신만의 화풍을 찾아가며 성장하는데, 메리는 드가의 작품을 한 화랑에서 처음 보게 된 뒤 친구에게 쓴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드가의 파스텔화를 처음 보았을 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나는 내 코가 납작해질 정도로 창문에 얼굴을 붙이고 그의 작품에 열중했습니다.
그것은 내 인생을 바꿔놨어요.
난 예술을 보았고 곧 나는 내가 본 그것을 원하게 되었습니다.
드가 역시 그녀의 작품을 보고 '누군지 몰라도 나와 같은 것을 느끼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드가와 메리는 스승이자 연인, 동지적 관계를 유지하며 죽을 때까지 서로의 곁에 남았다고 한다.
메리는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미국에 알리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스스로도 많은 작품을 매입하였고 콜렉터들에게 팔아주기도 하면서 자연스레 미국에 인상주의 그림을 알리게 되었다.
화가의 삶을 살기 위해 걸림돌이 될 것 같은 결혼을 포기한 메리의 그림에는 '엄마와 함께 있는 아이'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 많은데, 자신의 모델이 되어주던 자매인 리디아가 병으로 사망하자 큰 슬픔에 빠진 메리는 그 허전한 마음을 엄마와 함께 있는 아이의 모습을 그리며 달랬다고 한다.
바라보면 애잔하고 따뜻한 그 그림들이 나는 참 좋다.
엄마의 보일 듯 말듯한 표정에서 그 시절의 행복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림.
그림에는 잘 안 보이지만 풀밭에 앉아 아이를 두 팔로 들어 올린 엄마의 표정이 어떠할지, 내가 나의 아이를 안으며 지었을 표정이 떠오른다.
그 시절엔 분명 힘듦이 더 컸던 것 같은데, 세월이 지나 이렇게 한순간 한순간을 떠올려 보면 힘든 기억보다는 행복했던 기억이 먼저 생각난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지금의 나를 더 깊은 마음으로 살아가게 해주는 것 같다.
목판화로 제작된 이 그림을 처음 만났을 때, 그리면서 행복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아이를 품에 안았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웃고 있었다.
몽글몽글한 너의 살갗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그때
둘째가 태어나던 해, 무더운 여름 5살이었던 큰아이는 물놀이를 가고 싶어 했다.
아직 사람 많은 곳은 조심스러운 작은 아이를 데리고 근교 호텔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너와 함께 보내는 첫 휴가, 뽀송하고 쾌적한 객실 침대에 널 눕히니 너는 저렇게 빛나는 미소로 나에게 답을 해주었구나.
모든 것을 다 가진듯한 너의 미소 하나면 충분했던 그때.
그림이 아니었으면 놓치고 지냈을 그 소중한 순간을 이렇게 꺼내어 들여다본다.
코로나의 장기화와 더워진 날씨 속에서 조금은 지치는 날들이지만, 그림과 함께 나는 위로받는다.
그림은 우리를 아주 오래전 시절로 데려가기도 하고 그때의 삶을 돌아보게도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