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고갱 I 기도하는 브르타뉴의 여인
이 그림을 처음 만나게 된 건 산부인과에 들른 어느 날 대기실에서였다.
기약 없이 늦어지는 한 달의 한번 그날에 난 초조했고 결국 산부인과를 찾아갔었다.
이제야 아이들을 제법 키워놓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시작한다는 건 나에겐 너무나 큰 두려움이었다.
책장의 여러 책들 중 [그림의 힘]이란 책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넘기던 책장 속 고갱의 이 그림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여물은 곡식과 태양의 고유색이 바로 노랑입니다.
곡식이 수확의 기쁨을 주고 태양이 무한한 에너지를 발하는 것처럼, 노랑은 항상 밝음의 본성을 내포하는 색입니다.
실수할까 봐, 떨어질까 봐 두려운 마음들, 부정적인 생각들을 몰아내고 밝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도록 돕지요.’
꼭 마주한 두 손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
그 짧은 순간 부끄럽게도 난 임신이 아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따뜻한 노란색과 기도하는 마음이 담긴 이 그림을 언젠가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고향인 페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폴 고갱은 늘 자연의 삶을 동경했다.
파리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 살아가고 있었던 고갱은 처음에는 회사를 다니며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그림의 매력에 빠져 직접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피사로,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등 인상주의 작가들과 교류하게 된다.
인상주의 전시에 작품을 전시하면서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선 고갱.
하지만 그의 작품은 팔리지 않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게 된 고갱은 이렇게 고백한다.
지금 나는 용기도 재능도 부족하다. 곡물 창고로 가서 목을 매는 게 낫지 않은가 매일 자문한다. 그림만이 나를 지탱해준다.
이 그림은 그로부터 8년 뒤 그려졌다.
그때의 좌절하고 있는 고갱에게 찾아가 이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을 스친다.
고갱은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시작했고 '자네는 파리를 좋아하지만 나는 '원시와 야생'이 살아있는 시골을 사랑하네.'라고 말하며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지방에 퐁타방이란 곳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가게 된다.
하지만 퐁타방도 이미 유럽인들의 문명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고갱은 '원시와 야생'이 살아있을 최후의 공간으로 타히티를 선택한다.
그곳에서 그는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진정한 야만인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고 한다.
고갱은 자연 속에서 타인의 이해를 떠나 오직 자신만의 예술에 빠져들었고 결국 이제껏 보지 못했던 폴 고갱만의 그림을 만들어 낸다.
[방구석 미술관]의 저자는 고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하나의 삶은 하나의 별이 아닐까요?
삶을 보는 관점과 삶을 사는 방식은 이 지구의 사람 수만큼 다채롭게 빛나고 있습니다.
마치 밤하늘 자기만의 빛을 내보이는 볓처럼 말이죠.
삶을 살아가는 데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각자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삶의 빛'이 있을 뿐이죠.
고갱도 그러했고 그는 그 빛을 따라갔습니다.
환한 햇빛이 떠오르는 노란색이 가득한 그림을 마주했을 때 그 마음은 어떠한가?
노랑은 긴 파장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의 감정과 신경을 자극한다고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어지러운 마음속에 들어선 어지러운 색들을 밝은 기운의 노랑이 채워주는 느낌이다.
부정적 기운에 억눌린 내 마음이 긍정적이고 낙천적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색.
우리 집 11살 미누도 나에게는 노란색과 같은 존재인가 보다.
이 그림을 그린 연초에는 기도할 일이 참 많은 때였다.
한 해의 시작이기도 했고, 막 새로운 출발을 한 사람들 그리고 언제나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는 일들을 각자의 마음에 지니고 사는 우리들.
그때의 난, 나에게 소망하는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렸다.
‘앞으로의 하루하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힘차게 보내기, 그리고 나를 믿기’
지금의 난, 그렇게 보내는 날도 그렇게 보내지 못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그림을 보며, 글을 쓰며 또다시 소망해본다.
나를 믿고, 나를 지지해 본다.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걸어 나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