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달. 함께 산책을 나서요

마르크 샤갈 I 산책

by 화온


연초에 시작된 코로나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 한번 아이들을 데리고 집 근처 숲길을 산책하는 거였다.


점심을 먹고 30분씩 걷던 산책길은 어느새 2시간 정도는 거뜬히 걸을 수 있게 되었고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온종일 기다렸다 산책 나온 강아지처럼 정말 신나게 뛰어다녔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지나 보낸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날들 속, 나는 마르크 샤갈과 벨라의 그림을 떠올렸다.


전시회에 가면 도록을 들춰보곤 하는데 그 가격이 너무 비싸면 좋아하는 그림이 담긴 엽서를 꼭 몇 장 데리고 온다.

몇 년 전 샤갈의 전시회에서 사두었던 엽서를 꺼내어 스케치를 준비한다.

스케치를 하며 들여다본 벨라의 손을 잡은 샤갈의 표정은, 시원한 그의 얼굴 생김새와 더불어 기쁨과 자신감으로 충만해 보였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을 때 그런 감정이 온몸으로 표현되어 드러난다면 그 사람을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거 일터.

연애시절 남편의 커다란 손을 잡고 행복하게 걷던 나의 모습을, 그 마음을 살며시 들춰 본다.

이런 지정된 특별한 날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작게나마 그 사랑을 표현하곤 하지만 우리는 평소에 그 사랑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산다.

언젠가 연애시절 내가 남편에게 보낸 편지들을 살펴보며 내가 이렇게 애굣덩어리였나 하고 피식 웃은 적이 있다.

이 그림의 제목은 '산책 Promenade'이다.


그림 속 샤갈은 그의 뮤즈이자 사랑하는 여인 그리고 아내인 벨라의 손을 꼭 잡고 있고 벨라는 하늘 위에 두둥실 떠올라 있다. 샤갈의 그림에는 하늘을 나는 사람과 동물이 등장하곤 하는데 이는 샤갈의 신앙인 유대교의 하시디즘(하시드 hassid는 독실한 사람이라는 뜻이다)의 오랜 이야기에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이나 천사가 길 위를 둥둥 떠다니는 묘사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 유대인 샤갈.


샤갈은 스물두 살에 여자 친구였던 테아의 집에 놀러 갔다가 그녀의 친구인 벨라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샤갈은 벨라를 처음 만난 날을 이렇게 남겼다.


나는 벨라가 내 과거, 현재, 미래까지 언제나 나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꼈다. 벨라와 처음 만났던 순간 그녀는 내 가장 깊숙한 내면을 꿰뚫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바로 내 아내가 될 사람임을 알았다.

벨라는 부유한 보석상의 막내딸이었고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수재였다고 한다. 반면 러시아의 가난한 유대인 마을 비테프스크에서 태어난 샤갈은 9남매의 장남으로 어려운 형편에서 유대인으로 차별을 겪으며 암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는 특별한 직업을 찾아야 했다.
하늘과 별을 외면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 그래, 그것이 내가 찾는 것이다.



샤갈은 그렇게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벨라의 “yes”없이는 작품을 끝내거나 서명하지 않았다는 샤갈은, 그녀가 급성 감염으로 사망하자 모든 그림을 벽을 향해 돌려놓고 붓을 놓았다고 한다. 그 슬픔을 무엇으로 형언할 수 있을까..


우리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은 바로 사랑의 색깔이다.


풍요로운 그린빛 풍경의 마을 그리고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샤갈과 벨라.

벨라가 입은 핑크빛 원피스와 수줍은 미소에서 사랑받는 여인의 행복함이 느껴진다. 그녀와 함께 할 때 샤갈이 느끼는 가득 찬 행복과 기쁨이 전해지는 그림 ‘산책’이다.



지난 주말 아침 아이들에게 영화를 틀어주고 남편과 산책을 다녀왔다.


짧은 산책길이었지만 마주 잡은 두 손이 좋았고, 송글 맺히는 땀방울에 시원한 바람이 좋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그리고 그들과 함께 느낀 행복을 떠올려 보기에 너무나 좋은 그림이다.

나는 이번 주말에도 남편에게 산책을 가자고 말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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