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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온 Mar 13. 2022

봄에의 믿음이 전해지기를

박수근 나무와 두 여인, 1962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
하느님 나는 이담에 커서 밀레와 같이 훌륭한 화가가 되게 해 주세요.


열두 살의 박수근은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 [만종]을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며 소박한 농촌의 풍경을 그림으로 그린 밀레처럼 어린 박수근은 훌륭한 화가가 되기 위해 홀로 그림을 그린다.

강원도 양구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박수근은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어머니와의 이른 이별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뭇가지를 태워 만든 목탄을 가지고 산과 들로 다니며 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보통학교를 다닐 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일본인 교장 선생님이 선물해준 물감과 붓을 들고 화가의 꿈을 키워나가던 그는, 열여덟 살에 조선 미술전람회에서 입선을 하며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의 나이 스물여섯 살에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한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나에게 재산이라곤 붓과 팔레트 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승낙하셔서 나와 결혼해 주신다면 육신적으로는 고생이 될 겁니다. 그러나 나는 정신적으로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 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훌륭한 화가의 아내가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의 선함과 진실함이 담긴 프러포즈 말을 읽어 내려가면 마음이 찡해진다.

결혼 후 그림을 그리며 미술교사로 소박한 생활을 하던 중 한국전쟁이 일어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에서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모진 삶을 살아내려고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박수근에게 큰 울림을 주었나 보다.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묵묵히 그날을 살아내는 이들처럼 박수근도 자신의 그림을 끊임없이 그리고 또 그렸다.

전쟁 후 마을에 남은 아낙들과 아이들, 그리고 노인들의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 그의 화폭 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선함과 진실함은 무엇일까?

선하고 진실한 마음을 가졌던 그는 가족을 위해 일을 하고 그림을 그렸다.

지금 내 곁에 함께인 가족을 아끼고 그들을 위해 행하는 모든 일들에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이 담겨있지 않을까.

전쟁 속 이들의 모습은 박수근에게 그림의 모델이자 그림을 계속 그려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던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의 세상


폭격으로 아이를 잃고 흐느끼는 아빠.

겁에 질린 아이를 꼭 끌어안은 엄마.

아빠를 전쟁터에 보내고 걱정하며 우는 아이.

요 근래 내가 마주한 이 모습들은 현재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평범함 일상을 살았을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이 상황을 보는 내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지난겨울 아이들과 함께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시회에 다녀왔다.

자기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가 동생을 업은 옆모습을 유심히 보던 아이들.

가만히 아이들 옆으로 가, “그 옛날에 전쟁이 일어나 부모를 잃고 하면 저렇게 누나가 동생을 업어서 키우고 그랬데..”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나는 이런 어렴풋한 말을 아이들에게 해주었었다.


현재 지구 한편에서 현실이 되어 일어나고 있는 이 상황을 먹먹한 마음으로 큰아이에게 설명해준다.

우리 아이들의 세상에는 전쟁이라는 끔찍한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은 이 세상 어느 부모나 같을 텐데 지금 그곳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지…

어쩌면 내가 살아온 시간이, 이 세상 곳곳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며 나와 내 가족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들이었기에 지금 이런 현실을 마주하는 마음이 더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봄에의 믿음_박완서


박수근의 삶을 소설로 남긴 박완서 작가의 [나목].

그녀는 말한다.

전쟁통에도 꿋꿋이 가족의 생계와 자신의 꿈을 위해 그리고 어둠이 걷힌 뒤 다가올 봄을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낸 그가 바로 나목이었다고.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 이리라.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 그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긴 겨울 방학에 이어 개학을 하고도 극성인 코로나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에만 있는 이 시간이 너무 힘들고 지친다고 투정을 부렸다.

온전한 나의 시간을 찾지 못하고 계속 방황하며 주위를 탓했다. 하지만 이 모든 감정들이 내가 만들어낸 사치임을 생각하고 반성하는 날들이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나라마저 잃을 위기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이곳의 나는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함께 하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 그 평범한 하루는 또 더없이 소중한 하루임을 마음에 새기며 그렇게 나의 날들을 살아가야 한다.


마른 가지에 잎 하나 없지만 의연하게 서 있는 저 나목처럼 그들도 이 시기를 잘 살아 내기를 기도한다.

마르고 앙상하지만 자태만큼은 곧게 뻗은 저 가지들에 곧 푸른 잎이 돋아 날 것임을 믿는다.

그들의 평화를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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