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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 기록

[독서기록] 돌봄과 작업 / 창작형 인간의 하루

정서경 작가의 육아 이야기

by 화랑

정서경 작가, 돌봄과 작업

아기를 흔들며 묻고 싶은 기분이었다. 왜 우는 거야, 내가 젖도 주고 안아주기까지 했는데 왜 우는 거야! 언제까지 널 안고 있어야 해! ...(중략)...

이제 난 망했다, 짧게 잡아도 20년 정도는 망한 거야. 사람이 이런 식으로 자기 행복을 망칠 수가 있구나. 그때 생각했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행복의 영상을 떠올렸다. 아무도 울지 않는 조용한 집, 순철과 두 고양이. 다시는 그 삶으로 건너갈 수 없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내가 임신한 동안 기뻐해주고 격려해 주었던 어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모두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었어. 하지만 실상을 말할 수가 없었을 거야. 그러면 내가 아기를 낳지 않으려 들 테니까. ...(중략)...

이제야 모든 것을 알 것 같았다. 임산부를 향한 아낌없는 호의, 뭔가를 모의한 듯한 미소의 진짜 의미를. 이제 네 차례다, 이거지. 인류는 이런 식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보이스피싱 같은 것에 낚여 나도 모르게 무시무시한 물건을 주문해 버린 것 같았다, 20년 할부로. -pp39-40

요즘엔 임신, 출산의 고통이 낱낱이 공개되기도 하고 '독박육아'나 '육아퇴근'처럼 육아의 고됨을 나타내는 말도 흔히 쓰인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끔찍한 과정이 여과 없이 나오고 TV를 틀면 금쪽이가 부모를 때리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정서경 작가가 아이를 낳을 때와는 다르게 '실상'을 말하는 어른도 언론도 많아졌다. 오히려 과할 정도라 나는 엄청 겁을 먹었다.

겁을 먹고 시작했는데도 세상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이걸 한다고? 아니, 다들 이걸 했단 말이야? 그리고 갑자기 모든 게 괘씸해졌다. 전업주부를 왜 무시하지? 한 아이를 품고 낳고 기르는 일은 어떤 전문직보다도 고도의 테크닉과 인내심이 필요한데. 임신을 버티고 멀쩡히 출산한 사람은 그게 누구든 대단한데 왜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 자산과 학벌보다 더 중한 경험 아니야? 정치도 철학도 다 애 낳은 아줌마들이 해야 하는데 막상 파이를 보면 그들의 비율이 가장 낮다. 왜 엄마들에겐 그에 맞는 자격과 권리가 부여되지 않을까?


아이를 낳은 이후로 나는 단 몇 시간도 이전 삶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힘들었다. 그렇지만 믿을 수 있겠는가? 행복했다. 이전과는 다르지만 온 세상에 외치고 싶을 정도로 행복해졌다. -pp39-40


사람은 너무 비싼 걸 사면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후기를 남긴다는데 어쩌면 난 아이들을 키우는 데 너무 많은 걸 투자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투자한 건...나 자신이었다. -p42


그 이후로 나는 중요하지 않은 시나리오는 쓰고 싶지 않았다. 진짜 사랑이 아닌 것은 쓰고 싶지 않았다. ...(중략)... 그리고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어졌다. 관객과 시청자들이 원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이전의 나는 나를 위해서 썼다. 그렇게 <아가씨>와 다른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p43

정서경 작가가 '온 세상에 외치고 싶을 정도로' 행복해졌다고 해서 나도 아이를 낳고 싶지는 않다. 그 행복, 포기해도 괜찮을 것 같다. 운이 나쁘면 불행해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런 모험을 위해 나를 투자하고 싶진 않다. 덜 행복하고 덜 불행한 게 낫지.

그런데 아이를 낳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아가씨>를 썼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갑자기 구미가 확 당긴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같은 명대사, 김태리가 목욕하는 김민희의 이를 갈아주는 명장면이 육아로부터 영감 받아 탄생했다면. 물론 비슷한 경험을 한다고 나 같은 일반인이 정서경 작가처럼 되는 건 아니겠지만, 아이라는 존재가 한 사람의 지평을 그 정도로 넓혀준다면 인생에서 한 번쯤은 해볼 만한 일 아니겠는가. 출산이 여성의 수직적 상승에는 방해가 될지언정 수평적 확장에는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그리는 나의 '성공'은 후자에 가깝다.


정서경 작가는 이전에 <창작형 인간의 하루>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정서경 작가, 창작형 인간의 하루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시시때때로 전화가 와요. 애 학교에서 전화가 오면 심장이 막 떨려요. 그렇다 보니 스트레스는 그냥 제 일상이고, 없애야 할 게 아니라 하루 일과에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가장 일하기 힘들 때 중 하나가 남편과 싸웠을 때인데 그것도 디폴트로 포함되어 있죠. 이런 시간이 없어진다면 과연 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니죠.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 만드는 이야기와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쓰는 사람이 만드는 이야기는 다르지 않을까요. 이야기에는 나를 위한 부분도, 누군가를 위해 남겨놓은 부분도, 특정 인물을 생각하며 쓴 부분도 있을 것 같거든요. 결국 제 생활의 어떤 부분은 다른 사람을 위해 쓰이게 되어 있어요. 저는 여러 가지 비율이 잘 맞아야 균형감이 생긴다고 믿는 쪽입니다. -p41

한때 페미니즘 커뮤니티에서 4B라는 말이 유행했다. 비연애, 비섹스, 비혼, 비출산. 가부장제에 저항하기 위한 네 가지 행동 강령이다. 대학생 때 나는 그것을 철저히 따랐고 그것만이 유일한 생존법이자 성공 비결이라 믿었다. 기혼 여성은 불쌍한 포로 혹은 친일 앞잡이 같았다.

하지만 그때 나는 불행했다. 내내 외롭고 불안정했다. 외로움은 극복해야 되고 남자를 만나는 건 나약해빠진 일인데, 그게 그렇게 맘처럼 안 됐다. 친하게 지내던 강경 페미니스트 언니들과는 서서히 멀어지고 나는 여러 번의 소개팅 끝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더없이 안온하고 편안해졌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누군가를 배반하고 현실에 타협한 것 같은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임신하고 아들을 품은 지금, 혼란스럽고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여러 얘기를 듣고 읽으며 깨닫는다. 세상만사 어떤 것도 무 자르듯 딱 잘라 판단할 수 없다. 뭐든지 여러 측면이 있고 이것만이 무조건 옳다 말하기 어렵다. (물론 확실하게 잘못된 명제도 있다. 성매매 성폭력 교제살인 등등) 여성의 삶도 마찬가지다. '하말넘많'처럼 살기? 정말 멋있다. 근데 결혼해서 애를 낳는다고 멋있지 않은 게 아니다. (부끄럽게도 이걸 나는 직접 임신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트위터 페미니스트들이 환장을 하는 영화 <아가씨>를 쓴 정서경 작가는 결혼하고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심지어 그 경험을 양분 삼아 주체적인 여성 둘의 사랑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러니까 이런 걸 흑백논리로 접근하면 이해가 안 된다. 입체로 봐야 한다.

나는 이제 출산과 육아 또한 입체로 보기로 했다. 힘들고 어려운데 그럼에도 할 가치가 있고, 지금보다 훨씬 불행하겠지만 전에 없는 행복도 느낄 것이며, 나를 잃는 대신 나라는 사람은 더 넓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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