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도서관 글쓰기 코너에서 발견한 보물 같은 책. 정아은 작가님 소설 <잠실동 사람들>도 몇 년 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마침 잠실동 근처에서 교사를 했기에 공감하며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당연히 글쓰기를 전공한 전업작가시겠거니 했는데 알고 보니 은행원, 학원강사 등 다양한 일을 전전하다 아이 낳고 소설가로 등단하셨다고 한다. 이런 분이 글쓰기에 대해 알려준다면 대환영! 냉큼 책을 빌려 후루룩 읽었다. 주옥같은 명언이 쏟아지는 데다가 가독성도 좋아서 금방 읽혔다. 필사할 부분이 어엄청 많다.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기본 자세, 글을 보는 작가님의 가치관으로 책이 시작된다.
우리는 생각한 뒤에 쓰지만, 또한 쓰기 때문에 생각한다. 초고를 완성하는 것은 미처 하지 못했던 생각이 떠오를 기회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초고로 인해 일었던 생각들은 초고를 완성한 뒤 다시 고쳐 쓰는 퇴고의 과정에서 글에 반영된다. 첫 번째 퇴고를 마치면, 그때부터 글쓴이는 서서히 감을 잡게 된다. 자신이 원래 쓰고자 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감을. 같은 일은 두 번째 세 번째 퇴고에서도 일어나고, 글을 쓰는 이는 무의식의 영역에 잠들어 있던 자신의 다양한 사유를 끄집어내 글에 흩뿌려놓게 된다. '나도 몰랐던 나 자신과의 만남'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글쓴이는 점점 희열을 느끼게 된다. -pp23~24
- 맞는 말이다. 내가 아무리 계획형 인간이어도 글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글을 쓰면서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고 나도 몰랐던 무의식이 등장한다. 그렇게 완성된 초고는 다 지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초고 쓰는 게 제일 귀찮다. 어차피 지울 거니까. 그치만 두 번째, 세 번째 글을 다시 쓰면서 초고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헤매는 과정이 없으면 글이 완성될 수 없다. 처음엔 '글을 써야지'가 아니라 '맘껏 헤매야지'라고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러니 진정으로 글을 쓰고 싶다면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잘 쓰지 않겠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끝까지 쓰겠다.
어쩌면 글쓰기란, 잘 쓰고 싶다는 마음과의 싸움이 그 시작이요, 끝인 장르일지도 모른다. -p25
글쓰기를 잘하는 유일하고 효과적이고 치명적인 방법은 단 하나, 많이 쓰는 것이다. 그리고 많이 쓰기 위해서는, 잘 쓰겠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초고를 쓰고, 고쳐 쓰고, 또다시 고쳐 쓰고, 그걸 또다시 고쳐 쓰는 과정에서 몇 개 문장을 통째로 빼거나 덧붙이고... 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 동안, 그 과정에서 잘 쓰겠다는 욕심이 홀라당 잊히고 무한정 다시 쓰기의 파도에 휩쓸려 들어가 화면 속 문장들과 나를 제외한 세상 모든 것이 진공 상태에 들어간 순간, 비로소 나온다. 무엇이? '잘 쓴 글'이. -pp26~27
- 잘 쓰겠다는 마음을 완전히 버려야만 비로소 '잘 쓴 글'이 나온다는 명언..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러한 무정형의 복합적인 덩어리를 언어라는 체계적이고 선명한 형태로 코딩해내는 일이다. '마음'과 '언어'라는, 너무나 다른 질료로 이루어진 두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고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일정 분량의 덩어리를 이동시키는 일이다. 처음부터 실패가 예정된, 영원히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중략) 작고 한정된 형태의 언어 그릇에 인간의 마음이라는 어마어마한 덩어리를 옮겨놓아야 하니, 그 작업이 얼마나 난해하겠는가! 글쓰기가 힘든 건 언어를 가진 사피엔스 종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다. -pp32~33
- 문장이 굉장히 깊고 명료하다. 그러면서 위로도 된다. 평소 글쓰기에 관해 작가님이 얼마나 고민하셨는지 드러난다. 솔직히 전작 <잠실동 사람들>에서는 이 정도로 감동받진 않았는데, 이 책은 모든 문장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감탄이 나왔다. 이렇게 초기작에 비해 나날이 발전하는 작가들이 있다. 등단하고도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닦는 게 대단하다.
진정한 배움은 실전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지식을 전수받기 위해 작정하고 앉아 있었던 학창 시절이나 소설 공모전에 당선되기 위해 앉아서 하루의 대부분을 각 잡고 글을 쓰던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분량과 강도의 배움이, 발전이, 작가가 되어 맡은 여러 생경한 역할들을 소화하던 때에 일어났다.
글쓰기로 국한해서 본다면, 나의 글쓰기 역량은 공모전에 당선돼 작가로 불리게 된 다음에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각종 기고 요청에 응하면서 수없이 많은 글을 썼고, 그 과정에서 강제로 역량이 부풀어 올랐다. 칼럼, 중편소설, 논픽션, 에세이 등, 내가 쓸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에 발을 들이고, 그 장르의 책을 출판하기까지 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처럼, 글쓰기 또한 쌓일수록 더 많은 글쓰기를 낳는다. (중략)
이건 글쓰기만이 아닌 다른 분야의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리라. 뭔가를 10년 동안 주구장창 해대면, 실력이 늘지 않을 수가 없다. -pp39~40
- 주옥같다 정말.. 그리고 감히 내가 느꼈던, '정아은 작가님 글이 전보다 좋아졌는데?'라는 생각은 사실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작가로 불리게 된 다음에 글쓰기 역량이 폭발적으로 발전했다니.. 작가 지망생에겐 엄청난 동기부여이지 않을까.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은 작가가 되어야 한다. 돈과 명예를 떠나 글쓰기 자체를 위해서라도.
여기선 서평 / 칼럼 / 에세이 / 논픽션 / 소설 각 장르별 성격과 쓰는 방법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직접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정아은 작가는 첫 등단 후 잇따른 소설이 다 잘 되면서 어깨가 한껏 올라갔다. 그러나 그다음 원고가 여러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하고, 슬럼프가 찾아와 작가 생활을 종료하기로 다짐한다. 다른 직업을 찾으려 사이버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지원하려던 순간, 불현듯 떠오른 한 장면을 바탕으로 초고를 작성했고 이게 다음 소설이 되어 다시 작가로서의 삶을 이어갔다. 2년 간의 기나긴 슬럼프 동안 썼던 일기장은 에세이로 출간됐다. 3장에서는 지난한 과정 속 작가 본인의 솔직한 심정이 여과 없이 나타난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것이 나의 성향, 나의 본질, 그리고 빌어먹을, 나의 운명이라는 사실을. 글쓰기를 통해 잘나갈 수 있든, 그렇지 못하든, 나는 언제나 글을 쓰고 싶어하는 인간이었다. 출판이 되든 되지 않든, 베스트셀러가 되든 되지 않든, 사회적 인정을 받든 못 받든, 나는 감각하고 경험한 모든 것을 부지런히 글로 옮기도록 코딩된 그런 생물이었다.
문학상을 받은 뒤 장편을 세 권 출간하고, 그로 인 해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는 나는, 글쓰기는 그런 명예와 속세적 영광을 얻을 때만 해야 하는 것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글쓰기는 그런 게 아니었다. 그 모든 것과 상관없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기쁘나 슬프나, 원고에 대한 거절 메일을 받으나 받지 않으나, 마음을 언어로 옮기고 싶어서 환장하는 것, 그게 글쓰기의 본질이었다. -p210
- 멋지다. 그리고 공감된다. 어떤 예술이든 단지 그것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예술가가 될 수 없는 것 같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안 돼서, 안 하고는 도저히 못 살겠어서, 생계가 되든 안 되든 계속 작업을 이어갈 사람만 예술가가 되는 것 같다.
대학생 때 숨고에서 글쓰기 과외를 받았는데 잘 쓴다는 얘기를 못 들었다. 교내 공모전에서도 떨어졌다. 글로는 안 되는 것 같아 그림도 그리고, 인스타툰도 올리고, 팟캐스트도 하고, 인스타 매거진도 운영해 봤다. 근데 다 하다 말았다.
반면에 글은 계속 썼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글을 안 쓰면 답답했다. 어렸을 때부터 일기든 팬픽이든 편지든 뭐든 써왔다. 잘 못 쓰니까 부끄러워서 인스타그램에 스토리로, 블로그에 서로이웃용으로 올렸다. 그것도 아니면 일기장에라도 썼다. 어떤 사정이 생겼을 때 다른 일은 그걸 핑계로 관둔 반면 글쓰기는 그걸 계기로 한참 휘갈겼다. 어느 날 이럴 거면 차라리 길바닥에 내놓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쓸 거면 누구 한 사람이라도 보게. 그래서 브런치를 시작했다. 지금도 작가가 되고 싶다거나 출판사에 투고하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잘 쓰지도 않거니와 운이 좋아 책을 낸다 해도 그걸로 먹고살 수 없음을 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이상 이직은 물 건너갔고 하기 싫어도 교직에 계속 남아야겠다고 각오하고 있다. 그래도 그냥 쓴다. 내가 그런 사람이니까..
허리 아프게 하염없이 앉아서 몇 개월을 바치면 뭐 하나. 아무도 출간해주지 않을 것을. 누구도 읽어주지 않을 것을. 회의감이 치솟을 때면 이렇게 응수했다. 아무도 출간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중요한 건 내가 쓰고 싶다는 거야. 쓰고 싶은 마음을 내가 이겨내지 못하겠다는 거야. 여기저기 내밀어보고 안 되면 자비 출판하면 되지. 내가 출력해서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한테 돌리면 되지. -p212
- 나도 똑같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내 적성을 찾았다. 블로그? 협찬 못 받으면 하기 싫고, 인스타그램? 팔로워 안 늘면 하기 싫고, 팟캐스트? 돈 안되면 하기 싫다. 근데 글쓰기? 어떠한 보상이 없어도 쓰고 싶다. 나만 봐도 괜찮다. 지인 몇 명만 봐줘도 감사하다. 심지어 나는 몇 년 전에 내가 쓴 글이 웃기고 재밌다. 지금 쓰는 것도 미래의 나를 피식 웃게 할 테니 그걸로 족하다. 이건 아마 내 적성이 글쓰기라 그런 듯하다. 이것저것 시도한 결과 돌고 돌아 글쓰기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까? 그에 대한 답은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때까지'일 것이다. 그렇다. 쓰고 싶은 마음 때문에 쓰는 것이다. 그것이 쓰는 사람의 핵심이고, 쓰는 사람의 전부다. -p216
4장에선 작가가 만난 편집자, 독자, 기자, 동료 작가가 등장한다. 특히 실제 작가와 일했던 편집자 세 명의 얘기가 자세히 나오는데 출판계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이 부분이 무척 흥미로웠다.
작가 입장에서 '나를 좋아하지 않고, 친절하지도 않지만 글 잘 쓰는 편집자' vs '나를 매우 좋아하고 친절하지만 글 잘 못 쓰는 편집자' 중에 택하자면 전자가 낫고, '대형 출판사의 나를 잘 모르는 편집자' vs '소규모 출판사지만 나와 잘 맞는 편집자' 중에선 후자가 낫다는 말이 신선했다. 무조건 대형 출판사, 친절한 동료가 좋은 줄 알았는데.. 만약 나에게도 기회가 온다면 어떤 동료와 함께 해야 할지 그 기준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다.
빌려 읽었는데 맘에 쏙 들어서 구매하려 한다. 밑줄 그으며 여러 번 읽고 싶은 책이다. 이참에 정아은 작가님의 팬이 되어 근황을 찾아보다 슬픈 소식을 접했다. 작년 12월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 책 초판본이 2023년 10월에 나왔으니 1년 후 세상을 떠나신 셈이다.
너무 너무.. 안타깝다.. 이렇게 글에 진심이시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어렵게 작가가 되셨고, 최근 들어 장르를 가리지 않고 폭발적으로 작품을 쓰시는 분이.. 나는 이제야 팬이 되어 작가님의 앞으로가 기대되고 북토크나 강연을 한다면 멀리서라도 들으러 가고 싶은데.. 아직 젊으셔서 더 씁쓸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