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 기록

[독서기록] 정지우 -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

by 화랑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 / 정지우 / 마름모 / 2024


요즘 나는 '돈을 덜 벌고, 소비를 덜 하는 대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삶'에 관심이 많다. 작년까지만 해도 강남에 계속 살아야 할 것만 같고, 부동산 투자를 꼭 해야만 할 것 같고, 돈 많이 버는 일로 이직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이 계속 있었다. 돈 쓰는 게 좋고 화려한 데 가면 마음이 일렁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혼하고 지방에 내려오면서 생각이 바뀌던 중.. 어쩌다 임신하고 하는 수없이 육아휴직을 하게 되어 당분간 자산을 불리기가 어려워졌다. 임신 안정기로 들어서면서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는데 또 돌아다니긴 어려워서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자주 쓴다. 마치 돈 없는 파이어족처럼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삶이 굉장히 만족스러워서, 앞으로도 계속 이런 방식으로 살고 싶어졌다. 그래서 <저소비생활>이나 <소유냐 존재냐> 같은 책을 찾다가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렸다. 읽어보니 제목은 저런데 그것보단 다양한 주제에 관한 저자의 인사이트가 나온다. 간단하게 인상 깊었던 문장만 기록하려 한다.



문장 수집


이처럼 많은 일에서 핵심은 중간을 어떻게 견딜까 하는 것이다. 이 중간의 지옥을 이겨내는 경험을 여러 번 하다 보면, 어떤 일에서든 '이제 슬슬 중간의 지옥이로군' 하는 걸 느끼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 중간의 지옥을 지나고 나면, 달릴 수 있는 평야가 있다는 것도 믿게 된다. 그 중간의 지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하나밖에 없다. 마음속에 어떤 의심이 들고, 의욕 상실의 늪을 헤매는 것 같고, 절망감이나 좌절감이 앞설 때도 그냥 하는 것이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그냥 하는 것이다. 중간의 지옥을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하는 것이다. (37)


투신하거나 헌신하지 않으면, 모른다. 모든 게 아주 단순하게만 보인다. 일이란 다 그냥 돈벌이 이상 아무것도 아니고, 글쓰기도 자기 명성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될 뿐이다. 결혼도 그저 자유를 포기한 바보 같은 일로 보이거나, 육아도 스스로 자처하는 고생과 희생 이상으로는 생각되지 않을 수 있다. 무엇이든 그 '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모른다. '밖'에서 보는 시선은 진실의 100분의 1에도 닿지 못한다.

가치를 알려면 오랫동안 끈질기게 그것을 경험해봐야 한다. 피땀 흘리는 듯한 어려움과 크고 작은 기쁨들과 시간과 시간이 엮이는 끊임없는 춤을 온몸으로 경험해봐야 한다. (...) 그러니 삶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무엇이든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끈질기게 시간을 투여해야 한다. (40-41)


많이 고민하고 많이 읽고 많이 고치면 좋은 글이 된다. (44)


나는 무엇을 하든 스스로의 에너지 자체는 너무 믿지 않는다. 나의 에너지만 믿기에 나는 너무 잘 질리고, 너무 들쑥날쑥하며, 쉽게 권태와 좌절에 빠진다. 결국에는 그런 나의 에너지 기복과 무관하게 나를 '집어넣을' 시스템을 만들어야만 한다. (47)


그러니까 하나의 삶은 내가 그 속에서 어떤 '유연한 시스템들'을 만들어나가느냐로 정의된다. 나는 내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스템,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 글을 쓸 수 있는 시스템, 육아와 사랑을 할 수 있는 시스템,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 같은 것들을 만들며 산다. 나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내 상태에 따라 시스템을 조금씩 유연하게 변형시켜 가면서, 그렇게 몇 개의 톱니바퀴가 인생에서 잘 굴러가게 하는 것. 그게 인생의 거의 전부이기도 한 셈이다. (49)


삶이란 그냥 두면 손에 잡히는 실체가 없어서 흘러가는 강물이 된다. 그러나 의식과 규칙이 있으면 박힌 말뚝처럼 삶의 준거점이 되어준다. 그런 것들이 삶에서 나쁜 일들, 걱정들, 불안들이 들끓어 넘칠 때도 삶에 어느 정도의 일관성을 준다. 그 어떤 낯선 곳에서도 안대만 하나 들고 가면 잠들 수 있다. 그 어떤 낯선 곳에서도 블루투스 키보드 하나만 있으면 글을 쓰며 내 집처럼 느낄 수 있다. (...) 시스템은 그렇게 우리의 일상을, 관계를, 일을, 나아가 삶을 지켜낸다. (54)


오히려 자기 계발서 20권 읽을 시간에 한 권만 읽고 나머지 19권을 뇌과학서를 읽는다면, 뇌과학에 대한 간단한 수업을 하거나 글을 쓸 수 있는 기반을 쌓게 된다. (77)


선택보다는 선택에 어떻게 적응하고,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 그 선택을 후회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그 선택을 활용하는 나의 방식과 태도인 것이다. 거의 모든 선택에는 그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관건은 어떻게 나의 선택에서 장점을 뽑아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87)


아직 내가 경험하지 못해서 막연한 불안이 만들어내는 두려움은 '극복 대상'이다. 나는 계속 이런 종류의 두려움들을 극복한느 쪽으로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하곤 한다. 아직 내게는 넘어야 할 두려움들이 더 있다. 그 두려움들은 경험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할 아직 오지 않은 앎이고, 능력이고, 힘이다 (147)


달리 말하면, 우리는 우리 안의 무언가를 찾고 믿어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 안의 그 무언가는 의심하고 걸러낼 줄도 알아야 한다. (160-161)


여기까지는 라벨지 주구장창 붙이면서 재미있게 읽다가, 이후로는 지쳐버렸다. 그래서 책이 310쪽인데 161쪽 이후로는 라벨지가 없음... 개인적으로 계속 같은 얘기가, 같은 말투로 반복되는 느낌이다ㅠ 건조한 자기 계발서는 나의 취향이 아니라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중간에 멈추고 싶었지만 도서관에 반납하기 전에 끝까지 읽고 싶어서 인내심을 갖고 계속 보긴 했다.

에세이 장르의 한계 같기도 하다. 작가 한 명이 자기 얘길 계속하는 걸 독자가 읽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슬아 작가처럼 재기 발랄하고 정말 뛰어나게 쓰지 않으면, 어려운 것 같다. 앞으로 나도 고민해 봐야겠다.


그러다 뒤에 인터뷰 부분에서 생기를 찾았다. 내가 인터뷰집을 좋아해서 그런가..? 아예 에세이 반, 인터뷰 반으로 분량을 구성해도 좋았을 것 같다..!


작가 김풍: 사실 <찌질의 역사>는 초반에 반응이 별로 안 좋았지만, 나는 너무 좋았어. 지난 20대 시절을 떠올리면서 그 시절로 들어가는 일이었지. 그건 그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어. 나이가 더 들면 20대의 느낌을 다 잊어버릴 테니 말이야. (240)

- 나도 더 늦기 전에 힙합 에세이를 쓰고 싶은데..! 반응 상관없이, 10대를 잊어버리기 전에 글로 남기고 싶다.


건축가 전이서: 한때는 마치 하느님이 건축은 내가 가지 말아야 할 길이라고 계속 사인을 주는데도 스스로 고집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262)

내가 좋아한다고 계속하는 게 맞는 건가? 일을 해오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죽을 만큼 열심히 하는데도 계속 답이 오지 않는 느낌이었달까요. 그런데 그렇게 버텨온 세월도 어느덧 30년이 넘었네요. (264)

- 전이서 건축가 인터뷰. 5년 전에는 암이 발견돼 이게 그만두라는 결정적인 사인인가 싶었다고. 근데도 하는 데까지 계속해보다가 결국..

그동안 그는 계속 일했다. 하느님의 사인을 의심하면서, 그 무언가에 '도달'하고자 했다. 자기가 삶과 마음, 온몸을 들여놓은 이 건축이라는 분야에 그 어떤 '답'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다음 해, 그는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2023'건축부문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 (265)

- 찢었다. 역시 계속해야 해.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 저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일을 알았고, 그것을 했을 뿐이었어요. 15년 동안 그저 계속 그렇게 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276)

- 힙합 저널리스트가 된 것도 음악 웹진에 자발적으로 글을 써서, 일본 래퍼들과 연을 맺게 된 것도 무작정 먼저 연락해서였고, 요즘엔 일본 드라마 모임을 한다.

어떻게 보면 제가 좋아하는 일을 그냥 하고 싶어서 무작정 하게 된 거죠. '힙합 일'이라는 큰 틀에서 많이 벗어나진 않지만, 그렇게 조금씩 나의 일이 확장된다고 느껴요. (282-283)


세바시 pd 구범준: 회사에서 시킨 것도 아니었고, 회사 소유의 홈페이지도 아니었죠. 그냥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CBS 뉴스 모니터링 기사를 올리고, 동기들이랑 칼럼을 쓰기도 했습니다. 수습들끼리 그러고 있는데, 어느 날 한 언론사에 '이주의 홈페이지'로 소개되었고, 그제야 선배들이 '얘네 아직 살아있구나'하고 인지를 했죠.

(...)

이 시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한 명의 주체적인 인간이 자기만의 삶을 만드는 방식에 관해 깊이 느꼈다. 우리는 완벽한 조건 안에서 배우고 준비하고 실력을 쌓으며 완성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어떠한 상황이나 악조건에서든 그 어둠의 장막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빛의 구멍을 발견하고, 그 빛을 따라갈 때 자기 자신의 삶을 만든다. 모든 결핍은 그에 적절한 방식으로 우리를 가르친다. 바로 그런 '시작의 결핍'이 있었기에 그는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 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익혔고, 자기만의 길을 나아가기 위한 능력을 쌓을 수 있었다. (291)

- 교직은 인수인계가 없고, 신규들이 곧장 무한 책임에 내던져진다. 나는 이런 특성에 불만이 많았고 화가 났다. 그런데 어제 회사원 친구가 에이스 선임이 그만두게 되어 그의 몫까지 자기가 다 맡게 됐다고, 그래서 실수를 했고 지적을 받았는데 핑계 대기 싫어서 바로 죄송하다 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그 선임한테 인수인계도 다 못 받았고, 부장은 업무에 필요한 전달도 안 해줬기에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런 얘기를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고, 다 핑계라고. 이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 아니겠냔 말을 했다.

아, 그렇구나. 조직이 나를 가르쳐주길 바라면 안 되는구나.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불행한 것 외에 뭐가 나아지나 싶었다. 만약 구범준 PD가 입사해서 계속 '이 회사 진짜 체계 없다. 이직하고 싶다. CBS 최악이다.' 화만 냈다면 어떻게 됐을까?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도 내가 그 안에서 뭘 할지 주체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근데 공무원 인수인계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긴 함^^.. 신규를 민원밭에 바로 던져놓는 지금 상황도 분명 개선되어야 하고. 그래서 나는 인수인계 파일을 엄청 정성스럽게 만들고 신규를 최대한 도와주려 한다.)


대개 고유한 삶이란, 그렇게 만들어진다. 세상의 틀에 자기만의 스타일이라는 재료를 섞어 전에 없던 무언가가 세상에 등장할 때, 그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든 삶은 모두 '고유함'의 반열에 들어선다. (294)



힙겹게,, 완독,,

이제 얼른 반납해야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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