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요새의 흔들림

무너짐 끝에서 마주한 제행무상의 위로

by 권화린

사랑을 시작할 때 우리는 무의식 중에 '영원'이라는 벽돌을 쌓아 요새를 만든다. 이 성벽 안에서는 시간이 멈추길, 그리고 이 안락함이 나를 영원히 보호해 주길 기도한다. 하지만 때로 그 요새는 외부의 침입이 아니라 내부의 균열로 인해 흔들린다. 성벽이 허물어지고 찬바람이 들이칠 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믿었던 요새는 사실 모래성보다도 취약했음을.


가장 따뜻하지만 가장 무거운 이름, 가족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를 가장 깊게 흔드는 요새는 종종 '가족'이라는 울타리다.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안식처여야 할 그곳이, 때로는 세상 그 어디보다 무거운 책임과 기대의 무게로 다가온다. "가족이니까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은 서로의 진심을 가리고, 각자의 색깔을 지우게 만든다.


사랑하기 때문에 간섭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서운해하며 쌓아 올린 기대들은 도리어 서로를 할퀴는 가시가 되기도 한다.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에 예의를 생략하고, 가장 잘 안다고 착각하기에 오해는 깊어진다. 그 요새가 흔들릴 때의 피로감은 타인과의 갈등보다 훨씬 더 묵직하게 마음을 짓누른다.



상실의 파도 속에서 붙잡은 문장

이별과 관계의 갈등으로 인한 상실감이 온몸을 잠식하던 때,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역설적이게도 '모든 것은 변한다'는 부처의 가르침이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세상에 고정불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존재와 현상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변화한다는 그 서늘한 진리가 지독한 슬픔 속에서는 오히려 가장 따뜻한 구원이 되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이 변했다는 사실에, 혹은 내 마음 같지 않은 가족의 모습에 괴로워하던 내게 그 가르침은 나직이 속삭였다. 사랑이 변한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이 세상의 본질이라고. 우리가 꽉 쥐려 했던 '완벽한 관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었음을 인정하자, 비로소 막혔던 숨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요새의 붕괴는 끝이 아니라 흐름이다

우리는 흔히 관계의 균열을 '실패'라 부르지만, 흐르는 강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그저 '다음 굽이'로 넘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다. 요새가 흔들리고 무너진 자리에 남은 것은 폐허가 아니라, 다시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빈터다.


부처의 가르침은 내게 관계를 소유하는 법이 아니라, 관계를 '흐르게 두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우리는 늘 한결같아야 한다"는 집착을 조금 내려놓자, 가족 또한 각자의 계절을 살고 있는 독립된 존재임이 보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원한 정답이 되어줄 수 없음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나는 고여있던 원망에서 벗어나 삶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다시 몸을 맡길 수 있었다.



흔들림을 허락하는 사랑

이제 나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요새를 고집하지 않는다. 대신 언제든 흔들릴 수 있고, 언젠가는 모양이 바뀔 수도 있는 이 순간의 인연에 집중한다. 영원하지 않기에 지금 이 마음이 귀한 것이고, 변할 수 있기에 지금 마주 보는 온기가 기적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요새가 흔들릴 때, 두려워하며 벽을 더 높이 쌓기보다 잠시 그 진동을 느껴보기로 했다. 그 흔들림을 살아있음의 리듬으로 받아들이고, 비워진 자리에 다시 새로운 이해가 싹틀 것을 믿는 것. 그것이 거대한 상실과 갈등을 지나오며 내가 배운 가장 아픈, 그러나 가장 찬란한 지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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