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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애 Dec 09. 2018

원서 그대로의 감동을 즐기는 아이로 키우려면!

요즘 강연장에서 "쌍둥이 북이나 원서와 번역서를 동시에 읽어주면 영어를 더 빨리 받아들이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이 질문에는 아이가 영어로만 된 책을 읽어주면 혹시 잘 못 알아들어 답답하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과 미리 번역서를 보여주면 내용을 잘 알고 있기에 원서의 내용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이거나 집중을 잘할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어동화책과 번역서를 동시에 읽어주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동화책을 읽는 행위는 단순히 스토리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눈으로 그림을 읽고, 엄마·아빠의 다정한 목소리로 소리를 느끼고, 다양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영혼의 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인식의 수준을 높이는 등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기능을 하지요. 영어동화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번역서와 영어동화책 사이를 오가다 보면 은연중에 문자에만 집중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습니다. 또한 자신이 읽은 내용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자꾸 확인하려는 습관을 키우게 되지요. 영어로 된 문장을 그 느낌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한글로 번역된 것을 봐야 안심을 하게 됩니다.


세계 공용어인 영어는 그 사용인구수만큼 재미있는 책들 또한 참으로 다양합니다.

이 말은 영어로 쓰인 재미있는 영어책의 번역서가 참으로 많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책 읽기의 최종 목적지라 할 수 있는 소설을 그 언어 그대로 느끼고 감동하기보다 번역서에 더욱 관심을 뺏기고 즐겨 읽는 결과를 초래하기 쉬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리더스북(Readers book)에서 챕터북(Chapter book), 챕터북에서 소설(Novel)로 넘어가기 어려운 이유이지요!


아무리 잘 된 번역서라 할지라도 원서가 주는 감동을 뛰어넘지는 못합니다.

고(故) 미당 서정주 선생이 78세에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며 "젊은 시절 감명 깊게 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죽기 전에 원문으로 보고 싶어 러시아 유학을 결심했다."라고 말씀하셨지요.

책은 원래 쓰인 그대로 읽었을 때 감동이 그대로 전해지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번역을 잘한다고 해도 원문이 주는 그 감동과 느낌까지 그대로 전달해 주기란 쉽지 않은 법이니까요.


Dr.Seuss

'미국의 어린이는 Dr.Seuss'의 책을 보며 자란다.'는 말이 있을 만큼 그의 책은 '전미교사협회 100대 어린이책'에 10권 이상이 선정되었지만 많은 저서에 비해 우리말로 번역된 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의 책들은 영어의 묘미를 살릴 수 있는 문장의 책들이 많은데요, 그만큼 우리말로는 그 묘미를 살리기가 어렵기 때문이지요.


책의 분위기에 맞는 의성어가 매 장면마다 나오는 것으로 유명한  "We're going on a bear hunt"라는 책은 오랜 시간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책인데요... 이 책의 번역서를 보면 'splash splosh'는 '덤벙 텀벙', 'squelch squerch'는 '처벅 철벅', 'HoooooWooooo'는 '휭휘이힝'으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영어로는 겹자음과 철자 한자의 변형으로 생동감과 화려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반면, 우리말로는 제대로 표현할 비슷한 단어도 없거니와 원어가 주는 특별한 그 느낌이 반감되지요.


의성어는 뜻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 소리가 주는 '감'이 더욱 중요한데, 소리가 주는 느낌까지 그대로 살려서 번역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마치 '노랗다', '누렇다', '누리끼리하다'를 영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죠. 이 '감'은 결국 원서를 원서 그대로 읽으면서 그 언어가 가지고 있는 문화와 느낌을 흡수하면서 커지기 마련입니다. 그 언어 그대로 감동하는 아이로 키우는 최고의 방법은 결국 번역서와 원서를 오가지 않고 그 언어 그대로 읽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절대! 번역서를 접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책을 읽다 보면 원서로 본 책을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번역서로 접하기도 하고, 번역서를 원서로 접하게도 되지요. 같은 책이 두 가지 언어로 나와 있는 것을 보며 신기하게 생각이 될 수도 있고 두 언어를 비교해 가며 읽는 맛을 느껴 볼 수도 있지요. 또한 어렵거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번역서를 통해 어휘를 확장시킬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의도적으로 번역서와 원서를 같이 읽힐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


참, 번역서는 영어가 서툴거나 책의 흐름을 미리 알고 아이에게 설명해주기 위한 엄마·아빠에게는 훌륭한 참고서(혹은 답안지) 같은 역할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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