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처음부터 될 수도 없었다
인생의 한순간도 인싸였던 적이 없었다. 돌이켜보니 그렇다. 성격으로 보나, 친구의 물리적인 숫자로 보나 모든 면에서 본투비 아싸였고, 딱히 불만이 없었다. 굳이 외로움을 진하게 느끼는 사람도 아니었고 혼자 노는 것도 참 잘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고독 비슷한 것이 필요하다는 중이병스러운 생각도 가지고 있어서, 대하기 어려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초고속으로 포기해버렸다. 나 한 명이 모두를 왕따시키는 형국이었고, 주위 사람들은 쟤가 왜 저러는지 오해하기 딱 쉬운 상황이었고.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기 시작한 이래로 인생 전체가 그렇다.
인싸가 되고 싶었던 적은 많았다. 나는 중학교와 집에서 꽤 동떨어진 동네의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다. 근데 그때는 진짜 그 큰 학교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삶에 지장이 생길만큼 외롭더라. 그래서 성격이 그렇게 안 되었는데도, 마구 인싸 코스프레 하고 다녔다. 친구들과 부대끼며 내가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면서 얘들 웃기려고 노력하고, 우르르 몰려도 다녀봤고, 급기야는 고등학교 인싸의 상징이라는 학생회에서도 한 자리 맡게 되었고… 재미는 있었는데, 좀 고통스러웠다. 그 과정을 즐길 수가 없었다.
사람을 주도적으로 사귀어 본 경험이 적어서, 정말 친한 친구들을 대할 때도 처음처럼 어려웠다. 실제로 친한 친구 정도 되었으면 그냥 웃고 넘어가는 말 몇 마디 뱉어도 내가 말 잘못한 건 아닐까 혼자 미친듯이 고민하고, 친구들이 나를 내치면 어쩌지 걱정했다. 나에게 잘해주면 과도하게 좋아했다. 진짜 과도하게. 무슨 은혜를 입은 것 마냥 좋아했다. 스스로 설정한 내 위치가 엄청 낮았다. 그래서 그냥 가끔은 혼자, 오래 있고 싶었다. 닝겐관계에 대한 복잡한 생각 안 해도 되는 공간으로 들어가서, 혼자 쓸데없는 글이나 끄적대는 시간이, 나에게는 필요했다.
대학 들어오고 머리가 좀 크고 나서는 조금은 괜찮더라.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를 막 하는게 그렇게 큰일인가 싶기도 했고. 굳이 인싸를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 아싸를 자처했다. 인싸가 되기를 포기했다. 싫은 술자리 안 가고. 싫은 일 안 하고. 그랬더니 삶은 좀더 살만해지고, 불편한 자리에선 도망칠 수 있었다. 확실히 알아버린 사실. 아싸가 디폴트다. 굳이 노력하지 않으면 아싸가 된다. 그리고 그 삶은 상당히 괜찮다. 사실 원래 인싸가 될 수 없었던 것 아닐까 싶은 생각. 결국 사람은 편한 곳으로 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이 사회는 인싸를 더 원한다(당연히). 스무 살에서 몇 년 더 살아보니 느낀다. 사람들 관계에 기름칠 잘 하는 사람들이 더 대접받고 기회가 더 많다는 사실. 자명하다. 하지만 본성 바꾸기가 가능하지도 않고, 과정이 너무 괴롭다. 평생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날 수 있었음 좋겠다. 말도 안되는 소리인거 아는데… 사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주위의 초 고랩 아싸들이 나름 사회생활 잘 하고있는 거 보면… 뭐 나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얄팍한 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