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으로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권인걸 씀, 우리의대화, 20
*2020년 7월 격월간 교육잡지 <민들레>에 기고한 글입니다.
독서모임을 운영한 지 9년째다. 400회 이상 독서와 글쓰기 관련 모임을 기획, 운영했고, 강연과 출판, 독서신문을 발행하며 독서모임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왔다. 기어코 책방까지 열었으니 이 정도면 독서문화진흥상(?)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고 돈을 받고 하는 일도 아니다. 오로지 내가 좋아서 한 일이다. 가끔은 나도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 일을 어떻게든 끝까지 해보고 싶었고, 이제는 독서모임을 하지 않는 나를 상상하기가 어려운 지경까지 왔다. 매혹을 넘어 중독이 된 독서모임. 세상에 나 같은 사람 또 있을까?
있었다. 아니 많았다. 전국 방방곳곳, 또는 인터넷, SNS 속에서 수많은 독서모임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그 독서모임을 꾸려가는 운영자들이 존재한다. 저마다 다른 목적과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비슷한 고민을 한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는 대화를 나눌까? 어떻게 하면 이 모임을 더 오래 꾸려나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나의 해답을 2018년에 『나는 고양이쌤입니다』라는 책으로 쓴 적이 있다. 책까지 썼지만,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또 다른 해답이 궁금해 『이 책으로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를 넘겨보았다. 이 책은 독서모임 방법론에 대한 책은 아니다. 책을 읽고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저자가 느끼고 고민한 삶의 태도에 관한 에세이다. 그러나 읽다 보면 알게 된다. ‘독서모임은 이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 하고 말이다.
이 책의 저자 권인걸 씨를 알게 된 건 2년 전이다. 독서모임 운영이 7년째에 접어들 무렵 슬럼프가 왔던 것 같다. 책방 문을 연 뒤, 독서모임 회원이 늘고, 모임도 많아졌다. 내 일이 따로 있는 상태에서 그와 맞먹는 정도의 시간을 독서모임 꾸리는 일에 투자해야 했다. 투입 대비 산출이 제로인 일에 열성적으로 매달리는 나를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지친다고 하면 ‘그럼 하지 마’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에 시달렸다. 모임과 강연을 열어주어 고맙다는 말도 더는 힘이 되지 않을 무렵, ‘나 같은 사람 또 있나? 독서모임 운영이 직업이 될 수는 없을까? 그럴 수 없다면 앞으로 내가 몇 년이나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두려움이 들었고, 무심코 검색을 하다가 ‘권인걸 북엔터테이너’란 사람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책으로 즐거워지는 시간을 만듭니다”라는 소개 문구와 잘 어울리는 ‘북엔터테이너’라는 명칭이 새로웠다. 없던 영역을 개척하고 스스로 창조한 직업으로 명함을 만드는 그의 모습에 괜히 안심이 되었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앞으로도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그가 일하는 모습 자체가 나에게 주는 응원처럼 느껴졌다. 그가 운영하는 북클럽에 찾아갔고, 이후 그를 통영으로 초청해 세계문학 북클럽을 6개월간 함께 진행했다. 그와 나는 운영하는 스타일이 달랐고, 그래서 배울 점이 많았다. 내가 연 독서모임에 온 분들은 “도끼 같은 모임”이라는 평을 많이 하신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을 할 수 있고, 편견을 깨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고. 저자가 운영하는 북클럽은 무릎담요 같다. 마음결을 쓰다듬고 서로 따뜻한 온기와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기 위해 애쓰는 곳이다. 그의 이러한 성향이 책 곳곳에 잘 묻어난다.
책 속에서 독서모임을 하던 한 회원이 말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하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라, 너보다 힘든 사람 많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고, 그럴 때마다 사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더 강해진다고. 당황할 법도 한 순간에 저자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추천해주며 “삶의 무의미를 받아들이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며 자신도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힘들어하지 말라는 말만큼 무의미한 말이 있을까. 저자는 제대로 경청하면 애써 위로하려 하지 않아도 위로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은 언제 위로받는가. 애써 위로하려 하지 않을 때,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받을 때 위로받는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거창하고 멋진 말이 아니다. 적절한 질문과 진심 어린 경청, 그리고 그런 마음이 들 수 있겠다는 감정의 포옹이다. 상투적이지만 정말 그렇다.” _21쪽
나 또한 독서모임에서 많은 위안을 얻었다. 결혼과 동시에 낯선 곳에서 살게 되면서 직업도 가족도 친구도 다 멀어져서 외로웠던 때 나는 독서모임을 열었다. 당시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김화수’라는 사람 자체보다 나에게 부여된 역할로 나를 판단하려 했다. 아내로, 며느리로, 기혼여성으로서 나는 남편을 내조하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이를 얼른 낳아야 하는 존재로 규정되었고,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나에게 주변은 여러 방식으로 압박을 가했다. 나는 더는 그런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지 않았으나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궁금해하고 내 생각을 들어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 독서밖에 없었기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독서를 매개로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 중 대부분은 나처럼 위로와 다정한 대화가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책을 읽고 책을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서로의 존재 가치를 알아봐주고, 서로의 생각에 감탄해주면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찾아갔다. ‘독서’가 아닌 ‘독서모임’의 가치를 발견하는 시기였다.
물론 독서모임의 본질은 ‘책’에 있다. 초창기의 혼란을 거쳐 안정기에 접어들자, 단순히 책 읽고 난 후 감상 정도를 나누던 모임에서 벗어나 책을 깊이 읽기 위한 욕구가 커졌고, 그에 따라 나의 역할도 커졌다. 매번 ‘이 책으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야 모임에 대한 만족도가 커질까? 어떤 질문을 해야 책에 대한 이해가 커질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고, 읽고 난 이후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등 수많은 고민을 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특히 책과 독자를 이어줄 발제가 중요했는데 그건 내가 가진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었기에 아주 힘들었고, 때론 나 말고 다른 이가 대신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따라 읽은 책만 수백 권이다. 그 시간은 온전히 나의 역량이 되어 돌아왔고, 그다음 책을 읽고 새로운 발제를 만들 수 있는 바탕이 되었으며, 내 경력이 되고 내 가치가 되었다.
저자 또한 나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왔을 것이다. 가끔 내게 “발제는 어떻게 만드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답한다. “권인걸 북엔터테이너가 운영하는 ‘우리의 대화’라는 블로그가 있어요. 그분이 해놓은 발제를 참고해서 연습을 하다 보면 좋은 질문거리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저자는 독서모임을 준비하면서 만드는 발제를 블로그에 공개한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많이 부족하다 싶은 것만 아니면 누구나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나 또한 독서모임 카페에 올리긴 하지만, 가입한 회원이 아니면 보기 힘들다. 모두가 볼 수 있게 공개하는 것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생각한 질문거리들이 책의 본질을 많이 벗어나거나 오독의 결과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이 모두에게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만은 아니기에 독서모임에 오는 회원들의 관심사나 성향에 따라 발제를 할 수도 있다.
같은 책이라도 저자의 질문과 나의 질문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에겐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발제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노하우는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다. 나는 진정으로 타인의 생각이 궁금하다. 내가 좋아하는 등장인물을 다른 사람도 좋아하는지, 내가 별로였던 책을 그 사람은 어떻게 읽었는지, 어제 본 뉴스 기사가 다른 이에게는 어떻게 다가오는지, 책이 당신을 변화시켰는지, 당신이 책을 재구성했는지 너무너무 궁금하고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나와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를 확장시키고 때론 각성시킨다. 저자 또한 책 자체보다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더 많은 걸 얻는다. 힘들고 고달파도 우리가 계속해서 독서모임을 여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다각적인 관점과 문제의식을 가지려면 다른 시선을 가진 이들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나의 익숙함은 타인의 시선을 거칠 때에야 비로소 낯설어지기 때문이다. 책도 책이지만 사람들과 대화할 때 더 많이 배우고 성찰한다. 계속해서 함께 읽는 이유다.” _109쪽
독서모임이 늘 상호존중과 경청의 자리가 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격렬한 논쟁의 장이 되기도 하고 그 논쟁에서 상처받는 사람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때 진행자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나는 단 한 번도 중립적인 진행을 해본 적이 없다. 처음 독서모임을 시작할 때부터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독서모임을 열었으니 사회만 보고 싶지는 않아요. 저도 하나의 참여자로 여겨주세요” 하고 회원들에게 양해를 얻었다. 내가 책을 읽거나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의 의견 교류를 통해 지금 현재 나의 관점을 조금 더 명확히 갖거나 수정하고 싶어서다. 또 내가 무엇을 모르고 또 아는지를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대신 발제는 일주일 전에 공개하여 다른 참여자들도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저자는 나와는 좀 달랐다. 편향되지 않게 대화를 조절하고 논쟁이 격해져서 마음이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 할 말이 있어도 참고 중립을 지키려 했다.
“한때 나는 논쟁적인 주제가 나오면 늘 중립을 고수하곤 했다. 중립을 지키는 게 가장 합리적이고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중립이다’는 말은 ‘나는 그 사안에 대해 잘 모른다’는 무지의 표현이거나, ‘나는 누구에게도 공격받고 싶지 않다’는 회피의 표현이었다. 어느 쪽이든 썩 자랑할 만한 입장은 아니었다.” _68쪽
저자의 태도가 달라진 계기는 한 참가자의 질문 때문이었다. 저자는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모임 도서로 선정한 후 한 참가자에게 이런 질문을 들었다고 한다. “이 책을 고른 저의가 뭡니까?”
그 참가자는 책의 관점이 너무 편향되어 있는 것 같다며 불만을 표했다. 특히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건강 연구를 다룬 ‘해고노동자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란 글을 문제 삼았다. 한쪽 입장, 즉 노동자의 입장만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질문을 받은 후 ‘중립적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논쟁적 사안에서는 누구나 자기 입장을 갖게 되고, 각자의 입장은 결국 편향된 생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누구나 편향되어 있고 생각의 중립은 불가능(68쪽)”한데, 누군가의 목소리를 편향된 목소리로 치부하는 것도 결국 권력의 작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권력을 가진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관점이 마치 보편인양 퍼뜨릴 때,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작은 이들의 관점은 편향되거나 극단적인 일부로 폄하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럴 때 중립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한쪽의 입장에 무릎 꿇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오히려 균형을 맞추는 일임을 알게 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가 되려면 아픔과 슬픔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꾸만 아픔 이야기를 읽고, 슬픔에 다가가려 애쓰고, 사람들에게 같이 이야기해보자고 권한다.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아픔이 길이 되게 하는 방법은 그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세상엔 들려야 할 작은 목소리들이 너무나 많다.” _70쪽
매번 듣던 이야기를 또 듣고, 매번 하던 생각을 또 할 거면 집에서 혼자 책을 읽어도 된다. 그러기엔 내 인생이 너무 아깝고, 안 해 본 생각을 하면서 나를 갱신하고 싶다면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독서모임 참가자들이 가장 많이 남기는 후기가 “평소라면 읽지 않았을 책을 읽고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이다. 특히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독서모임을 꼭 권하고 싶다. 예의 바른 사람들 또는 나에게 별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비판을 받아본 경험도 없으니 틀린 줄도 모르고 살아왔던 사람들이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라는 애정 어린(?) 비판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나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점검하기에 독서모임만큼 가성비 좋은 곳이 없다.
그렇다면 독서모임에서 나오는 모든 이야기는 말해질 가치가 있을까? 그렇지 않다. 독서모임에서 혐오 발언이 나올 때도 있고, 타인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거나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발언권을 독차지하려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정치와 종교 관련 책은 읽지 않는다고 미리 선언하는 독서모임을 본 적도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정치와 종교가 아니라도 혐오 발언이나 상호비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페미니즘 관련 책을 다루면서부터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모임의 80퍼센트가 여성 회원이다 보니 관심은 높아져갔다. 우리는 페미니즘 책을 깊이 읽는 모임과 글쓰기 모임도 만들었고, 관련 이슈를 설명해줄 전문가를 초청하기도 했다. 이런 기류에 불만을 품고 그만두는 회원도 생겼고, 모임 중에 격하게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단순히 의견을 표명하는 것을 넘어서 혐오표현까지 갔을 때는 참기가 어려웠고 제명을 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처음에는 누구든 무슨 이야기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참고 있는 동안 혐오 발언은 계속될 것이고, 그걸 가만히 듣고 있는 것만으로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저자를 만나서 독서모임 운영에 대한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내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자 저자도 한 참가자가 반복적으로 혐오 발언을 하고 있어 고민이라는 말을 했다. 그 사람의 발언을 내버려두거나 무시하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결심했다고 한다. 제대로 싸워보기로. 저자는 위근우 작가의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를 독서모임 도서로 선정하고 그 사람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독서모임 운영자다운 결투 신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 싸움에서 저자는 분명 ‘아무도 죽이지 않는’ 승리를 거두었을 것이다.
사실 나 또한 내 주장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거나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그 순간 내가 그것을 깨닫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덜 배워서 그러기도 한다. 며칠 또는 몇 달이 지나 내 무지와 무례를 번뜩 깨닫고 카페에 반성글을 쓰거나 모임에서 사과한다. 투지를 불태우는 것도 깨닫고 반성을 하는 것도 결국 독서와 독서모임 과정에서 일어난다. 어떻게 보면 독서모임은 인간됨의 과정이다. 읽고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과정은 수련의 과정이다. 내가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또 “무해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대신, 언제든 유해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상기(57쪽)”하기 위해 받는 수업이다.
“그 말을 빌려 나는 살아 있는 한 끝까지 읽고, 질문하고, 듣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리하여 타인의 상처를 느끼는 감각을 더 예민하게 길러내고 싶다. 나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상처 입히게 된다면 그 즉시 사과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자 한다. 이것이 내가 사람을, 그리고 나의 삶을 사랑하는 방식 중 최선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57쪽)
독서모임만 운영할 경우 과연 안정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나 또한 다른 직업이 없었다면 이 일을 이토록 열정적으로 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늘 비용을 고민하는 이유다. 저자 또한 무료로 모임을 진행하지는 않는다. 회당 5,000원에서 10,000원 정도의 비용을 받지만, 공간 사용료나 음료를 제공하고 나면 남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저자에게 수입은 보통 공공기관의 독서모임이나 강연 의뢰일 것이다. 이마저 코로나19로 위축된 지금 독서모임의 미래는 어둡게만 느껴진다.
회당 4~5만 원을 받는 기업형 독서모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모든 책방이 교보문고가 될 수는 없듯 독서모임도 마찬가지다. 나는 사실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비용이 높아지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노쇼를 막고 책임감을 부여하기에 적합한 비용을 소액 받는 것은 괜찮지만, 참여 자체가 특정한 사람들밖에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고비용이 되면 독서모임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훼손될 것만 같다. 독서모임은 다양한 계층과 삶의 형태를 가진 사람들이 가성비 좋은 매개체인 책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배우는 장이다. 저마다 가진 것을 타인과 나누겠다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비용을 낸 만큼 얻어가겠다는 자세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영자 입장에서도 고비용은 부담이 된다. 받은 만큼 주어야 하는데 그럼 운영자가 오롯이 서비스 제공자의 입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독서모임은 책방이나 도서관에서 모집하여 운영하거나, 개개의 운영자들이 거의 자원봉사하듯 운영하고 있다. 도서관 독서모임은 직원의 역량에 따라 질 차이가 엄청나다. 때로는 이름만 있고 운영이 안 되는 곳도 많다. 책방은 책을 파는 곳이지 독서모임 운영이 주가 되는 곳은 아니다. 대부분 협소한 동네책방에서 독서모임을 하는 동안은 손님이 들어올 수가 없으니 독서모임을 열심히 하고 싶어도 운영 자체가 어렵다. 개인이 운영하는 독서모임은 운영자가 그만두면 사라진다. 매년 독서인구가 줄어든다고 걱정하는 정부가 진정 걱정이 된다면 어디에 돈을 써야 할까? 나는 개인 운영자들이 도서관에서 독서모임을 조직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장소는 꼭 도서관이 될 필요는 없다. 자유롭게 조직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운영비와 수고비를 지원한다면 지역 특성이나 운영자의 개성에 맞는 여러 독서모임이 생겨날 수 있고, 그 독서모임이 동네 책방과 연계하여 여러 독서문화행사를 기획할 수도 있다. 지역주민, 도서관, 동네 책방, 독서모임운영자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코로나19로 멈춰있던 모임을 최근 다시 열기 시작했다. 혼자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독서모임, 소설 원작 영화 모임 등 새로운 모임과 함께 온라인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있다. 나 또한 두 달여를 온라인으로 독서모임을 하다가 6월부터 다시 오프라인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마스크를 끼고 전보다 떨어져 앉아 표정도 잘 알 수 없는 상태로 대화를 힘들게 이어 나가던 중 한 회원이 이런 말을 했다. “이제 모든 걸 온라인으로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만나서 얘기하니 뭔가 안심이 되고 기분이 좋아요.”
문자로, 영상으로 채워지지 않던 것이 만남으로 채워졌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바이러스가 창궐해도 사람들은 만나고 대화하고 싶어 한다. 또 만남과 대화를 통해 무언가를 얻고 싶어 한다. 그 시간이 무의미해지지 않도록,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또 나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이 저자와 나의 공통된 역할이다. 저자가 더욱 잘되면 좋겠다. 저자가 하는 일이 잘되면 내가 하는 일도 잘될 것이고 우리의 독서모임에 오는 사람들의 삶도 더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을 마치며 이런 상상을 한다. “만약 지금의 모습으로 열여덟의 나를 만난다면 그는 나를 마음에 들어 할까?” 이어서 그는 “지금의 나는 열여덟의 내가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는 모습으로 살고 있다. 그러니 나는 그저 그 질문 앞에서 떳떳할 오늘을 사는 수밖에 없겠다. 아주 맘에 들진 않더라도, 적어도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기를 바랄 뿐(180쪽)”이라고 답한다. 성공과 인정에 골몰했던 자신을 닦달하고 미워하기보다 사람들과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면서 세상을 이해하려 애쓰는 지금의 자신이 훨씬 괜찮은 어른이라고 느낀다면 우리가 독서모임에서 하려고 했던 것을 웬만큼은 이루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아직은 하고 싶은 것이 더 많다. 독서모임이 10년째가 되는 때 어떤 방식으로 기념을 할까 생각한 적이 있다. 다 같이 해외여행이라도 한 번 갈까 했는데 코로나19로 그건 어렵게 되었다. 나는 대신 나에게 안식년을 주기로 했다. 약 1년간 정기 모임을 중단하고 다음 10년을 위한 준비 기간을 가지려 한다. 물론 나는 독서모임 중독자니 마냥 쉬지는 않을 것이다. 게릴라 모임이나, 단기 글쓰기 프로젝트, 저자 초청 강연 등을 준비 중이다. 10년을 혼자 운영해왔다면, 다음 10년은 함께 운영하고도 싶다. 더 많은 독서모임 운영자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 내가 가진 노하우를 나누는 일도 하려 한다. 또 가까운 경남권 사람들이 취향에 맞는 독서모임을 쉽게 찾고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 매일 새로운 책이 출판되는 한 할 수 있는 독서모임은 무궁무진하다. 다만, 함께할 사람들과 약간의 도움이 필요할 뿐이다. 그대, 우리와 함께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