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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Jan 22. 2021

행복은 빛나지만 짧다

쑥이와의 이별

봄이와 달래는 무럭무럭 커서 젖과 함께 베이비 사료도 오독오독 먹는데 쑥이는 영 자라지를 않았다. 털도 푸석하니 모량도 적고, 다리도 꼬리도 구부정하고 휘어 있었다. 두 아이는 고양이 태가 나기 시작했지만, 쑥이는 여전히 요다 같은 생김새였다. 못생기고 빼빼 말랐지만, 나와 남편은 쑥이를 가장 예뻐했다. 조그맣고 잘 뛰지도 못하는 녀석이 남편을 보면 그렇게 쫓아다니는 것이었다. 개구리처럼 폴짝폴짝 뛰면서 남편을 따라 달리면, 노랭이가 그걸 보고는 쫓아와서 쑥이를 물고 갔다. 그럼 쑥이는 엄마 품을 탈출해서 또 남편에게 달려가는 것이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매일매일 쑥이와 잡기놀이를 했다. 작고 여리긴 하나 잘 뛰고 잘 노니 괜찮겠지, 늦자라겠지 했다.

     

작고 소중한 쑥이


아쟈씨가 조아요



태어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쑥이가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눈병이 나으면 재발하고 나으면 재발하고를 반복했는데 설사까지 하니 초조해졌다. 큰 병에 걸린 건지, 혹시 전염병인지, 치료가 되는 병인지, 다른 애들은 괜찮을지 온갖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병원엔 데려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남편이 먼저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마당 고양이에게 간섭은 적당히 하겠다고 그렇게 다짐을 했으니 눈치를 주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었다. “몰라, 죽어도 자기 운명이다. 어쩔 수 없다.”고 큰소리치긴 했으나, 초조해 하는 게 티가 안 날 수 없었다. 나중에 내가 후회하고 힘들어 할 게 뻔하다 생각했는지 남편이 같이 병원에 가자고 말해주어서 못 이긴 척 가기로 했다. 금요일 저녁이라 원래 가던 병원은 문을 닫아 거제도에 24시간 병원을 가야 하나 고민하던 중 야간 진료해줄 수 있다는 병원을 찾아서 달려갔다. 길고양이라고 했더니 별다른 검사 없이 약을 지어줬는데, 별 차도가 없었다. 결국 다음 날 거제도 24시간 병원에 가서 입원을 시켰다.


거제도 병원은 독서모임 회원의 남편이 수의사로 근무하는 곳이었다. 쑥이를 처음 병원에 데려가기 전에 그 회원에게 먼저 카톡을 보냈다. 길고양이고 증상이 이런데 병원을 데려가야 할지, 데려간다면 비용이 얼마나 들지 남편에게 좀 물어 봐 줄 수 있겠냐고. 의사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병원으로 데려 와라. 진료를 해 봐야 안다.”일 뿐일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카톡을 보내며 망설인 이유는 단 하나 돈 때문이다. 이전 해에 우란이가 갑작스럽게 간부전과 지방간이 와서 통영에서 치료가 안 돼 부산에 있는 고양이 전문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한 적이 있었다. 그해 거의 천만 원 가량을 고양이 병원비로 썼다. 고양이 몫으로 적금을 들고 있었지만 그 돈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이 액수는 남편에게 비밀로 하고 있다. 돈을 많이 썼다고 타박할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냥 미안해서다. 남편이 2만 원짜리 화분만 사도 “화분이 그렇게 비싸나?”하고 물었던 나였기에 양심의 가책이.... 어쨌든 그때 처음으로 병원비 무섭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마당고양이를 위해 그 정도 돈을 쓸 수 있는가를 스스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 회원분은 당연히 병원에 데려가 봐야 알 수 있다는 말을 했고, 결국 입원을 시켰다. 쑥이가 자기 몸만 한 바늘을 꽂고 수액을 맞는 걸 지켜보는 것도 힘들었다. 마당에서 기운 없이 웅크리고만 있던 쑥이는 병원이 싫었는지 내가 다가가면 벌떡 일어나서 있는 힘을 다해 빽빽 울어댔다. 수의사 선생님도 “애기야.”하고 부르면 달려와서 울어댄다고 했다. 활력은 있는데 도통 먹지를 않으려 하고, 너무 약하게 태어났기에 적극적 치료가 어렵다고 했다. 나는 쑥이도 걱정됐지만, 병원비도 걱정이었다. 2차 병원이라 입원비가 비쌀 텐데 하고 쑥이보다 돈 걱정을 하고 있는 내가 미웠다.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마당에 밥을 주고 길고양이를 불러들인 내가 한심해서 너무도 우울했다. 그래도 쑥이가 나아준다면, 건강하게 퇴원해준다면 잘한 일이라고 나를 칭찬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쑥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별 다른 처치도 하지 못하는데, 수액을 빼고 강제급여를 멈추면 아마도 죽을 거라고 했다. 나는 결심을 해야 했다.     


쑥이가 입원한 뒤 노랭이는 나만 보면 울어댔다. 원래 잘 울지 않는 녀석이 마치 내 애기 어딨느냐 묻는 것처럼 나를 가만히 쳐다보며 울었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쑥이를 퇴원시킬 이유가 필요했다. 매일 매일의 입원비가 무서웠고, 퇴원하더라도 앞으로 보살필 자신도 없었다. 입원실에서 죽게 하기 보다는 엄마 품에서 보내주고 싶었다. 그렇게 열하루 만에 쑥이는 마당으로 돌아왔다.     


쑥이는 마당에 들어오자마자 엄마에게 빼액빼액 울며 달려갔다. 수의사 선생님은 열흘이나 지나 엄마가 젖을 안 물릴 수도 있다고 걱정했지만, 쑥이가 달려들자마자 노랭이는 누워 젖을 먹였다. 출산한 지 두 달이 다 되어 거의 빈 젖이나 다름없어 영양분이 없기에 그걸 먹는다고 쑥이가 건강해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쑥이는 기운차게 젖을 빨았고, 엄마 옆에서 잠들었다. 엄마가 어딘가로 가려고 하면 등위에 올라타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엄마 젖 외에는 어떤 것도 먹지 않고 그렇게 일주일을 보낸 뒤 쑥이는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사산된 아기를 보내는 것과는 달랐다. 쑥이를 보내면서 나는 처음으로 애정을 가진 고양이의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동물의 사체는 아무 데나 묻거나 버리면 안 된다. 버릴 때는 일반쓰레기 봉투를 이용해야 하고, 아니면 동물병원에 비용을 주고 처리를 맡기거나, 화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정이 든 동물을 쓰레기 봉투에 버리는 건 힘들었고 화장을 하기에는 너무 작은 아이였다. 남편과 의논해서 쑥이를 마당에 있는 가장 큰 나무인 금목서 아래 묻어주었다. 금목서는 통영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나무인데, 9월 말, 10월 초가 되면 황금빛 작은 꽃들을 화려하게 피어낸다. 온 동네가 상큼한 꽃향기로 가득 차면 작고 소중했던 쑥이가 떠오른다. 황금빛 꽃 색깔이 꼭 쑥이 색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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