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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Jan 29. 2021

나 김한발. 육아에 진심인 편

우당탕탕 형제 육아

노랭이가 이상했다. 집 안에 있는 새끼들을 계속 구석으로 물어 날랐다. 마당 구석에는 창고가 있는데, 안 쓰는 물건들과 목재 등을 마구잡이로 쌓아놓아서 위험하기도 했지만, 깨끗하지가 않았다. 여름이라 비가 많이 와서 습기도 많이 찼는데 그런 곳에 새끼들을 놔두니 피부에 곰팡이가 생기기 시작하고 허피스(고양이 감기 종류) 증상이 나타났다. 눈을 겨우 뜬 새끼들이 눈곱 때문에 눈이 붙어버렸다. 그대로 심각해지면 실명이 될 수도 있기에 깨끗한 수건으로 닦이고 안약을 넣어야 하는데 구석으로 들어가 버려 치료도 힘들고 낫지도 않았다. 노랭이는 숨기고 나는 또 찾아서 꺼내 놓고 하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나를 믿고 내 집에 새끼를 낳았으면서 왜 그러는 걸까?     


혹시 내가 쑥이를 오랫동안 병원에 데려갔던 것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달래를 병원에 데려가기도 했는데, 그렇게 또 어딘가로 데려가 버릴까 봐 나를 피하나 짐작하기도 했다. 아니면 그냥 너무 힘들어서 제대로 된 판단을 못 내리나 싶기도 했다. 새끼들을 정말 잘 돌보던 노랭이였는데 두 번째 출산이 너무 힘들었는지 기운 없이 누워있는 때가 많았다. 첫 출산 때는 새끼들 똥을 보기가 힘들었는데, 두 번째에는 데크 여기저기서 똥이 발견됐다. 노랭이가 그루밍도 배변 유도도 잘해주지 못하니 새끼들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젖도 영양분이 없는 것 같았다. 저러다 다 잘못되면 어쩌나 걱정이 커질 때쯤 그들이 나섰다.     


한발이와 양발이가 새끼들을 돌보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 경력 4개월도 안 되는 녀석들이 꼬물거리는 동생들과 힘 빠진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적극적으로 육아 전선에 뛰어들었다. 한참 놀 때인 캣초딩들이 마당 놀이터도 끊고 동생들 그루밍에 배변 유도에 놀이 상대까지 해주었다. 그렇게 철없이 온 동네를 뛰어다닐 때는 언제고 마치 인생 2회 차, 아빠 경력 3회 차 정도의 수완을 보이며 동생들을 잘 돌봤다. 동생들이 좀 크면서 한발이와 양발이 등에 올라가서 뛰고 매달리고 긁고 해도 점잖게 참아주었고, 밤이면 춥다고(한여름인데?) 동생을 꼭 끌어안고 잠들었다. 그러다 힘들면 같이 엄마 젖도 먹고.... 어쨌든 노랭이가 한결 수월해졌는지 더는 새끼들을 숨기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형아들 조아여. 근데 왜 형아는 젖 안 나와여?


육아에 지친 어른(+청소년들)


특히 한발이의 동생 사랑은 정말 대단했다. 비가 오면 거실 창으로 얼굴이 제일 꼬질꼬질한 동생을 데려와 애타게 울어댔다. 동생만이라도 들여보내 달라는 것처럼. 언제나 그 작전은 내게 통했다. 밖에 나가 보면 동생들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집 안에 있고, 한발이와 양발이는 비를 맞고 울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서 측은지심이 안 들면 내가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또다시 현관으로 고양이들을 대피시키고 다음 날 와장창창 난장판이 된 현관 안을 이를 꽉 깨물고 치우는 수밖에.  


현관 와장창


한발이는 어딜 가든 동생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나름의 교육도 시켰는데, 가장 주력하는 분야는 방충망 뜯기였다. 끝나지 않는 고통을 겪고 있던 방충망에는 여기저기 한발이가 뚫어놓은 구멍들이 있었는데, 몸집이 작을 때는 그 구멍으로 들락날락했었지만 덩치가 커서 더는 들어오지 못했다. 그러자 동생에게 방충망 클라이밍 법, 구멍 뚫는 법, 들어가서 집 고양이 놀라게 하는 법 등을 전수했다. 수제자 예쁜이(새끼들 중 유일한 중장모에 오동통해서 예쁜이라 불렀다)는 종종 구멍으로 들어와 랏샤 아저씨와 인사하고 살룻 아저씨 앞에서 깝치다가 솜방맹이를 맞곤 했다. 우란이와 룬은 이미 도망가고 없고....       

잘 봐.. 내가 아쥼아 시선을 돌릴 테니 얼른 저 구멍으로 들어가라구


이렇게 귀여운 것들을 매일 같이 보는 나는 행복했을까? 당시 내가 남편에게 보낸 카톡을 보면 가장 많이 하는 말 “배고파”와 “밥 줘” 다음으로 “힘들어”, “아파”라는 말이 많았다. 책방을 낸 지 3년째였는데, 일이 정말 많았다. 독서모임 운영, 책방 운영, 글쓰기 수업 등으로 매주 정기적으로 150여 명의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한 달에 20-30권의 책을 읽고 발제를 하고 교재를 만들었다. 책방 지원 사업에 지역 축제 기획까지 겹쳐 온전히 쉬어본 적이 없었다. 내 일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란데, 고양이들 일까지 겹쳐 자는 시간조차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남편이 휴직을 하던 중이라 가사 일을 도맡아 하면서 책방 청소와 서류 업무, 또 고양이 병원 데려가는 일 등을 도와주었기에 겨우 겨우 해 나갈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아마 과로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쓰러질 만큼 힘이 들었다. 몸이 아픈 것보다 나 자신에 대한 미움이 더 컸다. 나는 어쩌자고 책임도 못 질 일을 벌였을까. 내 한 몸도 못 챙기는 사람이 다른 생명을 어떻게 돌본다고 이러는 걸까. 집 고양이 네 마리한테도 잘 못 해주면서 이제 마당에 8마리까지 다 어쩔 건가. 내가 애니멀 호더도 아니고.... 입양을 못 보내면 어떻게 해야 하나. 또 죽어가는 것을 봐야 하나. 이런 생각들에 자책하게 되고 고양이를 볼 때마다 괴로웠다.      


그렇게 밤새 자책하며 잠을 설치고도 다음 날이면 마당으로 달려가 아장아장 걸어오는 노랭이 새끼 시즌2 들을 향해 스마트폰을 들이대고 사진을 찍었다. 이 세상 귀여움이 아니었기에 전날의 걱정은 또 까맣게 지워진 채로. 그들의 생존 전략인 귀여움은 나를 좀비처럼 일으키고 또 일으켰다. “그래! 난 할 수 있어! 꼭 건강하게 키워서 가족을 찾아주자!” 하고 두 주먹 불끈 쥐고 결심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형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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