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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Feb 02. 2021

지나가던 과객이오만

이방인의 출현

그날도 아무 생각 없이 침을 흘리며 젖을 먹고 있는 노랭이 새끼 시즌2들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찍다 보니 갑자기 ‘뭔가 이상한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눈을 비비고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니, 이게 뭐야! 새끼 중 한 마리가 지나치게 덩치가 컸다! 얼른 고개를 들어보니, 못 보던 녀석이 뻔뻔스럽게 노랭이 새끼인 척하며 젖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저 녀석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덩치는 한발이만 한 것이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한발이, 양발이와는 이미 친구를 먹었는지 아무렇지 않게 사냥놀이도 하고 낮잠도 즐기고 있었다. 설마 쟤도 왕머리의 새끼인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동네를 치즈밭으로 일군 원흉 왕머리 녀석을 언젠가는 잡아서 땅콩을....(부들부들)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낯선 녀석은 떠나지 않고 노랭이 가족들과 함께 있었다. 지나가던 과객인 줄 알았는데 눌러앉아버렸다. 노랭이도 녀석을 차별하지 않고, 젖도 먹이고 그루밍도 해 주며 돌봐주니 나도 쫓아낼 이유가 없었다.


노랭아 걔 네 아가 아닌데... 다 노래서 헷갈리니....


자세히 보니 노랭이 가족들과는 생김새가 좀 달랐는데, 같은 고양이과라도 노랭이 가족은 호랑이과라면, 녀석은 사자과였다. 뭔가 좀 모자라 보이는 외모를 자랑하고 있었고, 몸은 청소년인데 얼굴은 벌써 어른이었다. 얘를 뭐라고 부를까 고민하다 지나가는 과객처럼 나타난 출처(?)를 모를 녀석이니 ‘이방인’이라 부르기로 했다. 노랭이 가족과는 달리 사람 손을 타지는 않았다. 내가 오면 도망가고, 2m 안으로 접근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나 또한 이방인에게 그렇게 정을 주고 싶지 않았다. 지금 있는 애들만으로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방인이 노랭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거나, 한발이나 양발이와 싸우고 동생들을 괴롭혔다면 나는 가차 없이 쫓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은 모자라 보이는 외모와 달리 아주 지혜로운 편이었다. 생존의 기술을 알고 있다고 할까? 일단 눈치가 빨랐다. 밥을 먹어도 맨 나중에 먹고, 비가 와도 집 안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또 한발이, 양발이와 함께 동생 육아 전선에 적극적으로 합류했다. 동생들 그루밍부터 시작해, 한참 걸음마를 떼고 쫄랑쫄랑 다니는 동생들을 따라다니며 보디가드를 섰다. 여름이라 모기를 비롯해 벌레가 많았는데 동생들 주변에 날아올라치면 얼른 쫓아주거나 잡아먹었다. 잘 때는 마치 첨부터 자기 동생이었던 것처럼 두 발로 꽉 안고 잤다. 신기한 건 동생들도 거부감 전혀 없이 이방인에게 폭 안겨 있다는 것이다. 진짜 핏줄인가 의심스럽기도 했으나,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 동생 맞다구여.... 그렇게 하고 싶어요....


문제는 이방인의 인싸력이다. 이 녀석이 온 이후로 못 보던 고양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동네에서 부모 잃은 고양이 연합 회장직이라도 맡았던 것인지, 우리 마당을 기웃대는 녀석들이 늘어났다. 보통 청소년쯤 되는 애들이었는데, 와서 잠깐 밥 먹고 가거나 이방인, 한발이, 양발이와 놀다 갔다. 딱히 신경 쓰고 있지는 않았는데, 어느 날 창밖을 보는데, 또 뭔가 이질감이.... 자세히 보니 하얀 녀석 하나가 노랭이 젖을 먹고 있었다. 동네에 흰색 페르시안으로 보이는 녀석이 종종 돌아다니곤 하는데 그 녀석 새끼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온몸이 흰 단모 고양이였다. 아직 2개월도 안 된 완전 아깽이였는데 눈곱이 낀 눈에 피부 곰팡이까지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노랭이는 자기 새끼들 사이에 섞여 젖을 먹는 흰둥이를 내버려 두었다.     



노랭이는 왜 이방인에 이어 흰둥이까지 가족으로 받아준 걸까? 이방인은 같은 치즈라 헷갈려서 그랬다 쳐도 흰둥이까지 받아준 것은 좀 놀라웠다. 고양이 세계에서는 흔한 일인지 몰라도, 인간 관점에서는 특별하게 여겨졌다. 노랭이 가족들은 다른 고양이들에게 관대함을 보일 때가 많았다. 물론 험악한 성묘 수컷 고양이가 나타나면 있는 힘껏 도망가는 녀석들이지만, 상대적으로 온순한 인상의 성묘 수컷이나, 덩치가 작은 고양이들에게는 가리지 않고 친절함을 보였다. 밥을 먹어도, 자기들 집에서 자도, 마당에서 놀아도 별로 싫어하지 않고 어울렸다. 풍부한 먹이 때문에 생긴 관용일지, 아니면 길고양이끼리의 연대감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보다 약한 존재에게 관대하고, 가진 것을 스스럼없이 나누는 모습을 보면 나도 따라 너그러워졌다. 물론 알고 보면  녀석들은 내가 산 집과 내가 산 사료로 생색내는 거지만....     


그건 그렇고, 또 이름을 지어줘 버렸다. ‘흰둥이’ 또한 이방인처럼 떠나지 않고 노랭이 가족과 섞여 살기 시작했다. 흰둥이는 야생성이 살아있었다. 나를 보면 하악질을 하기 일쑤고(내 집인데....) 약이라도 발라주고 싶어 손을 뻗으면 자비 없이 할퀴었다. 하아.... 아프질 말던가....     


어쨌든 이로써 마당은 정말 말 그대로 냥장판이 되고 있었다. 노랭이, 한발이, 양발이, 이방인, 새끼 5마리, 흰둥이까지.... 집 안에 넷과 합치면 열네 마리 고양이가 복작복작대는 그야말로 냥글냥글 책방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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