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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Feb 04. 2021

이거 이거 이 집 고양이요?

츤데레 이웃들

이쯤 되면 이웃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마당에 고양이 10마리가 와글와글 대는 것만도 눈치가 보이는데, 녀석들이 마당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바깥에 돌아다니니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것도 전부 비슷하게 생긴 치즈 고양이들이) 큰 애들은 한참 호기심에 장난기가 많아져서 온 동네를 누비며 주차된 차에서 슬라이딩을 하고, 나무를 타고 오르고, 다른 집 담 위를 유유히 걸어 다녔다. 다행히 이 녀석들은 싸우거나 큰 소리를 내는 법은 없었지만, 다른 수컷 고양이들이 집 주변에서 싸우는 때가 잦았다. 먹이가 늘 풍부한 우리 집 마당을 놓고 영역 다툼을 벌이는 것 같았다. 특히 새벽마다 울어대는 통에 나와 남편은 자다 몇 번을 깨며 불안해했다. 심하게 싸우면 한밤중에도 뛰어나가 싸움을 말리기도 했는데, 이웃들이 우리 집 마당 고양이라고 오해하고 싫어할까 겁이 났기 때문이다.     


이곳은 나의 런웨이


하루는 마당 청소를 하고 있는데, 앞집 빌라에 사는 아저씨가 오시더니 “이거 이거 이 집 고양이요?”하고 화난 목소리로 물으셨다. 후다닥 나가 보니, 한발이가 길 한 중간에 누워 가슴 털을 쓱쓱 그루밍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내 고양이라 해야 할지, 길고양인데 좀 아는 사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고양이라고 시치미를 떼야할지 내적 갈등을 바쁘게 하느라 “어... 어....”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거, 참 이래 예쁜 고양이가 있네. 허허.”하시면서 “함 만져 봐도 돼요?”하시는 게 아닌가. 얼른 “네, 애가 순해서 괜찮아요. 하하.”하고 대답했다. 아저씨는 한발이를 쓰다듬으며 “하 참 니 예쁘네.”하셨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역시 경상도 말은 억양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난 어여쁜 한발이. 이 동네에서 꽃미남을 맡고 있지



다행히 집 주변 이웃들은 고양이들에게 무관심하거나 관대했다. 옆집 빌라에 다소 거친(?) 인상의 아저씨 한 분이 계신데, 담배 피우러 나올 때마다 마당 고양이들을 지켜보면서 우리 집 마당으로 험악한 수컷 고양이가 들어가면 쫓아주거나 나를 불러 일러 주셨다. 그럼 내가 나와 쫓아내 주고 하다 보니, 노랭이 가족들은 날로 전투력이 상실되어 갔고 나는 이웃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환경미화원 아저씨도 고양이를 좋아하시는지 청소하면서 슬쩍슬쩍 마당 안을 들여다보곤 하셨다. 한 번은 살룻을 산책시키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하셨던지 마당 안으로 성큼 들어오시면서, “그건 뭐요? 개요? 너구리요?”하시는 게 아닌가. “아.... 그게 고양인데요.”하니, “허 참 저런 고양이가 다 있네.”하면서 구경하다 가셨다. 내 생각엔 샴 고양이를 처음 보셔서 그런 것 같은데, 남편은 살룻이 너무 뚱뚱해서 놀라서 그런 거라고 했다. 쳇. 이후로도 마당 고양이들을 구경하시느라 우리 집 주변은 아주 천천히 청소를 하시는데, 덕분에 우리 집 주변은 다른 곳보다 훨씬 깔끔해졌고.     


이런 일도 있었다. 대문 옆에 누가 햇반 그릇을 계속 버리고 가서 도대체 누군가 짜증을 냈는데, 알고 보니 옆집 아주머니가 햇반 그릇에 닭가슴살을 담아 노랭이에게 주고 계셨다. 앞집 빌라에 사는 커플도 참치 간식을 주는 모습을 목격했다. 어쩐지 사료가 줄어드는 속도가 느려진다 했더니 맛있는 걸 여기저기서 얻어먹고 다니는 것이었다. 이러다 보니 저가 사료를 주면 아예 먹지도 않고 밥그릇을 엎어버리거나 장난만 쳐 놔서 벌레가 꼬였다. '길고양이 주제에 아무 거나 먹어라!' 하고 속으로만 소리 치며 고오급 사료를 주문하고 있는 나....


주변 이웃들은 다들 내가 나오면 모른 척 하지만, 몰래 내다보면 다들 마당을 들여다보며 흐뭇한 미소로 노랭이의 새끼들을 구경하곤 했다. 사실 모르는 사람이 집 안을 들여다보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나는 때가 때인지라 저렇게 귀여워하다 한 마리 데려가겠다는 사람이 나오지는 않을까 두근대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안타깝게도 단 한 차례의 입양 신청도 없었지만....     

온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치즈 패밀리


고양이 좋아하는 이웃만 있는 건 아니다. 비둘기를 몰고 다니는 할머니도 계신데, 처음 목격했을 때 나는 백설공주를 보는 줄만 알았다. 재활용품 수집을 위해 이곳저곳 살피며 갈지(之) 자로 걸어오는 할머니를 따라 비둘기 스무 마리 정도가 따라 날아오고 있었다. 할머니가 쭈그려 앉아 재활용품을 찾고 계시면 비둘기들도 내려앉아 주변을 걸어 다니고, 할머니가 이동하면 날아서 따라갔다. 마치 보디가드들처럼. 그러다 할머니는 이불을 털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갑자기 비둘기들에게 “이것들이 와이래 따라다니노!”하며 화를 내더니 팔목에 맨 쌀 봉지를 달랑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돌아나가셨다. 비둘기들은 황급히 따라가고. 비둘기와 친한 아빠를 봐 온 나로서는 그저 낯익은 모습일 뿐이었는데, 부끄러우셨던 모양이다.     


노랭이가 두 번째 출산을 하기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본가에 간다고 2박 3일 집을 비운 적이 있는데, 다녀오니 노랭이 가족이 사라지고 없었다. 며칠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영영 떠난 건가 싶어 서운해했다. 사료도 넉넉히 부어주고 갔는데 잠시 집을 비웠다고 사라져 버리다니 배신감마저 들었다. 그런데 장을 보고 오던 남편이

“노랭이 봤다. 다른 집에서 밥 먹고 있던데.”

“뭐! 어디 있든데?”

“건넛집 주택에서 한발이랑 양발이랑 다 같이 밥 먹고 있던데.”

함께 가서 몰래 담 안을 들여다보니, 정말 그곳에 세 마리가 다 있고, 스티로폼 집까지 만들어져 있는 게 아닌가! 뭔가 시원섭섭해서 “잘 됐다. 이제 그 집에서 살겠지! 난 몰라!”하고 돌아왔다. 속으로는 왜 그 집에 갔는지,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집 비웠다고 화가 났는지, 온갖 생각이 다 났다. 100m도 안 되는 곳에 있으면서 인사도 안 오다니 괘씸했지만, 그래도 계속 밥을 부어 두었다. 사실은 꼭 돌아오길 바라고 사료를 고오급 사료로 바꿔두었다. 결국 며칠 안 돼서 셋 다 마당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료 때문이 아니다. 내가 보고 싶어 온 것이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     


그렇게 건넛집 주택과는 약간의 라이벌(?)이자 협력자가 되어 잠시 집을 비울 때 왠지 안심하게 되었다. 사료가 떨어져도 며칠은 그 집에서 밥 얻어먹을 수 있겠지 생각하니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웃인데도 정겹게 느껴진다. 이후에도 노랭이 가족은 그 집에 자주 놀러 가서 자고 오곤 했다. 지나가다 보면 한발이가 제 집처럼 마당에 쭉 뻗고 누워 있는 걸 집주인으로 보이는 분들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계셨다. 고양이를 싫어하지 않는 것만도 감사한데, 이렇게 밥을 주고 잠자리를 내어주는 이웃이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었다.     


물론 문제도 있다. 너무 예뻐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할머니들이 먹다 남은 생선을 모아다가 먹이는 것이었다. 길고양이를 예뻐하는 마음에 모아 오셨을 것이기에 참 뭐라 말하기 힘든 순간이었다. 생선을 먹는다고 탈이 나는 건 아니겠지만, 짜게 간이 되었다면 고양이에게 좋지 않다. 또 생선뼈를 물고 들어와서 데크 여기저기 흘려놓는 통에 벌레가 끼는 것도 문제였다. 그래도 주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지는 못했는데, 다행히 고양이들이 잘 먹지 않고 헤집어 놓기만 해서 그런지 스스로 그만두셨다.     


마당 고양이들에게 가장 위험한 건 사실 그런 간식이나 생선뼈가 아니라, 먹다 남은 치킨이었다. 치킨을 먹고 남은 뼈를 치킨 상자에 넣어 그대로 버리는 사람들이 문제였다. 그럼 고양이들은 상자를 찢어서 치킨을 뜯어먹고 뼈를 여기저기 흘려놓았다. 또 상자가 뜯어지니 주변이 지저분해졌다. 고양이들이 쓰레기를 뒤져서 더러워진다고 타박하는 사람이 생길까 봐 볼 때마다 치워도 소용이 없었다. 한 번은 너무 화가 나 대문에 서서 지켜보고 있는데, 빌라에서 한 남자가 치킨 박스를 들고 나와서 내가 보는 앞에서 버리고 가는 것이었다. 너무 황당해서 아무 말을 못 했지만, 있는 힘껏 째려봐주었다. 고양이가 쓰레기를 뒤져서 환경을 더럽힌다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게 싫으면 일반 쓰레기봉투에 음식 쓰레기를 섞어 버리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된다. 남편은 닭뼈나 조개껍질을 버릴 때 못 쓰는 비닐로 한 번 싸서 일반쓰레기봉투에 버린다. 그렇게 하면 냄새가 덜 빠져서 고양이들이 봉투를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은 없다. 의도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서로에게 민폐가 되게 마련이다, 고양이와의 공존도 마찬가지다. 고양이가 불순한 의도로 쓰레기를 뒤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면, 뒤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지 고양이의 몫은 아니다.     


양념이 된 치킨과 닭뼈는 고양이에게 나쁘다. 내가 보는 데서 먹으면 뺏기라도 하는데, 안 볼 때 먹는 건 방법이 없었다. 결국은 이것 때문에 나는 또 한 차례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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