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이쌤 Feb 08. 2021

여행은 내가 갈게, 입양은 누가 갈래?

가족을 찾을 수 있을까?

하루하루 자라는 새끼들을 보면서 나의 불안도 함께 자랐다. 악몽을 꾸다 깨는 밤이 잦았다. 무언가에 쫓기는 꿈인데, 꿈이 아니더라도 매일 쫓기는 기분이었다. 노랭이의 첫 출산 때도 힘들었지만, 그건 예고편일 뿐이었다. 그땐 낭만이 있었다. 걱정도 됐지만, 꼬물이들이 너무 예뻐서 그만큼 행복하기도 했다. 두 번째는 실전이었다. 이 행복이 짧다는 것도 알고 결국 기다리는 건 비극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마냥 즐거워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 사진첩을 보면 그때 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마당 고양이 사진이 거의 없다. 특히 노랭이 사진이 없다. 당시 노랭이는 지쳐서 그런지 육아에 열심이지 않았고, 나도 내심 노랭이가 원망스러웠던 것 같다. 하필 나를 선택해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나 하고 말이다.      


또 너무 바쁘기도 했다. 당시 책방은 각종 지원 사업 업무를 처리하느라 여유가 없었다. 작은 책방은 책만 팔아서 운영이 어렵다. 특히 나처럼 관광지나 번화가에 있는 책방이 아닌 경우는 더 그렇다. 끊임없이 모임이나 행사를 열어야 그나마 다음 책을 들여놓을 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책방을 열기 전부터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매주 한두 개의 모임이 있었다. 또 지역 축제와 연계해서 작가 초청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정말 바빠도 너무 바빴다.     


그 와중에 양발이가 또 아프기 시작했다. 어느 날 사타구니를 심하게 핥고 있길래 왜 저러나 하고 보니 생식기가 빨갛게 부어 있었다. 걱정보다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 휘몰아쳤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나를 왜 이렇게 코너로 몰아가는지 아무나 잡고 막 울고 싶었다. 고양이들은 아무 죄가 없으니 쫓아낼 수도 없고, 불만 없이 나를 돕는 남편에게 화풀이를 할 수도 없었다.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병원을 데려가야 하나? 괜찮아지지 않을까? 망설였던 이유는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여름 날씨와 깨끗하지 못한 마당이 염증을 더 악화시키면 악화시켰지 낫게 하진 않을 것 같았다. 병원을 데려갈 여유도 없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일에 치여 있었고, 병원과 내 업무 시간이 맞물려 진료 시간에 맞춰 데려가기도 어려웠다. 집안 고양이들 병원 가는 일은 남편에게 부탁하고 있는 상황인데 마당 고양이까지 데려가 달라고 하기가 염치없기도 했다.      

양발이 상태는 날로 나빠졌다. 손톱을 뜯으며 고민하던 어느 날, 독서모임 회원인 J언니가 물었다. “저 고양이 아픈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예요?” 나는 구세주나 만난 것처럼 사정을 털어놓고, 혹시 병원에 좀 데려가 줄 수 있겠느냐 물었다. 병원에 전화해 놓을 테니, 데려갔다 데려오는 것만 좀 부탁할 수 있겠냐고. J언니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진료를 해보니 생각보다 생식기 염증이 더 심각했다. 깨끗한 집안에 두고 약을 먹이고 발라줘야 한다고 했다. 그때 룬이와 우란이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집안에 양발이를 둘 수는 없었다. 사실 내 마음이 너무 지쳐서 더는 마당 고양이를 돌볼 힘이 없었다. 내가 나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책임감은 점점 흐려졌고, 그런 자신을 미워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J언니는 지쳐버린 나를 안타깝게 생각했고, 아픈 고양이는 더 안타까웠는지 자기가 매일 와서 약을 발라주고 병원에 데려가 주겠다고 했다. 언니는 정말 매일 아침에 와서 양발이 생식기에 연고를 발라주고 약을 먹였다. 저녁에는 못 오니까 나한테 약 발라줬냐고 문자를 보냈다. 그 언니가 나와 양발이를 챙겨주지 않았다면 아마 양발이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또 엄청난 후회에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었겠지.     


병원 다녀온 양발이

J언니의 정성에도 양발이는 나아지지 않았고 염증은 점점 심해졌다. 아마도 환경 때문인 것 같았다. 다시 병원에 갔고 결국은 입원했다. 수의사 선생님은 아이가 너무 약하게 태어났고, 방광과 신장 상태도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바깥에 놔두면 죽을 거라고, 처방 사료를 먹이고 약도 먹여야 한다고 했다. 집안 고양이 사정을 잘 아시는 선생님은 일단 병원에서 돌보고 있을 테니 임보처를 찾아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주 뼈 있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 안 되지만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편견이 하나 생겼어요. 젊은 여성분들이 길고양이 구조를 해서 많이 데려오거든요. 병원에 입원시켜놓고 입양처를 알아보겠다고 해요. 그러다가 결국 연락이 끊어져서 내가 입양 보내거나  병원에서 살게 되는 애들이 있었어요. 불쌍하다고 구조해서 결국 책임 못 질 거면, 그게 고양이를 위한 건지 자기를 위한 건지 난 모르겠어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병원에는 4년 전 내가 구조했던 고양이도 살고 있었다. 물론 그 아이는 선생님이 원해서 입양을 하신 경우지만, 어쨌든 내가 구조해놓고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그 아이에 대해 말씀하신 건 아니지만, 결국은 나에게 “책임지지 못할 일을 벌이지 말라”라고 돌려 말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임보처를 구하겠다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렸지만, 사실 자신이 없었다. 새끼도 아니고 5개월 된 고양이를 누가 임보 하겠는가. 새끼도 입양이 안 되는데 언제 입양될 줄 알고. 나도 망설이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런 결정을 할 수 있겠는가. 임보처를 구할 자신도 입양을 시킬 자신도 없었다. 노랭이의 두 번째 새끼들 입양 글도 올리기 시작했지만, 그 아이들의 미래도 어둡게만 느껴졌다.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겠기에 지난번처럼 시기를 놓치기 전에 노랭이는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 두 번째 출산을 한지 한 달 반쯤 지났을 때였다.  

   

노랭이 새끼 시즌 2


입양도 임보 신청도 없었다. 하루하루 달력에 X표를 치는 마음으로 기다렸으나 문의조차 오지 않았다. 다행히 병원에서 잘 돌봐주신 덕분에 양발이의 상태는 좋아지고 있었다. 병원에서 함께 생활하는 고양이 중 덩치 크고 순한 치즈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친구 이름이 오복이라, 달래는 칠복이라고 부른다고 하셨다. 달래에서 양발이로, 또 칠복이로 수차례 개명했지만, 언젠가는 하나의 이름으로 정착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입양 글 올린 지 17일이 지났을 때 드디어 새끼를 입양하고 싶다는 문의가 왔다. 인스타 DM을 받고 남편과 덩실덩실 춤을 췄을 정도로 기뻤다. 게다가 이왕이면 두 마리를 입양하고 싶다는! 신청을 주신 분의 친척이 입양을 원한다고 했는데, 고양이를 처음 키워본다는 게 마음에 좀 걸렸지만, 신청인이 믿음직한 분이었기에 흔쾌히 보내겠다고 했다. 당시 약간의 호흡기를 앓고 있었기에 입양 전까지 약을 먹이고 1차 접종도 해놓기로 했다.      


정식으로 입양 계약서를 쓰고 입양자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아봐야 했지만, 입양 보내는 게 급해서 이것저것 따지고 싶지 않았다. 입양에 급했던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는데, 여행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휴직 중일 때 함께 길게 여행을 가기로 하고 1년 전부터 티켓팅을 하고 여행 계획을 다 세워놓았다. 10일 동안 집을 비울 예정이었는데 그동안 집안 고양이 돌봄을 부탁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마당 고양이를 누군가에게 부탁하기는 어려웠다. 새끼들이기도 했고, 마당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데크 밑에 숨어있기 일쑤니 약을 먹이고 바르는 건 나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마리라도 입양을 보내면 다행이지 싶었다. 입양자가 서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인천공항에 가는 김에 데리고 가기로 했다. 공항에서 입양자를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남편은 생각이 좀 달랐다. 일단 그 입양자가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주변에도 입양을 기다리는 고양이가 많을 텐데 굳이 통영의 고양이를 입양하겠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또 입양자가 싫다는 남편을 설득해서 입양을 하기로 했다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사실 우리도 고양이 때문에 많이 싸우고 힘든 시간이 있었다. 남편은 그냥 내가 키우고 싶다니까 데려왔는데, 생각보다 털이 너무 많이 빠지니까 굉장히 힘들어했다. 깔끔한 성격에다 비염이 심했던 남편은 고양이와 함께 사는 동안 한 번도 집에서 편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본인이 겪었던 일이라 그런지, 입양자의 남편도 분명히 받아들이기 힘들어할 거고, 만약에 파양 하면 어떡할 건지 나에게 물었다. 당연히 나에게 그런 상황은 입력되어 있지 않았기에 할 말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이 인천공항으로 나오지 않으면 어쩔 거냐고 물었다. 

“엥? 그럴 수도 있다고? 설마 우리가 여행 가는 걸 아는데 그런다고?”

“그런 상황도 생각해야지. 만약 안 나오면 우린 비행기 타야 하는데 고양이 어쩔 건데? 거기 버릴 거야? 최악의 상황도 생각해야지.”

옳다. 옳았다. 지난 세월 남편 말 안 듣고 겪었던 수많은 고난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게다가 새끼들이 보이지 않았다. 사진 찍어 입양자에게 보여주기로 했는데, 비가 오니 구석에 숨었는지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이틀 더 기다려도 안 보이길래 입양자께 “죄송한데, 애들을 찾을 수가 없고, 이렇게 비가 오니 찾아도 애들 상태가 좋지 않을 것이 뻔하니 5시간 넘게 차를 태워가는 것은 무리다, 직접 오셔야 할 것 같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주말에 데리러 오시겠다고 했는데, 결국 입양을 취소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처음 입양 신청을 대신해주신 분의 말로 입양자 분이 남편과 완전히 합의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역시 남편 말 듣길 잘했군.     


결국 다시 도돌이표. 여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될 대로 돼라 싶었다. 몰라! 다 그냥 마당에 살던지! 운명대로 살다 가겠지! 자포자기하는 마음이었는데, 그랬는데! 독서모임 회원 E씨가 가장 상태가 좋지 못한 막둥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하셨다. 아....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그분은 이미 길고양이를 한 마리를 입양해 키우고 계셨고, 가까운 곳에 살고 내가 정말 믿는 분이니 그저 발밑에 엎드려 성은이 망극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참 염치없지만, 13마리 고양이들을 J언니와 E씨에게 맡기고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여행 가기 전 한발이와 이방인은 놔두고 마당 고양이들을 싸그리 잡아서 다용도실에 감금했다. 흰둥이는 여전히 야생성을 띄고 있어 잡기 힘들었지만, 눈곱 때문에 눈이 붙어버린 상태였기에 잡을 수밖에 없었다. 흰둥이와 5마리 새끼들을 몽땅 데리고 병원에 가서 치료도 하고, 1차 접종도 맞히고 사상충 약까지 발랐다. 일단 예정된 여행은 가야 하니까 더는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나도 할 만큼 했고, 나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합리화했다. 내가 다녀오는 동안 집안에서 지내면 몸이 좀 좋아질 것이고, 그때 다시 입양 전선에 보내보자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운명의 여신은 내 편이 아니었다. 인생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 게 아니고 생은 슬픔이 된다고!



집에 들어와서 약 바르고 노곤노곤해진 막둥이



병원에선 죽은 척하기
매거진의 이전글 이거 이거 이 집 고양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