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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Feb 10. 2021

폭풍이 지나간 뒤

텅 비어버린 마당

“쌤~ 고양이들이 다 탈출했어요!”

하.... 내 인생도 모자라 내 여행까지 망치는 노랭이....


다용도실에는 작은 창문이 하나 있는데, 잘 열리지도 않는 문을 기어코 열고 방충망까지 뜯어서는 새끼들 다 데리고 탈출을 했다고 한다. 비도 오고 태풍도 부는데 왜 꼭 그래야만 했니. 노랭이와 큰 애들은 마당에 있는데 새끼는 한 마리만 보인다며, 여기저기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는다고 했다. 괜찮다고, ‘어쩔 수 없죠. 하하.’ 하고 답장을 보냈지만, 괜찮지 않았다. 돌봐야 될 고양이가 한두 마리도 아니고 무려 열세 마리인 주제에 여행은 무슨 여행인가. 그냥 평생을 고양이 옆에서 100m이상 떨어지지 말고 딱 붙어살아야지, 건방지게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 고얀 놈! 고양이의 신이 나를 야단치는 악몽에 시달리다 통영으로 돌아왔다.     


흰둥이와 새끼 네 마리가 사라지고 예쁜이라 부르던 한 놈만 남아있었다. 며칠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괜히 다용도실에 가둬두어 겁을 먹고 사라진 건지, 약을 먹이고 바르는 게 무서워 도망간 건지, 연일 이어지는 비와 태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안타까워 눈물도 났지만, 한 구석은  시원했다. 아이들이 내 눈 앞에서 아프고 죽고 불행해지는 것을 안 봐도 돼서 좋았다. 이런 마음이 든다는 것에 큰 죄책감이 들었지만 동시에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감옥에서 탈출한 것마냥 해방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 아이들을 사랑했던 게 아니구나. 그저 짐으로 여기고 있었구나. 어쩌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건 책임감인가보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래도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데크 밑에서 뿅 나타나겠지. 아니면 노랭이가 어디 풀숲에 숨겨놨겠지. 창고 깊숙하게 있어서 안 보이는 거겠지. 간절한 기다림에도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선가 친절한 어른 고양이를 만났기를, 아니면 캣맘이나 캣대디를 만났기를, 그것도 아니면 충실한 집사를 만났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어서 나쁜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금세 잊어버리는 게 인간의 생존 방법이다. 5마리가 사라진 건 아팠지만, 기쁘게도 두 마리의 입양 소식이 날아들었다. 먼저 병원에서 한 달 넘게 지내고 있던 양발이를 병원 손님 중 한 분이 입양하기로 했다는 연락이 왔다. 병원에서 지내고 있던 중 양발이는 중성화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개복을 해보니 요도가 비틀어진 기형이었다고 한다. 방광과 신장도 약한 데다가 요도까지 기형인 아이라니 정말 입양은 끝났구나 싶었는데, 사정을 들은 한 손님이 어차피 자기 아이랑 증상이 비슷하니 밥도 약도 1묘분만 더 늘이면 된다면서 입양 의사를 밝힌 것이다. 세상에는 멀쩡한 고양이를 털 빠진다, 운다, 냄새 난다 등의 이유로 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아픈, 게다가 나을 가망성이 없어 평생 보살펴야 하는 고양이를 부러 입양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세상에 희망을 못 버리는 가보다. 나보다 더 기뻐한 수의사 선생님은 지금까지의 입원비와 수술비, 약값을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양발이의 새로운 묘생이 시작되는 선물이라며 대신 나에게는 매달 병원에서 쓰는 고양이 화장실용 펠릿을 두 개씩 보내달라고 했다. 그전에 구조해서 데려왔던 고양이 사상충약 값이라고 여기라고 하셨다. 나에게 책임질 기회를 주신 것이라 고맙게 그러겠다고 했다.   

   

두 번째 입양 소식은 원래 막둥이를 입양하기로 했던 E씨가 남은 예쁜이를 데려가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당시 집안 고양이들 상태도 괜찮았던 때라 입양이 안 되면 그냥 내가 입양하려고 이름도 정식으로 금동이라고 지어주고 집안에 데리고 있었던 차에 입양 의사를 밝혀오셨다. 보내려니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다행이라는 마음이 더 컸다. 사실 금동이를 집 안에서 키우려면 노랭이랑 한발이, 이방인이랑 떼어놓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을 거라 걱정이었다. 워낙 동생을 애지중지 키운 형아들이고,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새끼와 헤어져야 하는 노랭이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면 금동이만 입양한다는 게 옳은 일일지 고민이 되었다. 집안에 들여놓자 노랭이와 한발이, 이방인이 돌아가면서 창가에 와 울어댔다. 그럼 금동이도 달려가 방충망을 사이에 두고 이산가족 상봉을 하는데 내가 굉장히 악당이 된 것 같은....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입양을 가게 된 것이다.     


금동: 요기 넘 따숩고 기븐 저아
금동: 아쟈씨 왜 그렇게 생겨써여
금동: 옴마랑 형아랑 왜 못 만나여~~



노랭: 울 아들 어딨냐...    한발: 악마야! 울 동생 내나랏! 어데로 데꼬 가냑!


입양 날 E씨와 함께 병원에 가서 2차 접종을 해 주고, 안약과 사료도 한 봉지 사 주었다. 쓰던 거지만, 예쁜이가 좋아하던 집과 고양이 전용 난로도 챙겨 보냈다. 잘 부탁한다고 보내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 마당이 텅 비어버린 것이다. 노랭이는 한동안 계속 새끼를 찾았다. 나를 보면 뛰어와 울어댔고, 현관 안을 수시로 기웃거렸다. 그래도 계속 보이지 않자 서서히 잊어가는 것 같았다. 금동이도 새로운 집에서 새 엄마와 새 형을 만났다. 금동이는 낯가림 없이 새 형에게 다가간다고, 잘 먹고 잘 잔다고 입양자가 연락해왔다. 태어난 지 2달 반밖에 되지 않았으니 새로운 환경에 금방 적응한 것이다. 적응이 빨랐던 만큼 잊는 것도 빠를 것이다. 엄마도, 형들도, 나의 마당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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