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고양이들과 함께 살 준비
냥글냥글 복작대던 마당에 달랑 세 식구만 남았다. 노랭이, 한발이, 이방인. 이방인은 여전히 내가 가까이 오거나 만지는 걸 허락하지 않았지만, 나를 보면 일어나 반기고 울어댔다. 예전에는 경계하듯 울었지만, 점점 애교 섞인 목소리로 울었다. 한발이와 이방인은 절친이 되어 어딜 가든 함께 가고, 같이 먹고, 같이 잤다. 냥춘기가 지난 수컷들이라 발정이 나면 어딘가 떠나겠지 싶었는데, 도통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왜 그들은 여친을 사귀지 않는 걸까? 일단 둘 다 수컷 고양이로서의 매력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고양이계에서 미남이라 함은 일단 머리가 커야 한다고 들었다. 인간으로 치자면 강호동 서타일이 미남인 것이다. 그런데 한발이와 이방인은 머리 크기와 몸의 비율로 볼 때, 송중기나 박보검에 가까웠다. (얼굴 말고 비율만) 인간이었으면 환영받았을 비율인지 몰라도 고양이로서는 영 아니었다. 성격은 나름 좋은 편이었는데, 특히 한발이는 갈수록 동네 인싸가 돼서는 친구들을 마당으로 데려오는 때가 많았다. 그런데 데려오는 애들마다 수컷이었고 치즈인 경우가 많았다. 아마 먼 친척뻘 되는 애들인지도.
가끔은 이방인과 한발이의 사이를 의심해 보게 되는 장면이 목격되곤 했는데, 아무래도 이방인은 한발이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한발이는 별생각 없어 보이는데, 이방인이 한발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가끔 뜨거워질 때가 있었고, 종종 낯 뜨거운 포즈를 취하다가 한발이에게 얻어맞고 물러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나는 고양이계에도 동성애가 있는 건지 궁금해 검색을 해 보기도 했으나 딱히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친구인지 연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서로서로 보듬고 잘 살아가면 될 일이니 굳이 그들의 관계에 호기심을 가질 필요는 없지.
한발이와 이방인은 함께 멀리까지 모험을 떠나는 경우도 있었는데, 주변에 산도 없는데 도깨비 가시나 검댕 같은 게 잔뜩 묻어올 때도 있었다. 이방인은 잡히지 않아 내버려 두고 한발이는 눕혀서 가시를 하나하나 떼 주기도 하고, 물을 틀어놓고 씻길 때도 있었다. 그래도 싫다고 반항하거나 할퀴는 경우가 없었다. 그만큼 순한 아이였다.
이방인은 어릴 때와 달릴 점점 사교성을 잃어갔는데, 동네 고양이들과 쌈박질을 하는 때가 점점 잦아졌다. 나름 노랭이와 한발이를 지켜주는 건가 하기도 했는데, 며칠 지켜보니 만만한 작은 고양이들하고만 싸우지, 일진냥들이 오면 누구보다 빠르게 바람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싸우는 것도 소리만 컸지, 도망 다니는 때가 더 많았다.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는 노랭이 뒤에 숨기 일쑤라 안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세상 순한 한발이, 전투력 제로 노랭, 목소리만 큰 이방인. 결국 일진냥들이 마당을 습격하면 내가 빗자루 들고 뛰어가는 수밖에.
녀석들은 너무 겁이 많아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화들짝 놀라곤 했다. 한날은 내려가니 노랭이가 정말 불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길래 왜 그러냐고 다가가니, 홱 돌아서서 마당으로 걸어갔다. 그러곤 또 뒤돌아보고 앵~ 울고, 다가가면 또 벌떡 일어나 도망가는 것이었다. 마치 따라오라는 것처럼 그 행동을 반복했다. 홀린 듯 따라갔더니, 자기들 밥그릇 있는 데로 데려갔는데 민달팽이가 잔뜩 붙어 셋 다 밥을 못 먹고 있었다. 야생 고양이들 답지 않게 민달팽이조차 두려워하다니.... 사실 나도 두렵지만, 녀석들의 애절 눈빛에 못 이겨 한 마리 한 마리 손으로 떼 주었다. 그런데 민달팽이의 액이 묻은 밥은 안 먹겠다고 고개를 돌려서 결국 밥그릇을 깨끗이 씻고 새 밥을 주었다.
이런 녀석들이니 험한 세상을 과연 살아낼 수 있을까. 고개가 절로 절레절레 돌아갔다. 수의사 선생님께 입양을 상담한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묘하게 웃으시면서 그냥 순리대로 하라고 하셨다. 집고양이들은 나름의 행복이 있고, 길고양이들도 짧지만 자유롭게 살다 가는 거니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이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아마 아셨던 것 같다. 내가 많이 힘들다는 것을.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생명을 거두려 한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말해주신 것 같다. “그래도 화수 씨는 좋은 보호자에 들어가요.”하고 격려(?)해 주셨는데, 그 말에 힘을 받아 결심했다. 녀석들만은 내가 지켜주자고. 넷이나 일곱이나 그게 그거라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순화되지 않은 이방인 때문에 집안에 들이지는 못하지만, 마당에서 집안 고양이랑 똑같이 먹이고 재우고 병원에 데려가면서 그렇게 함께 오래오래 같이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코로나 19 때문에 셧다운이 시작됐다. 나도 남편도 일을 쉬게 되었다. 주머니 사정은 나빴지만, 이참에 여유를 갖고 앞으로 함께 살 준비를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마당을 깨끗이 치우고, 마당 고양이들을 위해 집 만들 준비도 해두었다. 이 상황이 좀 정리되면 예방주사도 맞히고 중성화 수술도 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통장도 하나 만들었다. ‘노랭이 가족’이라는 이름의 적금 통장을. 나는 나중에 아이들이 늙고 병들었을 때를 대비해 ‘고양이 통장’이란 이름으로 늘 적금을 들고 있다. 그건 집안 고양이들 몫이니 노랭이 가족을 위한 통장을 하나 더 만든 것이다. 예방 접종, 중성화 수술은 그때그때 돈을 쓰면 된다. 하지만 한 번 크게 아프면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는 상황이 올 텐데 그때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목돈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그때는 정말 상상도 못 했다. 그 돈을 장례비용으로 쓰게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