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고양이들
코로나 19로 갑자기 텅 비어버린 다이어리를 보면서 절망만 할 수는 없으니 뭔가 해보기로 했다. 일단 뒷마당에 작은 텃밭을 만들기 시작했다. 5평 정도 되는 뒷마당은 딱히 마당이라 부르기 뭐한 곳인데, 그늘이라 고양이들도 찾지 않는 곳이었고, 앞마당도 관리 못하는 우리 부부로서 뒷마당까지 손대기가 쉽지 않아 그냥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래서 정글처럼 풀이 자라 있었는데, 매일 조금씩 풀부터 제거했다.
풀을 제거하는 동안 내내 밖에 있으니 지나다니는 고양이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평소 보던 애들도 있고 처음 보는 애들도 있고 했는데, 호기심에 차서 마당을 들여다보다가도 우리가 무서웠는지 밥을 먹으러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시작된 동네 고양이 산책. 풀을 뜯다가 지루해지면 츄르와 사료 봉지를 들고 산책을 나섰다.
내가 사는 동네는 일명 ‘원룸촌’으로 불리는 곳이다. 통영 죽림은 바다를 매립해 만든 신도시다. 그래서 땅이 반듯하고 굴곡이 없어 걷기 좋고 자전거 타기도 좋다. 물론 나는 걷지도 자전거를 타지도 않고 집안에만 가만히 있었지만 말이다. 코로나 19로 나갈 수가 없게 되니 이상하게 나가고 싶어 져서 바닷길 따라 3km 정도 이어진 죽림 해안로를 산책했는데, 이왕이면 고양이 만나서 밥도 줄 겸 동네를 돌아다니는 게 낫지 싶었다.
동네에는 고양이가 꽤 많다. 원룸 중간중간 작은 화단이 곳곳에 있어 고양이가 숨거나 배변하기 좋다. 그래서인지 고양이가 많아도 고양이 똥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동네 주민들도 고양이에게 우호적이라서 그런지 여기저기 돌아다니거나 자고 있는 고양이가 눈에 띈다. 가끔은 장모종 고양이도 만나게 되는데, 그런 녀석들은 보통 꼴이 좋지 않다. 길에서 태어난 것 같지는 않은 모습이다. 털이 떡져 있거나 피부병이 심해서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잡히면 치료라도 해줄 텐데, 그런 고양이들일수록 사람을 피한다. 오히려 전형적인 코숏 고양이들이 친화적인 경우가 많다. 장모 고양이들은 버려진 기억 때문에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닐까 하고 짐작하기도 했다.
상태가 아주 좋은 페르시안 고양이를 만난 적이 있다. 덩치도 컸고, 털도 푸석하긴 했으나 엉킨 데 없이 풍성했다. 녀석은 우리 집에 종종 밥 먹으러 오는 치즈 고양이랑 싸우고 있었는데, 하도 소리가 커서 말리러 갔다가 목격하게 되었다. 날 보더니 쌩 하고 도망을 가 버렸다. 누가 또 버린 고양인가 싶어 안타까워 찾으러 다녀 봤는데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밭 매러 나갔는데, 뒷마당 옆 빌라 주차장에서 자고 있는 녀석을 발견했다. 부러 깨우지 않고 지켜보니 다친 데 없이 상태가 좋았다. 이후로도 자주 눈에 띄었는데, 부르면 경계하고 도망가서 그냥 모른 척해주었다.
그러다 한 날은 혼자 동네 고양이 산책을 하던 중에 녀석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녀석이 도시락 가게에서 밥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다가가 보니 60대 정도로 보이는 가게 주인 부부가 녀석에게 밥을 주고 쓰다듬고 계셨다. 반가운 마음에 “혹시 키우는 고양이인가요?”하고 물었더니, 아주머니는 주춤거리다 가게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리시고, 아저씨는 “어... 어.... 그게 아니고.”하며 당황하셨다. 아마 길고양이 밥 주지 말라고 항의하는 사람일까 봐 경계하시는 듯했다.
“고양이가 너무 귀여워서요. 제가 주변에 사는데 자주 봤던 애거든요.” 하고 얘기하니, 그때서야 의기양양해진 아저씨는 “얘가 아주 말을 잘 들어. 야! 이리 와.”하면서 밥 먹고 있는 애를 막 끌고 와서 나에게 만져보라고 하셨다. 나만 보면 도망가던 녀석이 아저씨가 약간 거칠게 잡아끄는 데도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서는 기지개를 쭉 켜고 발라당 누워서는 내가 쓰다듬어도 아무렇지 않아 했다. 아저씨 말로는 원룸에서 누가 키우다가 밖에 버리고 갔는데, 다른 집에 사는 커플이 밥 주면서 3개월 넘게 돌보았다 한다. 자기들도 이사 갈 때가 다 되니까 데려가 키우려고 집안에 놔뒀는데 얘가 계속 탈출을 해서 어쩔 수 없이 데려가지 못하고 밖에 살게 되어 이후로는 아저씨가 밥을 주고 있다고 하셨다. 아저씨는 고양이가 너무 자랑스러웠던지, 얘가 말을 잘 듣는다며 이것저것 명령을 내리기도 하셨는데, 전혀 듣지 않는 고양이 때문에 민망해진 나는 얼른 잘 봤다며 자리를 떴다.
다음 날엔 남편과 함께 산책을 하면서 녀석을 또 목격했다. 이번에는 다른 고양이와 함께 있었는데, 아주 깨끗해 보이는 터키쉬 앙고라 장모종이었다. 앙고라는 페르시안 녀석이 무서웠는지 경계하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페르시안은 앙고라가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다가가려고 했다. 우리가 다가가자 페르시안이 멈칫했고, 그 사이 앙고라가 도망가 버렸다. 아무래도 버려지거나 가출한 아이 같아서 다음 날 사료를 들고 원룸촌 곳곳을 찾다가 화단 한가운데서 낮잠을 자고 있는 앙고라를 발견했다. 츄르를 들고 “쫑쫑쫑”하면서 살살 다가갔는데 겁을 먹고 도망쳤다. 있던 자리에 사료를 부어놓고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찾아갔는데 더는 볼 수가 없었다.
산책을 하며 찍은 페르시안과 앙고라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아무래도 원룸이 많으니 버려지는 아이가 많은 것은 아닌가 의심이 된다”는 댓글이 달렸다. 인터넷 고양이 카페에서도 그런 글이 종종 올라온다. ‘원룸 입주자가 이사 가고 나서 주인이 정리하러 가 봤더니 고양이를 놔두고 갔더라’, ‘원룸 앞에 이동장 채로 고양이를 버리고 갔더라’하는 글이다. 일이나 학업으로 혼자 살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다가 본가로 돌아가면서 부모님이 반대해서 키울 수 없게 되었다는 글이 많다. 또, 유학을 가야 해서, 결혼을 해야 해서, 임신이 되어서, 새로 이사 가는 곳은 반려동물 금지라서, 동거하다가 헤어지는데 서로 책임지려 하지 않아서 등등 이유는 다양하다. 사거나 입양할 때의 마음이 단순할수록, 버려야만 하는 사정은 확고해진다. 입양 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워야 수십 번을 고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가벼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입양을 포기할 것이다. 또 함께 살 수 없는 수만 가지 고난이 닥쳐와도 힘들게 만난 인연을 쉽게 끊지 못할 것이다.
꼭 원룸에 사는 젊은 사람들만이 동물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 살면서 산이나 도로에 갖다 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주택에 살면서 원룸촌까지 데려와 버리는 사람도 있겠지. 자기가 살던 곳에 버리지는 않을 거니까. 원룸은 떠나는 사람들이 많으니 떠나면서 버려두고 가는 일이 더욱 눈에 띄게 되는 것 같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동네에는 내가 돌봐주지 않아도 되고 밥을 주지 않아도 되는 고양이들이 많았다. 동네 이곳저곳에 고양이를 위해 밥을 준 흔적들이 보였다. 또 스티로폼으로 만든 집도 종종 눈에 띈다. 고양이들이 추울 때는 우편함을 통해 빌라 안으로 들어가서 자는 경우도 있는데, 들어가다 깜짝 놀라면서도 고양이에게 욕을 하거나 쫓아내는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학대를 하고, 미워하며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없다는 것에 나는 조금 안심했다. 마당에서 노랭이, 한발이, 이방인을 돌보더라도 해코지를 당할 일은 없겠다는 마음에 우리가 오래 함께할 가능성을 조금 더 높게 잡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