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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Mar 11. 2021

영원히 다섯 살

고양이 별로 보낸 랏샤-1

노랭이가 마당에 온 이후 하루도 몸과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엄마는 노란 고양이가 복을 가져온다고 했지만, 복은커녕 나를 힘들게만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미워할 수 없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쳐다보면 웃음이 나왔다. 아무런 의심 없이 내게 다가와 안기는 존재를 미워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노랭이를 처음으로 미워하게 된 것은 랏샤 때문이다.


“선생님, 랏샤가 기운 없이 구석에 앉아있기만 해요. 이상해요.”

수업을 하고 있는데 랏샤를 좋아하는 한 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말했다. 나가보니, 랏샤는 불 꺼진 서재 한 구석에 식빵자세로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을 너무도 좋아해서 학생들이 오면 달려 나가 반기고 애교를 떠는 녀석이라 더욱 이상했다. 며칠 전부터 혼자 구석에 앉아있거나, 놀이에서 빠지는 경우가 있긴 했는데, 최근 우란이와 싸움이 심해져서 의기소침해진 거라 생각했었다. 당시 코로나로 인해 수업을 쉬다가 다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남편까지 복직을 해서 책방 일에 집안일까지 바빠 신경을 못 쓰고 있었던 터라 조금 불안해졌다. 스코티시 폴드 고양이니 혹시 관절 문제가 생기는 건가 싶어 다음 날 병원에 데려갔다.


“이미 신장이 거의 망가졌다고 봐야 되고요. 심장도 아주 나쁜 상태에요. 수치가 너무 나빠요. 공격적으로 처치를 하려고 해도 심장이 안 좋으니까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귀를 의심했다. 랏샤가 왜? 제일 어리고 제일 잘 놀고 밥도 제일 잘 먹고 똥도 오줌도 제일 예쁘게 잘 싸는데? 도대체 랏샤가 왜? 검사가 잘못된 것 같았다. 원인이 뭔지, 어떻게 그렇게 티가 나지 않을 수 있는지 물었다. 선생님은 아마 아주 오랫동안 조금씩 진행되어 와서 보호자가 눈치 못 챌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그건 그냥 나를 위로하려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관심을 두지 못했으니 몰랐던 거다. 내가 노랭이 가족에게 신경 쓰고 있을 때, 아픈 세 고양이들을 돌보느라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랏샤는 조용히 아픔을 참고 있었다.


재작년 우란이에게 급성 간부전과 지방간이 왔을 때 수의사 선생님은 부산에 있는 고양이 전문 병원으로 가 보라고 하셨고, 직접 그곳 의사와 연락을 하고 정보를 교환해주셨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랏샤도 부산으로 데려갈까요?”하고 담담하게 물었다. 돈이 많이 들고 왔다갔다 힘들어서 그렇지 데려가면 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그리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모아 둔 돈이 있지 않은가. 그런 나를 보고 선생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화수 씨가 그게 마음이 편하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지금 아이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서....”


아픈 뒤로 내 옷을 깔고 누워있을 때 가장 편안해 했던 랏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랏샤는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수치가 말해주고 있었다. 신장 수치는 기계로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올라가 있었고, 불과 1년 만에 체중이 1.5kg가량 줄어있었다. 나는 그걸 몰랐다. 룬과 우란, 살룻은 소변을 못 보거나 토를 하거나 해서 한 달에 두세 번씩 병원을 오가고 있었기에 그 애들 상태는 잘 알고 있었지만, 가장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나와 가장 오래 살 거라고 생각했던 막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나는 늘 연습해왔다. 룬, 우란, 살룻과 헤어지는 순간을 상상하며 많이 슬퍼하지 않겠다고 다짐해왔다. 아픈 녀석들이고, 이미 아픈 채로 내게 온 것을 지금껏 온 마음을 다해 돌보았기 때문에 내가 할 일은 다한 것이라고, 녀석들도 나를 원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연습을 했다. 하나가 떠나도 나에게는 돌보아야 할 아이들이 있으니 덜 슬프고 덜 아프게 보내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마도 내 옆에 마지막까지 있을 아이는 제일 어린, 이제 겨우 다섯 살밖에 안 된 랏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내를 제일 먼저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니.


일단 신장 수치를 떨어뜨리는 게 급하니 링거 처치를 위해 입원을 시키고 집으로 돌아왔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랏샤의 상태보다 그렇게 아플 때까지 내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나는 랏샤를 사랑하지 않았나? 그렇게 관심이 없었나? 내가 랏샤를 죽게 만들었나? 온갖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돌이켜보면 나는 랏샤가 아프다는 걸 알았던 것 같다. 점점 가벼워진다는 것도 알았지만 랏샤는 원래 날씬했으니까 하면서 모른 척 한 것 같다. 아픈 고양이들에게 지쳐서 너만은 건강했으면, 아니 너라도 날 괴롭히지 말라고 하는 마음이 내 눈을 가린 게 아닐까.


그날 이후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랏샤가 집에 있는 날엔 책방에서 잠을 잤다. 2시간에 한 번씩 강제급여를 하고 화장실 가는 것을 관찰하기 위해서 이기도 했지만, 얼마 남지 않았을 시간을 최대한 함께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의사 선생님은 자기에게도 비슷한 수치를 보였던 아이가 있다며. 3년이 지난 지금도 건강히 살아있으니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하셨지만, 랏샤는 점점 식욕이 떨어지고 몸이 작아져만 갔다. 마치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하루하루 생기를 잃어갔다.


나는 절대 울지 않으려고, 특히 고양이들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안 그래도 아픈 고양이들이 나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았으면 했다. 내가 안절부절 못 하고 슬퍼하면 같이 불안해 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남편 앞에서도 되도록 슬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 내가 우울하다고 남편까지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처음 고양이를 키웠을 때 내가 고양이한테만 너무 마음을 쓰는 것 때문에 남편과 갈등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고양이에게 집착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물론 남편은 어떤 모습을 보이던 간에 내가 고양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안다. 그냥 그러고 싶었을 뿐이다. 남편과 있는 순간이라도 즐겁게 지내고 싶었다. 안 그러면 이 고통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수업 할 때 학생들 앞에서는 애써 밝은 척도 했다. 학생들이 랏샤에 대해 물을 때마다 너무 괴로워서 현관 앞에 “랏샤가 아주 많이 아파요. 선생님 마음 아프니까 랏샤 나을 때까지 고양이에 관한 질문 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써 붙여 두었다. 고맙게도 랏샤를 정말 사랑해주었던 아이들은 오히려 더 궁금할 건데도 절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자기들의 사랑보다 내 사랑이 더 클 것이라는 걸 이해하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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