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쓰고(buy), 또 쓰는가(write)

by 화유

소비와 기록의 심리는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둘 다 그 순간의 감정에 이끌려 움직인다는 점.

지금 사거나 쓰지 않으면 잊힐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나를 이끈다. 사는 일도, 쓰는 일도 결국은 마음의 무게를 견디기 위한 방식일지 모른다.


필요에 의한 소비나 기록이 아닌,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사고 싶을 때나 뭐라도 적고 싶을 땐 마음이 늘 불안정했다.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이렇게라도 해소하고 싶어서. 무언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희망, 그리고 이 감정이 사라지기 전에 써야 한다는 절박함이 함께했다.


문구, 책, 노트, 스티커...

누군가에겐 작은 소비지만, 나에겐 응급처치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꺼내 든 것들은 채 쓰지 못하고 한쪽에 쌓여 있기도 하다. 구입한 그대로 꽂아둔 노트, 펼쳐보지 않은 책. 그때는 분명 꼭 필요했던 것들이 어느새 배경처럼 가만히 자리를 잡고 있다.


얼마 전, 그렇게 꽂아두었던 노트 하나를 꺼내 보았다. A4보다 조금 작은 무지 용지가 왜 그리도 광활해 보이던지. 새로 산 스티커의 라벨을 붙이고, 아기자기한 마스킹 테이프도 더했다. 그리고 그날의 기분을 몇 문장 적었다. 한 페이지를 다 채우진 못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 순간이 내 안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흘러가는 감정을 노트 위에 살며시 옮겨두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그 물건들을 꺼내보면,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기도 한다. 아직 쓰지 못한 페이지가 더 많은 노트이거나, 적다 만 일기일지라도. 소비와 기록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위안이 된다.

그러니 그 감정을 억누르지 않아도 괜찮다. 다 쓰지 못해도, 끝까지 적지 않아도 그 순간 마음이 움직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런 감정이 내 안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소중한 쓰임이 되어 있을 테니까.



사진: UnsplashMarissa Grootes

keyword
이전 06화기록자의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