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꽤 예민한 아이였다. 겁도 많았고,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책에 따르면 예민한 사람은 정보량이 많아서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는데, 나 역시 그랬다. 상대방의 기분, 내가 말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 내가 원하는 것, 주변 분위기 등을 살피느라 대화를 하기가 힘들었다.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해' 같은 당위와 나 자신의 개성 사이에서 절충안을 찾기 힘들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인데, 짝꿍 여자애가 아주 앙칼진 아이였다. 책상에 금을 본인 위주로 그어놓고 넘어갈 때마다 내 귓볼을 잡아당겼다. 이 사실은 어머니가 내 귓볼에 맺힌 고름 덩어리를 발견해서 알려졌는데, 그때 왜 이걸 지금까지 참고 있었냐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여자를 이를 순 없잖아요."
이쯤 되면 예민한 게 아니라 둔한 거라고 해야되나. 아니 멍청한 거라고 해야되나. 하지만 그때 느꼈던 부끄러움과 나는 죽어도 이걸 이르지 않겠다던 다짐 같은 것들은 아직도 생각이 난다. 그 아이의 앙칼짐, 여자와 육체적으로 싸우면 안 되는데 말로는 이길 수 없는 무력함, 어른들에게 이걸 이를 때 손상받을 나의 남성성... 그런 것들을 생각하는 초등학생이었다. 그래, 예민하고도 둔한 아이였다고 해두자.
다른 수많은 예민한 아이들처럼 나 역시 살다보니 둔해져갔다. 세상 모든 날카로운 것들은 결국 무뎌진다. 책에는 자신의 예민함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질문지가 있는데, 나는 예민함이 높게 나오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무신경한 중년의 아재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에 조금 슬퍼졌다. 더 감동받고, 더 가슴 뛰고, 더 상처받아도 될텐데 뭐가 그리 두려워서 이 나이에 벌써 칼이 아니라 몽둥이처럼 되었을까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내게 '예민한 자들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활 안내서' 같은 느낌이 아니라 '당신의 예민함을 지켜내는 법' 처럼 느껴진다. 지키고 싶다, 나의 예민함.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라는 질문에 나는 이런 대답을 하고 싶다. 그렇게 예민하게 살아도 된다고, 그건 소중한 재능이라고, 세상의 자극에 가슴을 닫지 말라고. 너무 예민해서 힘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처럼 둔감해져가는 것을 막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다음은 인상적이었던 구절들이다.
사람이 뭔가로부터 도망치려고 한다면 반드시 그에 대한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P.124
우리의 뇌는 더 많이 움직일수록 건강해집니다. P.137
타인으로부터의 인정 욕구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반대로 나 자신으로부터의 인정 욕구에 집중하면 됩니다. P.164
인생이란 느끼는 자에게는 비극이요, 생각하는 자에게는 희극이다. P.171
운동, 산책, 건강한 식습관, 명상 P.175
평소 좋아하고 존중하는 사람과의 약속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반면 나 자신과의 약속이야말로 ... 별것 아니라는 듯 넘어가고 뒤로 밀리는 경우가 다반사죠. P.187
최대한 부정적인 자극들을 통제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사람을 통제하는 겁니다. 즉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온전히 혼자 하는 활동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죠. P.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