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특이한 작품을 소개할까 한다. <플라네테스>라는 일본 sf 만화책으로,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연재된 4권짜리 작품이다.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온 바 있으며 만화책과 애니 모두 성운상을 받았다.
작품의 배경은 2070년대로 우주 개발이 많이 진행된 시점이다. 주인공은 스페이스 데브리 – 우주 쓰레기, 파편들 –를 제거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스페이스 데브리는 수명이 끝난 인공위성, 로켓에서 분리된 부스터, 파괴된 위성의 잔해 등 다양한데, 지구 궤도를 따라 돌면서 여러 사고를 일으킨다. (대표적으로 영화 <그래비티>도 주인공들이 탄 우주선이 스페이스 데브리에 맞아 위기를 맞이한다.)
스페이스 데브리가 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사고 중엔 ‘케슬러 신드롬’이 꼽힌다. 1978년 케슬러 박사가 주장한 것으로, 지구를 도는 인공위성들이 스페이스 데브리와 충돌을 반복해 위성의 잔해들이 지구를 감싸 버릴지도 모른다고 경고한 데서 비롯됐다. 만약 실제로 케슬러 신드롬이 발생하면 위성을 사용하는 모든 기술 – gps, 항공유도, 위성 통신 등 –을 쓸 수 없게 되어 인류 문명이 후퇴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플라네테스>에서 묘사한 2070년대는 이와 관련된 규제가 많이 적용되어 우주와 관련된 기업들이 의무적으로 스페이스 데브리 청소꾼을 고용해야 한다. 돈 되는 일이 아닌지라 장비는 형편없고 보람도 없다. 왜냐하면 제거하는 데브리보다 새로 생기는 데브리가 더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구의 어떤 정치 세력은 인간의 우주 개발을 막고자 일부러 초대형 데브리를 발생시키는 우주 테러를 감행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그 안에서 지치기도, 성장하기도 하며 자신만의 우주를 찾는다. 주인공이 발견한 우주는 ‘사랑’이다.
어렸을 때 우주 속에 있는 나를 상상해본 적이 있다. 터무니없이 거대한 우주 속에 먼지보다 작은 존재인 나.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 검은 공간. 그런 상상을 할 때 소름 돋게 무서운 건 공간 자체의 무게감보다는 ‘외로움’인 것 같다. 그토록 광활한 공간에 나 혼자 있다는 외로움말이다.
<플라네테스>가 우주를 통찰해 내린 결론도 그렇다. 외로운 우주에서 우리가 버틸 수 있는 힘은 결국 옆에 있는 사람과 나누는 따뜻한 온기, 사랑이라고. 인류가 크게 발을 내딛어 진보를 이루더라도 결국엔 옆에 있는 사람과 보폭을 맞춰야만 한다고 말이다. 그것이 <플라네테스>가 말하는 사랑이다. 작품의 주제의식이나 디테일한 묘사, 그리고 서사와 인물 등 모든 면에서 나무랄데 없는 명작이니 sf에 관심이 있거나 근 미래의 생활상이 궁금한 분들, 우주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모두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도 한 가지 언급해야할 것 같다. 많은 일본 작품들이 그렇듯이 이 작품에도 일본 특유의 클리셰가 나온다. ‘철 없고 막무가내에다 변태인 남자를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품어주는 성숙한 여성’ 클리셰다. 일본 드라마나 만화를 보다 보면 꼭 이런 전개가 나오는데 대체 왜들 저런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아니 그 여자는 무슨 죄냐고... (플라네테스에선 남자가 여자와 결혼하자마자 죽을 수도 있는 임무를 하러 7년간 떠나버린다!) 제발 각성은 셀프로 하자, 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