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포도 이야기 아니고 신 자두 이야기
살다보면 아 뭔가 잘못되게 흘러가고 있다.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오늘 아침 자두를 꺼내 먹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신 맛을 매우 싫어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두를 샀다. (자두는 높은 확률로 신 자두가 많다) 어떻게 보면 도전을 한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신 자두였다. 그런데 포기할 정도로 매우 신 게 아니라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애매한 신 맛이었다.
꾹 참고 먹다가 한 60% 정도를 남겨뒀을 때였을까. 문득 "아 이거 너무 신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먹고 버릴까라는 마음이 들다가도, 이걸 이대로 버리게 되면 처치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차하면 초파리도 날릴 것이고, 잘못 처리하면 냄새도 날 것이고, 여튼 이것저것 귀찮은 점이 많았다. 에잇, 먹어버리자! 계속 먹기로 했다. 개미눈물만큼 계속 먹었다. 책을 읽으며 먹고 있었는데, 새콤해서 집중이 안된다. 그래서 그냥 창 밖을 보면서 계속 먹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먹고 있는데, 이렇게 자두를 먹는 내가 지금 처한 상황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살짝 괴롭지만 그만둘 정도로는 괴롭지 않은 상태가 지금인 것이다. 예전의 나는 꽤나 과감했다. 선택을 할 때 내가 충분히 치를 수 있는 댓가인지 계산도 하긴 했지만, 내 1순위 기준에서 어긋난다면 과감히 그만두곤 했다. 답을 찾는 디자인보다 질문을 하는 연구를 하겠다 다짐할 적에도, 디자인이 아닌 컴공 대학원을 가겠다 선택했을 적에도, 이제 회사를 그만둘 때다 결심을 내릴 적에도, 썩 과감한 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기회비용을 셈하는 어른이 된 것이다. 이걸 그만두었을 때는 이것도 저것도 못하게 되는데, 과연 내가 그걸 견딜만할 정도로 그만두고 싶을끼? 사실은 지나가는 감정이 아닐까? 자두를 계속해서 먹으면서 이걸 계속 먹어야 하나 고민하는 지금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 뭣 하나 해보지도 않으면서 머릿속으로 계속 계산기만 두들기는 것이다.
예전보다 가진 게 많을수록, 그걸 놓았을 때의 아쉬움과 현재의 아쉬움을 자꾸만 계산하게 된다. 제법 다각도로 판단하고 책임을 질 줄 아는 어른이 된 것 같다가도, 불꽃 같은(?) 열정이 식어버린 초탈한 어른 같기도 해 씁쓸하다. 예전보다 조심스러워진 내 모습이 과연 좋은 걸까, 나쁜 걸까. 현재로선 답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야 알 수 있을 듯하다.
결국 나는 자두를 다 먹었다. 쓰레기를 줄여 환경보호에도 일조했고, 초파리도 꼬일 확률이 낮아졌다고 스스로 되뇌었다. 하지만 내가 과연 원한 일인가? 결국 나는 행복한가? 자두 하나로 지금의 상황까지 연결짓는 내 머릿속은 지금도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