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2017년 5월 15일 모 훈련소에 입대할 예정이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재검을 기다렸다. 무리한 알바 일정을 소화하다 쓰러졌던 터라 몸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3월 초, 17학번 신입생 개강총회가 열린 날이었다. 학생회비를 납부한 나에게는 싼 맛에 맛있는 음식을 원 없이 먹을 절호의 기회였다. 군대에 갔으면 생판 몰랐을 신입생을 보게 되는 건 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한 개강총회에서 지금의 그를 만났다.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놀랐다. 여느 신입생과는 다른 면, 그러니까 좋게 말하면 고뇌로 가득 찬 얼굴이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불만이 들어찬 모습으로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반갑게 그 눈에 먼저 말을 걸었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잘 맞을법한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는 버릇이 있던 나는 그 사람과는 필히 잘 맞겠다 싶었다. 어쨌든 말을 걸었으니 어색한 통성명이 오고 갔다. 이름은 우철,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성씨 현, 재수생, 첼시와 서울 FC의 팬, 비틀즈와 오아시스를 좋아하는 밴드 보컬... 그를 수식하는 말이 제법 많았다. 재수생이라는 점만 빼면 나는 어떤 축구팀의 팬도 아니었고 영국은 물론 음악 자체에 조예가 깊은 사람도 아니었기에 공통점은 별로 찾지 못했다. 음악에 대한 얘기가 자주 오고 갈 텐데 난 오아시스의 음악이라면 Don't look back in anger를 필두로 몇 곡 안다만 비틀즈는... Hey jude, Yesterday, Let it be 정도가 다였다. 내 얇은 브리티쉬 음악의 바다를 탓했다.
그런 자책감이 들 무렵 고려대 인근 소규모 라이브홀에서 홀로 공연을 한다는 말과 함께 공연에 초대받았다. 그가 준비한 곡은 radiohead의 creep, oasis의 whatever였다. 그 외에도 몇 곡 더 있었으나 기억에 남는 곡은 이 둘이 전부다. 2년도 더 지난 일은 참 길고도 짧다. 그는 낮고 탁한 평소 목소리에 걸맞은 중저음으로 열창했다. creep의 후렴구에서 run을 연발하는데 절규하듯이 불렀다. 우는 소리처럼 들렸으니까 누군가는 발성이 안 잡혀있다 꾸짖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부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내면에서 더 많은 소리를 끌어올릴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와 더욱더 친해질 수 있단 확신이 들었다. 결국 우철이는 서울이란 삭막한 땅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2017년 3월의 우철이와 나는 서로가 풋내기인 채로 만났다. 그리고 2018년 5월, 한성대입구역 성북천 골목길 어딘가 위치한 작은 골방에서 꿈을 키워 오는 9월 드디어 자신의 소리로 가득 채운 앨범을 만들었다.
앨범재킷은 우철이의 작업실 문이 배경이다. 대충 만든 듯 고심한 흔적이 동시에 엿보이는 사진, Idler란 페르소나에 걸맞다.위 앨범 재킷에 쓰인 4x5+1의 값 21은 우철이에게 매우 중요한 숫자다. 우선 그가 21살에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함으로써 처음 발걸음을 내디뎠단 의미가 있다. 더불어 21살 풋내음 나던 시절에 만든 작업물과 23살의 자신이 만든 작업물이 보여주는 차이를 통해 21에 머무르지 않고 더욱 나아간 Idler의 얼굴을 표현한다.
트랙리스트다. Special Thx 첫번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트랙리스트에 대한 언급은 자세히 하지 않을 예정이다. 이 곡은 어떻고 저 곡은 어떠하다 먼저 말을 해버리면 노래를 듣지 않은 사람들은 그저 홍대나 마로니에 공원 어딘가를 떠도는 평범한 버스커 정도로 치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Idler를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궁금해할 만한 요소는 분명 있다. 바로 '예측 불가능함'이다. 노래 제목만으로는 Idler가 어떤 노래를 하고 싶어 했는지 무엇이 21을 표현하는 곡이고 21에서 나아간 곡인지 알리 만무하다. 크레딧에 기재된 작업 참여 목록 또한 볼만하다. 기타, 베이스, 드럼, 신스, 보컬, 녹음, 믹스, 마스터링... 앨범에 들어간 모든 요소를 현우철 한 사람이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우철은 혼자서 무슨 음악을 만들었을까. 단 하나, 창작과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간단히 말하자면 사랑의 외계인과 동경 속 뮤즈는 동일인물이다.
P.S 사운드클라우드에 우철이의 데모테이프가 업로드 되었다.
https://soundcloud.com/user-271909875/sets/demotape-4x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