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공화국에서 살아남기

강원도 촌놈이 느끼는 열등감, 필연적 감정에 대하여

by 휘휘

어제, 그러니까 10월 3일 개천절은 23번째 생일이었다. 여느 가정처럼 아침에 미역국과 케이크를 먹었다.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아침 이전 2일 저녁에서 3일 아침까지 내린 비는 400mm, 장마철 전반에 걸쳐 내리는 비의 양이 하루아침에 내린 셈이다. 생일 기념으로 술을 마시러 시내에 나갔다 발목까지 잠긴 빗물을 헤치고 집에 도착했을 때 기분이 묘했다. 서울에서 이런 물난리가 났으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이었을까 궁금했다. 7만이 채 되지 않는 삼척 시민들이 뒷산이 무너져 죽고 빗물에 집이 잠겨도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삼척이 오르내리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시선유도봉이 목까지 잠겨있는 시내


이유는 꽤 간단했다. 이슈를 만들 만큼의 많은 사람이 살지 않으니까. 13호 태풍 링링이 서해 바다를 걸쳐 수도권을 위협했을 때와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방송사들이 앞다투어 예상 강수량과 피해 예상 지역을 생중계했다. 서울 1000만, 경기도 1300만 그리고 인천 290만, 5천만 대한민국에서 절반이 살아가는 수도권의 입김은 강했다.


수도권의 입김 하니 어릴 적 서울에 대한 이미지가 생각났다. 서울에 갈 때면 거의 항상 올림픽대교를 건넜는데 다리를 건널 무렵 탁 트인 한강, 그 너머 빼곡히 들어찬 주택단지와 강변 테크노마트가 보일 때쯤엔 희열을 느꼈다. 그런 것들이 삼척엔 없었으니까. 갤로퍼 차창 밑부분에 얼굴을 비벼대며 고층빌딩을 올려다봤다. 초등학생일 때 다녀온 골드버그 전시회, 퐁피두 센터 아트 전시회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삼척에선 그런 규모의 전시를 할 공간도 수익이 날 만큼 보러 오는 사람도 없으니 하려야 할 수 없는 전시회다. 그래서 서울 사람이 부러웠다. 지하철을 타든 버스를 타든 차를 몰고 가든 어떻게든 자신이 원하는 입맛에 다가갈 수 있으니까. 그런데 서울 사람들은 강원도 시골에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할까? 슬프고 화가 났다. 서울 사람이 아니어서.


서울이니까 가능한, 서울이어서 열리는 문화공간은 강원도 삼척 토박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픈 열등감을 싹트게 했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텔레비전에 나오는 6시 내 고향이 싫었다. 연예인들이 시골에 찾아가 전통음식을 같이 해 먹고 어설프게나마 사투리를 따라 하는 내레이션이 따라붙는 모양새가 나를 비웃는 것처럼 들렸다.

말을 배울 적부터 내 말투는 심히 촌스러웠다. 정확히 따지자면 난 강원도 삼척 사람들 말투가 아닌 함경북도 사람같이 말했다. 사실 시골에 살아도 자부심을 부릴만한 요소가 서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커다랐다면 말투를 고치지 않았을 테다. 그게 있어야 말이지. 어쨌든 북한스러운 말투는 20살에 재수를 하면서 거의 완전히 고치게 된다. 서울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더니 자연스럽게 서울말이 나오더라. 그때 촌스럽다는 말은 결국 욕이라는 걸 다시금 느꼈다. 말투가 서울스럽다는 말은 있지도 않을뿐더러 디폴트 값이기에 아무도 신경 안 쓴다.


그렇게 촌스럽던 과거와의 청산을 말투부터 시작했다. 서울에서 서울로 끝나는 우리나라에서 살아남으려면 디폴트, 서울스러운 삶을 살아야 함을 몸으로 느꼈기에 더욱 그랬다. 서울에 사는 기숙학원 친구의 친구들은 직업이 다양했다. 비트코인 열풍이 불기 전인 2015년에도 비트코인 거래소 등을 전전하며 돈을 쓸어 담는 친구, 일찍이 상업 분야에 진출해 지점장 매니저가 된 친구... 공무원이 장래희망 1순위인 세상에서도 넓은 분야로 진출한 그의 친구들이 부러웠다. 내 꿈인 출판업, 일본계 기업으로의 진출은 그들에 비해선 일반적인 꿈이었지만 삼척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서울로 가야만 했다. 1년 가까이 새벽 6시 기상, 12시 취침 그전까지 수업과 자율학습의 끊임없는 반복을 견뎌냈던 원동력은 '서울'이었다. 서울로 가면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작품을 때가 되면 바로 볼 수 있고 가수의 공연이 있는 날이면 부담 없이 티켓팅을 할 수 있다. 서울까지 3시간 남짓 걸리는 소요시간에 내 꿈, 현재를 아우르는 열등감, 천부적인 촌스러움으로부터 도망가야 하는 강박감이 담겨있다. 그 3시간의 차이를 극복하려 난 오늘도 글을 쓴다. 촌스러운 글을 쓰지 않으려 노력해야만 했다.


나는 오늘도 꿈을 꾼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왕국에 들어가는 꿈을, 그 안에서 살아가는 꿈을 꾼다. 서울 사람들이 아무리 삼척 바다의 깨끗함, 바다가 선사하는 아름다운 자연, 전국 최대 규모의 동굴이 멋있었다며 엄지를 치켜들어도 감흥이 없다.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과 놀러 가는 사람의 차이는 극명하다. 서울에 눌러앉으면 나도 여느 서울 사람처럼 시골에 대한 로망이 생길까 떠올려봤다. 도시 숲을 벗어나 한적한 텃밭에서 새 삶을 꾸려나간다니 말도 안 된다. 농사도 적성에 맞아야 가능하다. 어떤 작물을 재배하든 힘들다. 벌레 그리고 산짐승들과 한바탕 씨름을 벌이며 농약을 쳐야 했다. 현실에는 나만을 위한 작은 숲, 리틀 포레스트가 없다. 이는 사람들이 빌딩 숲으로 향하는 이유이기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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