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일 글쓰기 2주 2일 차

데미안이 없는 세상에서 돈 없는 싱클레어가 살아가는 법

by 휘휘
그래서 저는 이따금 유리벽에 코를 박은 스푸트니크의 개를 떠올리며 밖을 바라봐요. 그러면 이 방이 어떤 공간이나 장소가 아닌, 어디론가 계속 이동 중인 물체처럼 느껴지거든요. 이제 저쪽 세계와는 같은 시공을 공유할 수 없겠다는 예감을 안고, 묵직한 가속도를 내며 지구로부터 멀어지는 우주선처럼요. 아무튼 오늘도 멀리 캄캄한 도시 위엔 붉고 노랗고 희고 푸른 불빛들이 알사탕처럼 뿌려져 있어요. 깨물어 먹고 싶을 만큼. 예쁜 서울이에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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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서른 中

김애란 작가님의 단편소설집 비행운의 수록작, 서른을 읽었다. 소설 속 화자 수인은 노량진의 삶을 공유한 언니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수인은 10년 전의 그 날과 별 다를 바 없이, 오히려 더 처절하게 슬픈 삶을 살고 있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문과를 졸업한 그녀는 자신만의 꿈을 간직한 채 그냥저냥 학구열 없는 동네에서 과외를 하며 살아갔다. 중계동, 목동에서 아이들이 보인 열의와는 별개로 그녀에게 면목동은 60만 원의 돈을 주는, 자본의 동네다. 희망 없이, 진전 없는 삶을 살던 그녀는 전 남자 친구의 꾐에 빠져 어딘가로 향한다.


재개발이 무산돼 방치된 사당역 인근 후미진 곳에 갇힌 그녀는 수백만 원짜리 양파즙을 먹어가며 연명한다. 다단계에 빠진 그녀에게 탈출구는 없는 듯했다. 그곳에서 빠져나온 이유는 하나, 자신의 과외생이었던 혜미를 꾄 것이다. 전 남자 친구가 자신을 그렇게 했듯이 그녀는 사랑했던, 순수한 제자를 팔아넘기고 지옥에서 벗어났다.
공부에 의욕은 없지만 유독 자신을 사랑했던 혜미는 다단계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사람을 모두 잃는다. 모두 잃어버린 혜미는 자살 기도, 식물인간이 돼 어느 병원에 누워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수인은 언니가 편지를 받을 쯤에는 혜미가 있는 병원에 갔거나 아니면 양심상 할 수 없는 일이라 판단해 어딘지도 모를 어정쩡한 곳에서 헤엄치고 있을 거라 말한다. 20대 젊은 날의 추억을 떠올려 수인에게 편지를 보낸 언니는 수인에게 답장을 받지 못할 테다. 서울이 내뿜는 빛에 동화된 수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팔아넘길 만큼 타락했다. 서울이란 이름의 동산은 부동산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수인을 6번째 자취방으로 인도했다. 움직이지 않는 창에서 움직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기분은 어땠을까.


낙산공원 위에 올라가 서울의 얼굴을 관조하던 때가 생각났다. 서울은 해가 지면 경쟁이라도 하듯 서로가 반짝거린다. 자신이 아직 집에 가지 않았음에 반짝, 밀린 일을 해가 뜨기 전에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반짝거린다. 그 빛이 당사자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서울은 더 외롭다. 멀리서, 언덕길을 그리고 계단길을 오르고 나서야 보이는 빛은 사람에게 이런 생각을 갖게 할지 모른다.


'내가 아등바등 살아오던 그 노력이 저렇게 빛으로 보이는구나. 참 애썼구나.'


다만 그 빛은 서로를 비추지 않는다. 타락을 선으로 데려다 줄 데미안이 없다. 애초에 수인은 유복한 집안의 싱클레어가 아니다. 지방 출신 재수생, 어학계열 전공 문과생... 수인을 수식하는 말은 서울에서 비주류, 소외를 상징한다. 수인이 방을 옮겨 다니고, 주변 사람들과의 연을 끊으면서까지 다단계에 매달린 삶은 어쩌면 예정된 비극이 아닐까.


바퀴벌레가 우글거려도 이상하지 않은 낙후된, 그곳에서 수많은 수인이 기생충처럼 살아간다. 그러다가도 출근길에는 말끔한 양복을 입고 걸어 나가는 서울이다. 20, 21, 새해 늘 먹는 떡국처럼 후루룩 나이를 들이켜다 보면 30이다. 수인은 그렇게 30이 되었다.


2주 전 스물다섯이 된 내가 바라본 수인은 어쩌면 내가 될지 모르는, 또 하나의 나 혹은 당신이었다. 스물 위 서른 아래의, 지방 출신 재수생에 문예창작 전공생인 내가 수인이 되지 않으려면 서울이 내뿜는 빛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데미안이 없는 세상에서 악에 현혹되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은 내가 데미안이 되는 것이다. 나를 가두고 있는 서울이란 이름의 세계, 알을 깨고 나오자. 사람을 잃으면 모두를 잃는다. 내 아픔을 느끼는 만큼 상대의 아픔에 통감하자. 세상에 숨 쉬고 있을 혜미에게, 8년 간 임용고시에 매달려 청춘을 바친 언니에게 안녕과 행복을 빌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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