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 ‘잘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안 좋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요즘 일각에서는 그 말이 예쁘고 잘생긴 외모를 표준화하여 조장한다는 점을 들어 폭력이라 주장한다. 누군가의 외모를 보고 ‘예쁘다’ 말하면 그 외모에서 벗어난 다른 사람들은 ‘예쁘지 않다’가 된다. 외모를 칭찬하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처럼 우리는 칭찬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내재된 폭력성을 판단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배스킨라빈스 광고에 출연한 아역 모델 ‘엘라 그로스’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들었다.
아역 모델에 롤리타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의 논리에는 두 가지 쟁점이 존재했다. 아이를 어른처럼 화장시켰다는 점, 아이스크림을 베어 무는 아이의 얼굴을 지나치게 클로즈업해 어른들의 성적 욕망을 드러냈다는 등이 있다. 아이는 어른들의 성적 대상화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아이다워야 한다는 게 그들의 논지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아이다움’이란 또 하나의 강요가 아닌가 생각했다. 학생에게 학생다움을 강요하며 일명 ‘귀 밑 3cm’ 헤어스타일을 천편일률적으로 고수한 학교의 고압적 태도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들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할지 모른다. 아이들과 학생은 어른에 비해 판단, 지각능력이 떨어져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른과 같은 대우를 받는 건 시기상조다. 그들에게 되물어보고 싶다. 법이 만들어놓은 어른과 아이의 구분, 만19세의 울타리가 정말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아이는 법적 성인이 되어야 어른이 되는가.
‘휴거’, ‘주거’, ‘빌거’ 우리의 삶을 옭아매는 신조어를 곱씹어보자. 휴먼시아나 주공아파트, 빌라에 살면 거지 취급을 받는다. 이 단어의 주된 소비층은 다름 아닌 아이들이다. 아이의 입에서 소득, 주거형태에 따른 차별적 언행이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남들보다 덜, 더 비교하는 삶은 어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어른의 영향을 받았든 어쨌든 아이 또한 남들과 비교하는 삶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다. 비교 대상과의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다시 어른들의 삶으로 돌아가서 비교당하는 사회에서 경쟁력을 얻으려는 눈물 나는 노력을 돌아보자. 면접에 합격하기 위해 성형을 감행하고 면접장에서 좋은 인상을 받으려 멀끔한 외모로 보이게끔 화장을 한다. 손님과 얼굴을 마주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CS마인드 명분하에 단정한 용모, 웃는 얼굴을 강요받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사회의 올바름, 정의 앞에 앞서는 건 아무래도 돈이다. 웃지 않아도, 화장하지 않아도 돈을 벌고 안정된 삶을 산다면 우리는 고객 앞에 가면을 쓴 양 웃을 필요가 있을까.
겉, 외양이 보여주는 힘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외면을 보지 말고 내면을 보라는 말만큼 무책임한 말이 없다. 지인 소개를 통해 처음 만난 사람이라고 가정했을 때, 언제 먹었는지 모를 음식물이 옷에 달라붙어 있고 면도하지 않은 덥수룩한 얼굴의 남성이 말을 건넨다고 떠올려보자. 이 사람의 고귀하고 순결한 내면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필자는 외모가 예선전, 인성, 됨됨이 등의 내면은 본선이라 생각한다.
‘예선에 떨어지면 본선도 없다’
‘엘라 그로스’ 사태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 꼬리표처럼 달라붙는 자본주의보다 사회적 정의, 아이다움을 내세워 벌어진 해프닝이라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엘라 그로스’는 모델 일을 하는 자체에 행복을 느끼는, 자신이 하는 일이 재밌고 보람을 느껴 최선을 다하는 아이다. 그들이 말하는 천진난만한 아이다움이 이런 면이 아닐까. 배스킨라빈스 측에서도 CF촬영장에는 어머니가 대동하였으며 그녀의 참관 하에 촬영이 진행되었음을 분명히 밝혔다.
더불어 그녀가 성상품화 논란에 대해서 입을 열었을 땐, 아이스크림 맛을 재미있게 표현하고자 했던 광고가 그들에겐 역겹고 무서운 것으로 인식되었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실제로 엘라 그로스가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 때 입술이 클로즈업 되는 장면은 1초 남짓할 정도로 짧았다. 진한 화장을 해 어른처럼 보였다는 반응 또한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었다.엘라의 이목구비는 원래 뚜렷했으며 입술에 아이스크림 색에 어울리는 립스틱을 바르고 속눈썹을 올렸다는 정도다. 아이가 장난스럽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베어 무는 광고를 어른들의 성적 대상화라 표현한 그들의 주장이 신빙성을 잃은 셈이다.
이와 유사한 사건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송종국의 딸 송지아 화보에 대한 논란이다. 화보 속 송지아는 다양한 종류의 옷을 입었는데 그 중 문제가 된 것이 드레스를 입은 사진이었다. 일부 대중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13살 어린 아이에게 란제리를 입혔다,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옷을 아이에게 왜 입혔는가에 대한 분노 섞인 말이 오갔다. 13살 아이에게 ‘란제리’ ‘허벅지’ 등의 표현을 써가며 아이가 얼마나 야한 옷을 입었는지에 대해 열띤 반응을 보이는 것이 오히려 성적 대상화이자 폭력 아닌가?
엘라의 뚜렷한 이목구비와 송지아의 성숙한 외모는 또래 아이와 비교했을 때 경쟁력있는 외모이지 어른들의 입에 오가는 성적 대상이 아니다. 과거 로타의 롤리타 화보 논란은 포토그래퍼 로타의 온전치 못한 성적 욕망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명백한 로타 그의 잘못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잘못을 빌어야 할 입장은 아이에 ‘롤리타’ ‘란제리’ 껍데기를 씌운 어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