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낭콩은 어려서 티비를 못 봤지
어려서 말이야
가까이서 보면 눈이 짓무른대
알맹이가 전자파에 닿으면 부서지고 말 거래
그 말을 진심을 다해 믿었어
순수하게
순진하게
멍청하게
떡잎이 흙을 파 뒤집고 올라올 때쯤
강낭콩은 렌즈를 박아 세상을 바라봤어
티비를 안 봤는데 참 이상하지
칠판에는 하얀 글씨가 뭐라 뭐라
판때기에는 검은 분필이 없었대
색을 일단은 숨기고 보니
신기하지
신비하지
신물나지
강낭콩은 노란색 연두색 무지갯빛
빌어먹을 영양제를 꼽아 먹다가
비로소 강낭콩이 되었어
씨알 굵은 콩알에 뭐라 적혀있네
살갗을 파먹은 타투를 또박또박 읽었지
사랑해
누구를
모르겠대
그냥 너무 아파서
살 깊숙이 파고들어
문신이 되었대
이 말을 어디서 지우지 했었대
가만히 듣고 있던
의사는 오늘도 영양제를 처방했대
땅에 꼽고 말하더래
무럭무럭 자라라
잔인하게
잔혹하게
참혹하게
틔우면 그만인 강낭콩은
지금도 어딘가 땅속에서 지옥을 속삭이고 있대
사랑해
무럭무럭 자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