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안 들면 차별주의자라고?

올바름을 강요하는 사회가 휘두르는 폭력에 대하여

by 휘휘

최근 모 크리에이터가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정치적 올바름으로 대변되는 PC의 흐름에 반발심이 생겼다면 세계적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글이었다. 캡틴 마블의 존재 자체가 불편하거나 인어공주 실사 영화에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가 인어공주 역으로 캐스팅되는 것이 못마땅한 사람들을 구시대적인, 옳지 않은 것쯤으로 치부하는 그의 태도가 조금은 의아했다.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괄시당하던 캐럴이 수년간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테서랙트의 힘에 우연히 노출된 후 막강한 권력자로 군림한다는 이야기가 맘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결국 외부의 힘에 의존해야 하는 여성상을 그린 건가 싶었다.


캡틴 마블의 등장 이후 마블 영화에서 종종 보이는 여성이 남성을 구원하는 씬 또한 유쾌하지 않았다. 어벤저스 4에서 위기에 빠진 스파이더맨을 일면식도 없는 여성 히어로들이 한데 모여 도와주는 장면이 그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심결에 지나치거나 멋있다 말했지만 PC바람이 불고 있는 영화계에서 마블은 PC주의를 어떻게 풀어나갔을까 주목하던 참에 발견한 장면이었다. PC주의자들에게 합격점을 받아보겠다는 움직임처럼 느껴졌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연출한 영화에서 등장하는 흑인과 백인, 주종 관계의 역전은 통쾌했는데 말이다. 마블의 남녀 역전 구도에 불편함을 느낀 건 프로 불편러가 되기를 권장하던 PC주의자들의 행동 때문이 아닐까?


장고가 꼭 백인이어야 하나요?

솔직히 마블에 더욱더 PC적 요소가 강해졌으면 좋겠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저의를 모르겠다. 정치적 올바름의 강요가 세상을 얼마나, 어떻게 좋은 것으로 만드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여성이란 이유로 핍박받고 파일럿이 될 수 없었던 캐럴이 테서랙트의 파워에 노출돼서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서열 2인자가 되는 일은 외부요인에 의존하는 여성상을 비춘 거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여성차별의 해결책이 테서랙트 빔 맞는 일인가? 눈에 보여주기 식 PC를 하면서 소위 말하는 '트렌드'에 편승하고 돈을 빨아먹는 마블의 속내가 짜증 나는 거지 캡틴 마블의 존재 자체에 화가 나는 건 아니다.


소수자의 이미지를 매스미디어에 비춰내는 게 실제 소수자의 이미지 개선과 '어셈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가? 더 모르겠다. 블랙 팬서에서 독자적 과학 체계가 확립,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자립하여 살아가는 와칸다 왕국의 국민들의 모습을 본다 해서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선입관이 사라질까? 선입관에의 역전이 또 다른 고정관념을 낳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와칸다가 아프리카에 대한 빈국 이미지를 벗겨냈을까?



처음에 언급한 모 크리에이터가 글을 마치기 전 보태기를 덧붙이며 디즈니가 마블을 인수했음을 말했다. 이에 인어공주 논란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다. 나는 인어공주 아리엘이 흑인이라서 실사영화 캐스팅에 반발심을 가진 게 아니다.


하얀 피부에 붉은 머리를 갖고 있는 아리엘은 사실 붉은 머리가 놀림감이 되었던 아일랜드인의 희망과도 같은 존재다. 붉은 머리, ginger의 희망 아리엘은 명랑하고 활기찬 바닷속 공주님이다. 그녀는 첫눈에 반한 왕자님과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 저주까지 풀어내며 당당히 사랑을 쟁취한다. 그런데 2019년, 실사 영화 캐스팅에 할리 베일리가 낙점되면서 트렌드, 시대적 흐름이라는 이름 아래 붉은 머리를 잃어버렸다.


지금 디즈니에게 묻고 싶은 건 하나다.


"하얀 피부, 붉은 머리를 강조한 애니메이션으로 캐릭터 상품을 미친 듯이 찍어내어 돈 벌 땐 즐거웠고 지금은 흑인 인어공주로 PC라는 이름을 묻혀 돈을 벌거냐?"

필자의 유년시절 라이온킹과 함께한 붉은 머리의 아리엘

흑인의 인권 신장, PC의 명분을 앞세워 붉은 머리의 백인이란 또 하나의 소수자를 지운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붉은 머리의 인어공주 아리엘을 공식적으로 실사화할 권한은 오직 마블을 인수한 디즈니에 있다. 독점권을 쥐고 주류 사상을 옳지 않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만든 다음 비주류를 주류 사상으로 끌어올리려 한다는 점이 괘씸하기까지 하다.


소수자에 주목하는 삶을 주류로 바꾸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소수자가 배제된다는 사실, 실제적인 소수자의 인권 향상에 도움은커녕 반대 성향을 띤 사람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PC주의가 정말로 사회의 주류 사상인지 의구심이 든다.

아일랜드인과 같은 사람에게 붉은 머리가 가지는 상징성은 쏙 빼놓고 백인을 흑인으로 바꾸는 수준의 알량한 인종 바꾸기가 PC이자 세계적 흐름이라니 안타깝다. 내가 생각하는 올바름은 메시지를 통한 고정관념과 편견의 타파, 소수자에 대한 의식 제고이지 피부색, 성별 바꾸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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