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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Aug 01. 2021

7월의 기록

2021년 7월

#16권의 책, 4편의 영화와 4편의 전시


올 들어 가장 많은 책을 읽은 달. 시간이 더 많았다거나 책을 많이 읽기 위해 노력을 한 건 아니었지만, 이번 달에는 책으로 도망치고 싶었던 날들이 많았다. 그런 날들이 이틀에 한 번 꼴이었지는 알 수 없지만 닮은 듯 안 닮은 듯 다양한 사람이 되어 (심지어 실존하는 에세이 속의 화자가 되어) 이리저리 도피하듯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다. 올해 독서 목표 가운데 '한 달에 한 권씩 시집 읽기'를 실천하고 있다. (읽지 못한 달도 있다.) 그전까지 시는 나에게 너무 어려운 분야였고 관심도 없었다. 무슨 말인지 통 모르겠고, 왜 이렇게 알쏭달쏭하게 쓰는지는 더 모르겠고. 하지만 한 권씩 시집을 읽어나갈 때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변화가 있는데 마음이 말랑말랑 해진다고 해야 하나. 이성과 논리 속에서 점점 굳어가는 마음을 다시 부드럽게 해 준다고 해야 하나. 여전히 시는 나에게 어렵지만 시를 읽지 않는 누군가보다는 시를 읽는 사람의 마음이 조금 더 말랑하다고 믿게 되었다. 소설이나 에세이는 하루에 한 권 읽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시집은 훨씬 얇은데도 한 달에 한 권을 읽는 게 꽤 어렵다. 한 번에 여러 편을 읽으면 마치 체한 것 같다. 소화가 되지 않으니, 더 이상 읽을 수가 없다. 마치 대기권을 통과하는 우주선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통과해야 하므로 그것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하고, 나 스스로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한다. 한없이 슬퍼지거나 고통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올해 골랐던 시집들이 하나같이 다 좋았고 어떤 시집은 마법 같은 만남이자 선물이었다고도 생각한다. 덕분에 나는 한 발자국 더 시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그게 태양과 토성쯤의 거리라 하더라도 나는 오늘도 '읽는 사람'이므로 계속 걷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거리가 지구만큼 더 좁혀진다면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름과 수박


말 그대로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덥다. (그래도 아직 더워서 깬 적은 없다.) 아침 일찍 나갈 일이 있어서 꽤 이른 시간에 밖에 나갔다가 한 낮처럼 뜨거운 기온에 깜짝 놀란 적도 많다. 5분만 걸어도 땀이 나고 숨이 막히는 날씨. 장마는 뜨거운 태양만 남겨두고 온지도 모르게 가버렸다. 원래 나는 특별히 가리는 과일 없이 다 좋아하는데, 수박도 역시나 좋아한다. 하지만 혼자 살다 보니 수박은 좀 부담스러웠다. 냉장고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 다 먹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여름은 유난히 더 덥게 느껴져서인지 일찍부터 수박이 너무너무 먹고 싶었다. 결국 마트에서 반통짜리 수박을 샀다. 사실 그 전에는 반통짜리 수박에는 뭔가 흠이 있는 것 같고 (보이지 않는 반쪽에 대한 불신), 또 한 통의 반 가격이 아니니 손해를 본다는 느낌도 들어서 어쩐지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수박에 대한 욕망은 이성을 이겼고 반 통짜리 수박을 들고 집에 오면서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나의 걱정과 다르게 반 통의 수박을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먹었다. 그렇게 반 통의 수박은 두 번이나 냉장고를 스치듯 사라지고 결국은 한 통의 수박을 사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것도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곧 사라질 듯하다. 이렇게 막상 저지르면 별 거 아니라니까.


#고독사


얼마 전에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와서는 대뜸 옆 집에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집의 계약과 관련 있는 중개인이었는데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옆 집에 2-3개월째 월세도 내지 않고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서 옆 집 세입자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그러면서 일이 있어서 어딜 간 건지 아니면 집 앞에서 변을 당한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굳이 덧붙였다. 물론 그 전에도 옆 집 사람과 마주친 적은 거의 없었고 아니 한 번도 없었던 것 같고 듣고 보니 최근에 더더욱 옆집에서 생활 반응을 못 느낀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굳이 옆 집에 사는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하다니. (사실 그 당일에는 무서워서 그 집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못했다.) 당연히 그런 일은 없겠지만 또 한 편으로 그게 당연한 것만은 아니기도 하니 영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근데 그날 이후로 왜 자꾸 고독사 기사가 눈에 띄는지 알 수가 없다. 옆 집이지만 지난 몇 년간 한 번도 같은 층에 사는 사람을 마주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에 나는 살고 있고 포털사이트에는 고독사 기사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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