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휘찬 Aug 13. 2021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삶

오래도록 영원히 그 자리에

독립을 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사용한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는 가족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여러 이유 중 하찮은 이유 하나쯤은 된다고 생각한다. 사소한 예를 들자면 서랍에서 손톱깎이를 꺼내서 사용하고 다 사용하면 항상 아무 데나 둔다. 다음에 손톱깎이를 쓰려고 서랍에서 찾지만 당연히 제자리에 두지 않았으니 그 자리에는 없다. 그럼 여기저기 뒤진다. 그렇게 찾아서 사용하면 또 아무 데나 둔다. 다른 가족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에 나만 유난인 건지, 눈에 띄는 대로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만 내가 필요할 때 제자리에 없으면 짜증이 난다. 손톱깎이의 경우는 결국 내 방에 따로 두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손톱깎이를 못 찾으면 슬쩍 와서 내 방으로 와서 내 것을 사용하고 그 역시 제자리에 돌아오는 일은 드물었다. 물건을 사용한 다음에는 제자리에 두지도 않으면서 어째서 찾을 때는 제자리에서 찾는단 말인가. 왜 당연히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할까. 나는 물건이 제자리에 있지 않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 타입이고 제자리에 있지 않은 물건을 찾아야 할 때는 화가 났다. 


모든 것이 항상 제자리에 있는 삶을 꿈꾸며 독립을 한 날 밤, 엄마는 나에게 집이 텅 빈 것 같다며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나는 독립의 기쁨에 젖어 고작 방 하나 비웠을 뿐인데 뭐가 텅 빈 것 같냐며 철없는 소리를 해댔다. 독립을 한 후, 대부분의 것들은 내 입맛에 맞게 지정된 자리가 생겼고, 나는 무언가를 그 자리에서 찾는다. (물론 간혹 가다가 찾지 못하는 물건이 있지만, 그건 제자리에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의 '제자리'를 내가 잊기 때문이다. 분명히 어딘가 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물건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것의 자리를 정하는 것이며 모든 것이 각자의 자리에 있다는 사실은 안정감을 준다. 어쩌면 엄마도 서랍 속의 손톱깎이처럼 내가 언제나 당연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언제까지나 아침마다 방에 들어가 잠에 취한 아들을 깨우고 입이 짧은 아들을 위해 반찬을 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내가 엄마의 품 안에서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엄마도 제자리에 있던 나에게 안정감을 느꼈겠지. 내가 독립하던 날, 짐이 빠진 방이 허전한 게 아니라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제자리에 있지 않아서 텅 빈 것 같았을 것이다. 


나 역시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삶을 꿈꾸면서 당연히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언제나 지금의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그게 영원한 '제자리'인 것처럼.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어떻게든 우리의 삶의 형태는 계속 변할 것이고, 그 변화의 끝에 우리 모두는 '제자리'만을 남긴 채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다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뉴스를 보면 한 순간에 가족을 잃은 사건을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준비의 시간도 갖지 못하고 떠난 사람이 남긴 자리를 보는 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상상할 수가 없다. 나의 자리가, 엄마나 아빠의 자리가, 또한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자리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항상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 인생의 제자리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삶'을 꿈꾸는 것처럼 

엄마가, 아빠가, 동생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오래도록 영원히 

제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빠른게 무조건 좋은건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