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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Jul 20. 2020

색칠은 나의 몫

하루하루를 색칠해 나가기

올해 브런치를 시작하고 글을 쓰며 

아이패드로 일러스트 연습도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6개월이 넘게 지났다.

2000년대 내가 즐겁게 했던 작업을 다시 하면서

그때의 에너지를 다시 채워보고 싶었다.

처음엔 즐거웠다.

무언가를 쏟아내는 느낌도 들었고

차분하게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일은 점점 버겁게 느껴졌다.

물론 지금은 학생이 아니라 야근과 잡무에 시달리는 직장인이고

과제 안 하고 놀다가 하루 전에 부랴부랴 하면서 느끼는 스트레스의

한 만 배쯤 되는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전쟁 같은 하루하루 속에서

여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소재'가 없었다.

글을 쓸만한 '소재'도, 그림을 그릴 만한 '소재'도 없었다.

그냥 내 삶이. 내 생활이. 내 인생이 단조로웠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지난주 같았다.

달력의 숫자를 볼 때마다 흠칫 놀래고 

또 이렇게 한 주가, 한 달이, 반년이 지나갔음에 슬퍼한다.

항상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가득해서 그걸 기록하고 싶었던 그 시절과는 달리

하루하루가 재미없었다.

빵 터질만한 에피소드나 깜짝 놀랄만한 멘트도 없다.

내 삶은 버라이어티 했던 예능을 지나 어느새 차가운 다큐멘터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나도 모로는 사이에 나도 똑같은 '어른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같은 시간의 알람을 듣고 일어나 똑같은 루틴으로 출근 준비를 하고

환승하기 편한 같은 번호의 출입문 번호에서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가서 일을 하다가

출근길과 정확히 데칼코마니로 집에 돌아오는 그런 생활이

참. 슬프게만 느껴졌다.


그럼 20대 초반의 나는 무엇이 달랐을까.

지금보다 더 바쁜 시기도 있었고 (물론 모든 것이 먹고사는 문제는 아니라 할지라도)

수입도 더 적었으며, 원하는 걸 가질 확률도 더 낮았다.

더 많이 계산하고, 더 많이 따져야 했다. 

누군가를 만나기 더 힘들었고, 작은 조직에 익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더 찬란했다.

적어도 그때의 나는 내 삶을 색칠하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시간이 반짝반짝 빛나는 이유도

아마 내가 부지런히 내 시간을 칠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말에, 그녀의 행동에 혹은 그 사건이나 장소에 색을 칠해 둔 것이겠지.

언젠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눈에 잘 보일 수 있도록,

그래서 앨범이 뒤지듯이 잘 찾아낼 수 있도록.


지금의 나는 

분명 내 시간을 색칠하는 법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하루를, 또 한 시간을 흘려보내며

다시는 돌이켜 볼 수 없는, 돌아볼 일 없는

단조롭고 반복된 '그렇고 그런' 시간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내 삶을 단조롭게 만드는 건

반복되는 일상도, 변화 없는 업무도, 차곡차곡 쌓인 나이 때문도 아니다.

내 삶을 칠하지 않는 나 자신 때문이다.

분명히 오늘의 나는 언젠가 오색찬란하게 빛 나는 모습으로 남을 수 있다.

오로지 색칠은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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