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천리길을 다녀온 후, 어제는 하루 종일 밖에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 먹고 자고 쉬며 하루를 보냈다. 종일 눈 산행을 한 여파가 아직도 남아있지만, 오늘은 아침에 명상을 한 후 뒷산을 한 시간 반 정도 걸었다. 몸이 조금 무겁기는 해도 다행스럽게 이상이 있는 곳은 없다. 평상시에 꾸준히 걸은 덕분이다. 몸이 힘들더라도 꾸준히 움직여 줘야 한다. 피곤하고 아프다고 누워서 쉬기만 한다면 오히려 회복이 늦어진다. 몸을 많이 움직여서 생긴 피로는 몸을 움직이며 풀어내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축구 선수들도 경기를 마친 후에는 하루나 이틀 정도는 푹 쉰다고 한다. 몸을 재충전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다시 체력 훈련이나 재활 훈련을 통해 체력을 관리한다. 그 덕분에 풀타임 경기에 임할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다.
전에는 가볍게 걷고 싶을 때에는 집 앞에 있는 불광천을 주로 걸었다. 입고 있던 옷에 운동화만 신으면 언제든 나가서 걸을 수 있는 편안한 길이다. 그러다 한 정형외과 의사가 무릎 건강을 위해 높낮이가 있는 곳을 걷는 것이 좋다고 하여 뒷산으로 코스를 변경했다. 집 뒷산인 봉산은 그런 면에서 아주 좋은 코스다. 걷다가 더 걷고 싶으면 봉산 정상인 봉수대까지 걷거나 아니면 구파발역까지 갈 수도 있다. 집 주변에 이런 코스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리고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하니 이 또한 큰 복이다.
얼마 전, 염불 수행에 관한 글을 읽은 후부터는 정근을 하며 걷는다. 마음속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염하거나, 사람이 없을 때에는 소리 내어 염불하며 걷는다. 위빠사나, 사마타, 정근 등 모든 수행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알아차림, 즉 마음챙김이 있어야 한다. 생각이나 감각이 올라오거나 발생할 때 알아차리면 사라진다. 몸과 마음에서 발생하고 사라지는 만법의 과정을 끊임없이 알아차리고 관찰하는 것이 위빠사나 수행이다. 사마타 수행을 할 때에는 생각이 명상의 주제에서 벗어날 때 빨리 알아차려서 다시 명상의 주제로 돌아오면 된다. 정근을 할 때도 역시 다른 생각이나 감정이 올라오면 알아차리고 다시 정근으로 돌아오면 된다.
아침에 아내에게 화를 냈다. 아내가 딸네로 출발한 후 뒷산을 걸으면서 화를 낸 마음을 살펴보았다. 아내는 월요일에 딸네에 가서 금요일 오전에 집에 온다. 나는 목요일만 딸네에 간다. 아내가 집에 있는 시간만큼은 편안하게 쉬기 바란다고 여러 번 얘기를 했다. 하지만 아내는 주말을 이용해 일주일 치 반찬을 준비하느라 쉬지 못한다. 일요일에는 장모님 댁에도 다녀온다. 오늘 아침에는 평상시보다 더 다양한 반찬을 상 위에 차려놓았다. 냉장고에도 반찬이 가득하다. 어떤 반찬이 어디에 있는지 설명을 하는데 화가 올라왔다. 나를 위해 준비해 준 것은 무척 고마운 일이지만, 그 시간만큼 아내가 쉬지 못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려 오히려 화를 냈다. 화를 낼 이유가 되지도 못하고 화를 낼 상황이 아닌데도 화가 났다. 마음챙김을 순간 놓쳤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산에서 하산하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아내는 화를 낸 이유를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 괜찮고 고맙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오히려 더 미안했다.
화를 내면 마음이 불편하고 쉽게 피곤해진다. 또한 화는 아내와 나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도 못한다. 화를 냈다고 마음이 후련해지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불편함만 가득하다. 아내도 내가 화낸 이유를 잘 알면서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과를 하고 나니 우선 내 마음이 개운하다. 아내도 불편한 마음이 어느 정도는 풀렸을 것이다. 사과를 하는 것은, 또 용서를 구하는 것은 상대방보다 자신의 마음을 더 편안하고 가볍게 만든다. 그리고 그 마음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어 상대방 역시 불편했던 마음이 누그러진다. 사과와 용서는 양자 모두에게 유리한 삶의 지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화를 냈던 상황도, 미안한 마음도, 또 사과와 용서를 구했던 마음도 이미 사라져 버렸다. 과거를 붙잡을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다. 오리가 개천을 헤엄치면서 흔적을 남기지만, 그 흔적은 마치 아무 일도 없듯이 물 위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과 같다. 집에 돌아와 아내가 준비해 놓은 반찬을 꺼내놓고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차도 한 잔 마시고, 잠시 TV를 본 후 낮잠을 30분 정도 자고 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인제천리길, 밴드에 올라온 길벗의 글과 사진, 아침에 아내에게 화를 냈던 일이 마치 무척 오래전 일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과거는 스스로 꺼내거나 붙잡지 않으면 사라진다. 아침에 화를 냈던 ‘나’, 지난 주말에 인제천리길을 걸었던 ‘나’는 이미 과거의 ‘나’로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만들어진 ‘나’이지만,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있다. 지금의 ‘나’로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에 자신이 지은 업에 대한 참회가 있어야 한다. 참회는 자신을 과거에 묶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에게 몸으로, 입으로, 생각으로 잘못을 행했다면
내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용서받기를 원합니다.
또한 누군가가 나에게 몸으로, 입으로, 생각으로 잘못을 행했다면
그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나는 용서합니다.” (자애 명상 문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