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3월 말, 봄입니다. 요 며칠간 날씨가 더웠다가 오늘 아침부터 기온이 내려갔습니다. 모임 장소인 불암산역에 도착하니 눈발이 날립니다. 금방 그칠 거 같아 아무런 생각 없이 눈발을 바라보았습니다. 조금 후에는 하늘이 열리며 햇빛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늘 걷기 시작점인 당고개 갈림길에서 출발합니다. 처음에 오르막길이 시작됩니다. 햇빛은 사라지고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눈발이 다시 날립니다. 조금 후에는 눈발이 함박눈으로 변해서 내립니다. 함박눈이 반갑습니다. 봄에 맞이하는 함박눈은 우리를 환영하는 눈입니다. 그 눈을 맞으며 길을 걸으니 마음속에 기쁨이 가득합니다. 기쁜 마음도 잠시 그리고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화재로 인해 고통받는 화재민과 자연 때문입니다. 마음속으로 기도합니다. 이 눈이 부디 지금 화마가 거세게 몰아치는 곳에 내리기를 기도합니다. 이 눈이 산불 진화에 도움이 되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 눈이 화재민들에게 희망의 눈이 되길 기원합니다.
함박눈을 맞으며 걸으니 마치 겨울 산행을 하는 것 같습니다. 눈이 그치고 다시 평온이 찾아왔습니다. 햇빛이 눈을 어루만지며 녹여줍니다. 겨울에서 금방 봄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햇빛 덕분에 몸에 땀이 나며 겹겹이 입은 옷을 한 겹 벗습니다. 다시 바람이 붑니다. 구름이 해를 가리고 쌀쌀한 바람이 부니 춥습니다. 옷을 다시 껴입습니다. 봄이 금방 초겨울이 됩니다. 이번에는 싸라기눈이 내립니다. 마치 작은 우박 같은 눈발입니다. 그리고 다시 햇빛이 비추어 대지를 따뜻하게 만들어줍니다. 산에는 진달래와 개나리가 활짝 피었고, 철쭉은 개화를 위한 마지막 준비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섭리인 계절과 날씨, 꽃의 개화가 불일치합니다. 어느새 섭리는 사라졌습니다. 다만 날씨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대로 보여주고, 그에 맞춰 다양한 꽃이 개화를 합니다. 계절은 우리가 만든 개념에 불과합니다. 추우면 겨울이고, 더우면 여름입니다. 겨울과 여름, 추위와 더위 역시 우리가 만든 개념에 불과할 뿐입니다. 날씨는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가고, 꽃은 날씨에 맞춰 자신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날씨가 변덕스럽다고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한편으로는 즐겁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픕니다. 봄에 맞이하는 눈이 반가워 즐겁고, 바람이 화재를 더 키울까 걱정이 되어 마음이 불편합니다. 우리 역시 자연의 날씨에 맞춰 살아가면 됩니다. 자연은, 날씨는 우리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역할과 모습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우리는 꽃이 날씨에 맞춰 피듯 날씨에 맞춰 살아가면 됩니다. 추우면 옷을 입으면 되고, 더우면 옷을 벗으면 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날씨와 자연을 상대로 불만을 표출해 봐야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짜증뿐입니다. 이 짜증도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지, 자연이 짜증을 제공한 것이 아닙니다. 자연은 감정이 없습니다. 다만 그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감정을 만들어낼 뿐입니다. 자연이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가듯 우리 역시 우리의 모습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춥거나, 덥거나, 우리는 걷습니다. 다양한 날씨를 경험한 덕분에 날씨가 걷기에 장애로 작용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과 설렘으로 작용합니다. 날씨와 상관없이 우리는 걸을 수 있습니다. 날씨에 맞는 준비를 하는 것은 물론 필요합니다. 그것이 자연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에 대한 거부나 저항이 아닌, 자연에 대한 순응과 수용입니다. 이는 삶의 원칙에서도 적용됩니다. 삶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주어진 하루가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그 삶의 일부분은 내가 만든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삶에 대해 불만과 즐거움을 표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냥 무심하게 하루를 살아갈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