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어제 내린 비로 산은 습기를 가득 머금고 있습니다. 비 덕분에 더위가 조금 가시긴 했지만, 여전히 무덥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산 생태 공원을 오르는 산길은 촉촉이 젖어 있어서 먼지가 나지 않습니다. 촉촉한 산길을 침묵 속에 천천히 걷는 재미도 좋습니다. 굳이 침묵 걷기를 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시작되는 지점에 오르막 계단이 있어서 저절로 침묵을 유지하게 됩니다. 오르막 길을 오른 후 잠시 정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음식을 나눠 먹습니다. 걷기 위해 나선 길인지, 먹기 위해 걷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걷는 재미 중 하나가 바로 먹고 마시는 재미입니다. 또한 땀 흘린 후 마시는 시원한 맥주 첫 잔은 여름 걷기의 큰 즐거움입니다. 걷기 위해 먹지만, 동시에 먹기 위해 걷기도 합니다. 걷기 위해 마시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시기 위해 걷기도 합니다. 어느 것이 우선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먹고, 마시고, 걷는 것 자체가 바로 삶이고, 함께 걷고 먹고 마시고 친구와 함께 어울리며 지내는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우리는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비록 걷는 것이 무더위로 인해 힘들기도 했지만, 그 힘듦은 길벗의 배려와 나눔, 그리고 걷기 마친 후의 음식 덕분에 쉽게 잊습니다. 또한 다음의 힘듦을 기꺼이 기다리는 지혜도 생깁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힘듦을 피하기 위해 홀로 집에 머무느냐, 아니면 힘듦을 감수하며 고진감래를 느끼는 삶을 살아가느냐의 선택입니다. 어떤 삶도 한평생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결코 녹록하지는 않습니다. 긴 세월을 살아가는 동안 단 한 번도 어려움이 없다면 이는 진실이 아닐 겁니다. 또한 그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다면 이 역시 진실이 아닐 겁니다. 즐거움과 괴로움, 행복과 불행이 함께 존재하면서 때로는 희망을, 때로는 겸손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니 상황이 나쁘다고 우울할 필요도 없고, 상황이 좋다고 우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생은 학교입니다. 삶의 경험을 통해 직접 체험을 하는 체험학교입니다. 희망도 가르쳐주고, 겸손도 가르쳐줍니다. 삶은 행복과 불행의 연속이라는 것 역시 학교에서 살아가면서 저절로 체득하게 됩니다. 또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중함도 저절로 느끼게 만들어줍니다. 우리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더 깨닫게 되는 진리 중 한 가지입니다. 누군가의 도움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왔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왔습니다. 때로는 미워하고, 때로는 사랑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미움은 사랑의 이면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상반된 것은 한 면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는 중요한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인생학교를 통해 배워나갑니다. 사람을 통해, 책을 통해, 인생을 통해, 경험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고 성숙해집니다.
오늘도 인생학교를 잘 다녀왔습니다. 걷기는 인생학교에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매일 학교에 가서 공부하듯, 길을 걸으며 우리는 인생을 배웁니다. 길을 통해,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길벗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며 인생을 배웁니다. 함께 걸은 길벗님 덕분에 행복하게 걷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길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