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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Walk

by 걷고

이틀 후면 드디어 안나푸르나 트레킹 출발이다. 작년 말에 트레킹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는 언제 가나 했는데, 세월이 참 빠르다. 집 주변 길을 걷다 갑자기 네팔의 인사말인 ‘나마스떼’가 떠올랐다. 의미가 궁금해졌다. 검색을 해보니 ‘나마스떼’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온 전통 인사로 ‘I humbly bow to you'라는 뜻이라고 한다. ’나를 낮추어 당신을 경배합니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또한 ’당신과 내 안의 신에게 경배합니다.‘라는 의미도 있다. 여기서 의미하는 ’신‘은 ’나의 신‘과 ’너의 신‘이라는 구별이 없다. 신은 하나다. 신은 ’너와 나‘, ’흑과 백‘, ’이것과 저것‘이라는 상대적 의미가 사라진 상태다. 따라서 ’당신과 내 안의 신에게...‘라는 의미는 자신을 포함해 모두를 경배하라는 의미다. 나를 잘 모시는 것이 너를 잘 모시는 것이고, 너를 존중하는 것이 나를 존중하는 것이 된다.


이번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준비하며 마음을 살펴본다. 어떤 마음으로 걸어야 할까라는 숙제가 남아있다. 굳이 트레킹을 하면서까지 숙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번 여정을 단순히 즐기기 위한 여정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큰 마음먹고 떠나는 여정이기에 뭔가 한 가지라도 얻어 오고 싶다. 이 역시 이기심이고 욕심이다. 그래도 이런 욕심은 갖고 걷고 싶다. 그럼 무엇을 얻고 싶은가? 무엇을 가져오고 싶은가?


늘 나의 생각과 기대와는 다르게 세상은 돌아간다. 나의 노력과는 다른 결과가 찾아온다. 그러면서 배운 것이 있다. 나의 기대나 노력에 상응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오늘을 살아가야 된다는 중요한 사실과, 삶의 시련은 나를 단련시키고 나의 아만을 죽이는 신이 내리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그러니 앞으로 벌어질 미래의 일은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그리고 할 일을 하면 된다. 안나 푸르나 트레킹에서 내가 할 일은 걷는 일이다. 어떻게 걸어야 할까? 어떤 마음과 태도로 걸으면 좋을까? 결과는 어차피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나올 것이기에 결과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걷는 마음을 살피고 잘 유지하며 걸으면 된다. 즉 마음챙김하며 걸으면 된다. 무엇을 가져올까? 무엇을 얻을까?라는 생각은 망상에 불과하다. 그냥 내가 할 일, 즉 걷기에 집중하면 된다. 그러면 트레킹을 마친 후 스스로 느끼고 배우고 얻은 것이 있을 수 있다. 없어도 상관없다. 멋진 자연경관, 네팔 사람들의 삶의 모습, 같이 걷는 사람들과의 대화와 웃음, 걸으며 느끼는 다양한 상념, 고통, 행복 등을 느끼고 볼 수 있으니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한 가지 걷기 주제는 지니고 걷고 싶다. 얼마 전부터 발바닥 통증이 시작되었다. 범일님이 교체해 준 깔창을 이번 트레킹에 신고 갈 등산화에 깔고 남파랑길을 걸었고, 오늘 다시 걸었다. 깔창이 통증을 줄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깔창의 튀어나온 부분이 발바닥을 자극하고 발바닥에 미치는 충격을 분산시켜주고 있다. 30분 이상 걸으면 발바닥 통증은 사라지지만, 깔창의 튀어나온 부분은 계속 느껴진다. 그 감각은 늘 느낄 수 있다.


발바닥의 감각을 느끼며 걸으면 자연스럽게 걷기 명상이 된다. 그러다 멋진 풍경이 나오면 잠시 풍경을 감상하며 시각 명상을 하면 된다. 바람 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에 집중하며 청각 명상을 할 수 있다. 음식 맛이 맞을지 잘 모르겠지만, 낯선 음식을 먹으며 미각 명상을 하게 된다. 기본은 발바닥 감각에 집중하는 걷기 명상이 되고, 다른 명상은 상황에 따라 하면 된다. 가장 잘 느끼는 감각에 집중하며 걸으면 된다. 그것이 어떤 감각이든. 발의 통증은 내게 선물이다. 걷는 내내 명상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 줄 것이다. 마음이 방황하고 생각이 들끓을 때 이들을 붙잡아 줄 기둥이 될 것이다. 발의 통증에 감사드리고, 이 통증이 만들어 준 선물은 어떤 선물이 될지 궁금하다. 이번 여정에 함께 할 책 한 권을 결정했다. 팃낙한 스님의 ‘How to Walk 걷기 명상’이다. 이 책이 이번 여정에 함께 하게 되어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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