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안나푸르나 베이스 켐프 (ABC) 트레킹을 마치고

by 걷고

2025년 10월 25일 ~ 11월 4일까지 11일간 ABC 트레킹을 다녀왔다. 트레킹을 시작하기 위해, 또 마친 후 귀국하기 위해 이동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나흘이고, 본격적인 트레킹은 6일 간 진행되었다. 6일 중 3일 간 우중 트레킹을 했다. 이번 트레킹이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다양한 트레킹 체험이다. 우중 트레킹, 야간 트레킹, 새벽 트레킹, 설산 트레킹, 그리고 천국(지옥)의 계단 트레킹이다.


빗속을 걸으며 비에 젖은 옷과 장비를 말리는 것이 걷는 일보다 우선이 되기도 했다. 준비해 간 랜턴이 고장이 나서 암흑 속을 헤매며 걸은 기억도 있다. 그 어둠 속 집중하며 걷는 조용한 침묵 걷기는 좋은 추억이다. 로워 시누아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체험하기 위해 새벽 일찍 기상해서 어둠 속 렌턴에 의지한 채 걸었던 날도 기억에 남는다. 비록 기상 상황으로 인해 패러글라이딩을 하지는 못했지만, 밤이든 새벽이든 어둠이 주는 고요함과 차분함이 내면과 만나는 경험을 했다. 비에 젖은 상태로 ABC에 오르다 설산을 마주치는 경험도 했다. 비가 주는 추위도 있지만, 4,000m가 넘는 설산이 주는 추위도 있다. 특히 옷과 등산화가 젖은 상태에서 비를 맞으며 설산을 걷는 것은 다소 위험하기도 하지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ABC에 오르는 길은 매우 안전하게 잘 조성되어 있다. 다만 대부분의 길이 잘 정비된 돌계단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트레커들을 힘들게 만들 뿐이다. 안전이 보장된다면 힘듦은 견디면 된다. 그러니 안전한 트레킹을 택한다면 ABC가 정답이다. 그 힘듦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 되고, 이런 경험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넓혀 나갈 수 있다. 게다가 그 힘듦을 선택한 것도 자신이니,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경험하는 것은 ABC를 찾은 자연이 베푸는 선물이다.


걷기 동호회 회원 16명이 ABC에 도전했다. 그리고 단 한 명의 낙오도 없이 모두 ABC에 도착했다. 등정이라는 단어는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산사람은 ABC부터 산행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도착’이라는 단어가 ‘등정’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올레리보다 조금 더 위에 위치한 반단티까지 지프차로 이동해서 트레킹을 시작했다. 고도가 약 2,000m 정도인 반단티에서 매일 고도를 높이며 올라간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고산병 약을 매일 꾸준히 챙겨 먹은 덕분인지 모든 참가자들이 고산병으로 고생하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이 또한 축복이다. 게다가 어떤 사고나 사건도 없었다. 모두 안전하게 트레킹을 마칠 수 있었으니 이 또한 큰 고마움이다. 16명의 회원이 11일간 24시간 함께 시간을 보내며 힘든 트레킹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각자 살아온 경험과 생각이 다르기에 보이지 않는 사소한 불편감을 있었을지언정 겉으로 드러난 언쟁이나 불화는 없었다.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렸고, 서로를 위한 배려를 하며 트레킹에 집중한 덕분이다. 모두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한 성인들이고 평상시 자기 관리를 꾸준히 해 온 멋진 길벗이다. 그런 길벗과 인연을 맺은 사실이 자랑스럽다.


두 팀으로 나눠져 이동한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것도 좋은 방법이다. 16명이 모두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보다는 두 팀으로 나뉘어 이동하며 서로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누며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이동하며 느끼는 불편함과 편리함도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불편함이 편리함으로 변할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ABC 트레킹을 한다는 것은 평상시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불편함을 익숙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동 시 느끼는 불편함은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이제 ABC 트레킹이 끝났다. 각자 자신이 느끼고 배운 점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것들이 삶의 거름이 될 것이다. 트레킹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것은 이미 과거의 추억이 되었다. 과거를 붙잡을 필요가 없다. 과거는 흘려보내고,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을 살아야 한다. 트레킹의 고통과 희열,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불편함과 편리함 모두 이미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다. 그 내재된 것을 굳이 꺼낼 필요는 없다. 시간이 흘러가면 내재된 것 중 일부는 저절로 사라질 것이고, 일부는 자양분으로 남을 것이다. 그 자양분이 삶의 거름이 되어 자신의 길을 밝혀 주리라 믿는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해단식이 투표를 통해 11월 17일로 결정되었다. 우리가 걸었던 길과 추억을 영상을 통해 만나며 다시 한번 그 감동을 느끼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각자 트레킹을 하며 느꼈던 소감, 이번 트레킹 진행에 대한 의견, 또는 각자 하고 싶은 얘기를 나누며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이런 시간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의 접점 또는 상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좋은 삶의 거름이 될 수 있다. 또한 여러 길벗의 의견을 경청한 후 반영하여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걸으며 살아갈 수 있는 걷기 학교가 되길 바란다.


이번 여정을 위해 애써 주신 분들이 있다. 작년 연말 걷기에서 ABC 트레킹애 대한 공식적인 제안을 해 준 본각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준비 과정에서 많은 말들이 있었고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이 있었음에도 방향을 잃지 않고 중심을 잡고 모든 준비 과정을 맡아 준 걷자님에게 특별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어나집 여행사 대표님께서 이번 여정을 함께 하며 매 고비마다 해결책을 제시해 주셔서 우리 모두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대표님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개인적인 상황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한 도니님에게 아쉬움을 전하고 싶다. 비록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안전 트레킹을 기원하며 성금을 보내준 범일님과 오공님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단 한 명의 낙오도 없이 무사하게 트레킹을 마칠 수 있도록 자기 관리와 주변을 챙겨주신 모든 길벗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혼자였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함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번 여정이 삶의 거름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251101_081808.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How to W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