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by 걷고

장모님께서 우리 집에 오신 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거실에 침대형 소파와 책상, 의자, 안마 의자, 그리고 TV가 놓여있다. 장모님은 주로 소파에 누워 계시거나 TV를 보신다. 나는 주로 책상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데, 장모님 오신 후로 책상 사용하는 것이 불편하게 되었다. 안방에 혼자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패드를 이용해 영화를 보거나 잠자는 것 밖에 없다. 장모님께서 오신 지 일주일이 지나가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삶의 불균형으로 발생한 상황은 균형을 잡기 위한 다른 환경을 만들어낸다. 불균형이 균형으로 변하고, 다시 그 균형이 불균형이 될 때 또다시 새로운 균형을 잡고 적응하며 살아간다.


삶의 변화는 일순간 삶의 균형을 깨뜨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 깨진 균형을 다시 잡아 새로운 균형을 잡는 지혜를 지니고 있다. 강한 종(種)이 오래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 적응하는 유연한 종이 오래 살아남는다고 한다. 자신의 틀을 사수하고 자신의 방법이 옳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은 잘 살아가기보다는 오히려 갈등을 유발하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반면 상황이나 사람을 유연한 태도로 대하는 사람은 주변의 갈등을 해결하고 자기 스스로도 변화를 만들어 낸다. 이런 변화는 점점 더 자신의 틀을 확장시킨다. 자신의 사고나 행동이 지금의 틀에서 벗어나 확장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그릇이 그만큼 커진 것이고, 커진 만큼 사람이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이 확보된다는 의미다.


지금 서재로 사용하고 있는 나만의 공간인 작은 방이 있다. 이 작은 방에는 좌복과 책상, 책장, 트레킹 용품, 작은 장롱 등이 있다. 언제든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게 책상 위에 트레킹 용품울 쌓아 놓아 원래 서재의 목적은 퇴색된 지 오래다. 트레킹 용품을 정리해서 책상 위를 비운 후 거실 책상에 있었던 노트북과 책, 그리고 메모 용품을 작은 방 책상으로 옮겼다. 비로소 서재가 서재다워졌다. 우리네 삶도 이와 같다. 자신의 모습을 잃고 정신없이 살아가다 어느 순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을 비우거나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자신의 모습에서 자신이 아닌 것을 치우고 나면 비로소 자신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진흙을 걷어내면 진흙에 가려져 있는 보석이 저절로 드러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삶의 불균형을 균형으로 만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작업이 바로 자신의 방식을 변화시키거나 비우는 것이다. 변화나 비우기 위해서는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생각, 이념, 판단, 감정, 의식 등이 자신이 아니라는 중요한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 또한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을 고집하지 않고, 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보석을 둘러싸고 있는 진흙에 불과한다. 이는 삶의 직접 경험, 간접 경험, 사고 등 과거가 만들어 낸 허상이다. 우리네 삶 속에 나타나는 모든 것, 상황, 생각, 감정 등은 영화의 장면에 불과하고, 우리의 실체는 흰 스크린이다. 영화를 끄면 흰 스크린이 저절로 드러난다.


아침에 일어나 스스로 거실 내 책상을 치우고 작은 방으로 활동 공간을 옮기고 있는 나를 보자 그간 은근히 눈치를 보아왔던 아내는 마음 편안해하는 거 같다. 아내는 벌써 거실에 있는 책상 위에 작은 화분을 올려놓았다. 거실 분위기가 변했다. 거실에서 사용하던 책상 의자를 주방으로 옮기니 장모님께서 거동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이 확보되었다. 장모님은 지금 보행 보조기를 이용하여 조금 넓어진 공간을 다니며 재활운동을 하고 계신다. 나의 생각 변화와 행동으로 가족 모두 편안해하고 있다. 편안한 삶은 참 별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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