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께서 우리 집에 머무신 지 2주가 지나간다. 수술 부위는 많이 나아졌으나 원래부터 좋지 않았던 무릎 통증이 점점 더 악화되어 힘들어하신다. 그럼에도 표정도 밝아지셨고 인지도 많이 개선되어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계신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빨리 완쾌되시길 기원한다.
장모님께서 이삼일 전부터 내가 쓴 책 ‘마음챙김 걷기’를 읽고 계신다.
“책 보는 데 힘들지 않으세요? 그냥 쉬시지 그러세요.”
“시간은 길고, 할 일도 없고, TV도 재미가 없어서.”
“네, 그럼 그냥 심심하시거나 잠이 안 오실 때 읽어보세요.”
“근데, 이서방, 걸으면 정리가 되어 좋겠어.”
“아, 걸으면 생각들이 정리되어 좋겠다는 말씀이죠?”
“그래, 예전에 부부동반으로 산에 놀러 가면 남자들은 산에는 오르지 않고 산 아래에서 먹고 마시고 놀고 오기만 했었는데, 이서방 걷는 거 보니 진작 이런 방법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장모님께서 책을 읽으면서 예전 생각도 나시고 동시에 좋은 시간을 헛되이 보냈다는 생각도 드시나 보다. 그리고 사위가 밖에 나가서 걷는 것이 단순한 취미 생활이 아니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자신이 하는 일을 누군가가 진심으로 이해해 주고 지지해 준다면 삶에 큰 동력이 되고, 그 일을 하는 데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이서방, 근데 그간 힘들었던 일이 많았나 봐.”
엊저녁에 갑자기 하신 말씀이다. 이 책에는 걸으며 성찰한 내용들이 일부 실려있다. 성찰은 고통을 기반으로 일어난다.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성찰이나 작은 깨달음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들은 삶 속에 녹아나 앞으로 다가올 불편함이나 고통을 인내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준다. 또한 부정적인 실수를 자동 반복적으로 하지 않고,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리고 삶에서 마주친 상황을 과거와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 근육을 키워준다.
이 말씀을 들으며 장모님께서 행간을 읽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는 감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먹먹해진다. 사위가 쓴 책을 기념으로 선물해 드리고 싶어서 드렸다. 하지만 이 책을 장모님께서 읽으시리라 생각조차 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하루에 몇 쪽씩 천천히 읽고 계셨다. 글을 읽는다기 보다는 글의 행간을 읽고 계셨다. 먹먹해진 이유는 행간을 읽으며 내가 힘들었던 내용을 파악하고 그로 인해 당신께서 마음 쓰시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같은 책을 읽어도 누가 또는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이 쓴 책이고 독자인가에 따라 책의 내용이 다르게 전달된다. 장모님께서는 책을 읽으며 그 책의 내용을 통해 사위의 과거 고통을 읽고 계셨다.
장모님! 걱정 마세요. 괜찮아요. 이제 모두 극복한 내용이 글로 나온 것이고, 그 과정에 그만큼 단단해졌으니 제 걱정 마시고 장모님 건강 잘 챙기세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각각 다르다. 꽃을 보면서 꽃의 아름다움만 보는 사람도 있고, 한 송이 꽃이 피기 위해 자연 전체가 애를 쓰는 것을 느낄 수도 있고, 꽃이라는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과정을 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볼 때도 그렇다. 사람의 겉모습과 행동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거나 판단하면 안 된다. 그 언행 이면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이면을 볼 수 있다면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고, 설사 이해를 하지 못하더라도 사람에 대한 평가, 판단, 비난 등은 멈출 수 있다. 행간을 읽듯이, 우리는 서로에 대한 행간을 읽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연습을 통해 서로 아끼고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다.
(안나푸르나 포터의 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