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께서 우리 집에 오신 지 약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그동안 수술한 부위는 많이 나아졌고, 여전히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이동하시는 것도 처음 오실 때와 비교하면 많이 좋아지셨다. 가장 기분이 좋은 것은 이제 신문을 보시고 책을 읽으실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댁에 홀로 계실 때에도 하루에 두 시간 정도 신문을 보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책을 읽으시는 분이다. 처음 우리 집에 오실 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행동하셨는데, 이제 인지도 정상적으로 돌아오고 건강도 조금씩 회복되며 예전의 장모님 모습으로 돌아오니 기쁘다.
“책 거의 다 읽으셨네요?”
“이제 뒷부분 조금만 읽으면 끝나. 시간이 많이 남으니 신문 보고 책 읽으며 시간 보내고 있지. 근데 이서방, 자네 책을 보니 눈물이 나네. 힘든 것을 어떻게 잘 견뎌왔는지. 자네가 힘든 만큼 미애도 힘들었을 텐데. 도와주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해 미안해.”
“별말씀을, 한평생 살아가는 데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장모님도 많이 힘들게 살아오셨잖아요?”
“장인은 못됐어. 쓸데없이 큰소리치고, 자기가 가장 잘난 줄 알고 있어서. 싸움을 내가 많이 피했지.”
“이 책은 이미 지난 과정을 모두 극복한 후에 쓴 편안한 글입니다.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조금씩 인간답게 살아가게 되는 거 같아요. 고통은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 걱정 마시고 건강 회복에만 신경 쓰세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잠시 생각해 본다. 과연 평생 살아가면서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우리 모두 고통을 겪고, 극복하며 살아간다. 그 고통을 자기 안에 담고 살아가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호소하거나 거친 표현을 하기도 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자살도 자신의 의사 표현이라는 끔찍한 말도 있다. 도저히 자신 의견을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도 없을 때 스스로 내린 선택이 자살이라는 의미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그 내면을 살펴보면 마음속에 큰 돌덩어리 한 두 개씩 품고 살아간다. 스스로 망치질을 하며 잘게 쪼개어 해소하기도 하고, 침과 위액으로 억지로 녹이며 살아가기도 하고, 그냥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모두 돌덩어리를 안고 살아간다. 그 돌덩어리는 삶의 무게이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조금 더 겸손하고 주변을 살피고 자신을 내려놓고 살아가라는 경고이자 선물이다. 삶에 역경이 닥칠 때 역경을 부수기 위해 힘들게 싸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역경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삶을 담담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고자 노력하는 한, 마음은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 뿐이다. 그러지 않고 만약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내가 지금부터 살피고 이해해야 하는 사실이다’리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을 넘어 나아갈 수 있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
요즘 배우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받아들임’이다. 받아들이면 예전에 1톤으로 느껴졌던 삶의 무게게 1kg 정도로 느껴진다. 1톤의 무게가 억누르는 삶은 그 무게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지만, 1kg의 무게 정도는 옷에 묻은 티끌 털어내듯 하며 나의 길을 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1톤이든 1kg이든 모두 우리가 만들어 낸 상상의 산물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