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벗겨내기

by 걷고

태국의 한 사찰에 진흙으로 빚어진 불상이 있었습니다. 그 불상에 금이 가면서 진흙 속에 감춰져 있던 금불상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원래 우리 모두 불성을 지닌 부처입니다. 다만 그 부처가 진흙에 쌓여있어서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보지 못할 뿐입니다. 또한 진흙으로 오염된 시각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봅니다. 다른 사람도 부처인데, 오염된 시각으로 바라보기에 진흙 덩어리로 보일 뿐입니다.


스즈키 순류 선사는 어느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는 지금 그대로 완벽하다..... 그렇지만 개선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 말씀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자신의 불성을 믿고 따라가라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오랜 세월 익힌 습으로 인해 부처가 부처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돈오돈수나 돈오점수를 얘기합니다. 단박에 깨달으면 끝이라는 의미인 돈오돈수, 그리고 깨달은 후 수행을 이어가야 한다는 돈오점수.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는 시비를 하는 것 자체는 이미 의미 없는 일입니다. 깨달은 사람의 말씀이니 아무 거나 믿고 따라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즈키 순류 선사의 말씀을 빌어 돈오점수를 믿고 따르고 싶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불성을 믿고 따르며 자신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언행과 사고를 조심하고 변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스즈키 순류 선사가 말씀하신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말씀이 이 점입니다. 금불상을 드러내기 위해 진흙을 닦아내야 합니다. 닦아내는 작업은 시간과 노력과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조금 닦다 힘들다고 포기하면 다시 진흙 위에 먼지가 쌓여서 도로아미타불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오랜 기간 수행을 한다고 하면서도 아직 먼지 한 톨 또는 진흙 한 줌 떨쳐내지 못한 이유입니다. 그러니 수행을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수행을 한다며 쓸데없는 말과 행동을 했으니 진흙을 닦아내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진흙을 덧붙인 결과가 되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매우 단순합니다. 좋은 삼업 키우고, 나쁜 삼업 줄이는 작업이 바로 불교입니다. 삼업(三業)은 우리가 짓는 모든 업의 원인인 몸(身), 입(口)과 생각 또는 마음인 의(意)입니다. 수행은 이 작업을 효율적으로 하는 방편일 뿐입니다. 경전 공부는 왜 이 작업이 중요하고 필요한 지 알려주는 방편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진흙으로 감싸고 있는 이유는 자신의 생존을 위한 방편입니다. 살아가며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주어진 상황에 대해 자신만의 해석과 결정을 내리며 자신을 보호합니다. 이 과정에서 저절로 진흙을 묻히게 됩니다. 가끔 불필요한 진흙을 벗겨내기도 하지만, 그 대신 다른 진흙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벗겨내고 다시 덧붙이는 반복적인 작업으로 인해 윤회가 발생합니다. 자신을 위한 방편이 오히려 윤회의 반복이라는 괴로움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이 고리를 끊어내야 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자신이 부처임을 알고 믿고 수행하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윤회의 고리를 끊어낼 날이 오겠지요. 그런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게 하기 위해 오늘도 진흙을 닦아내는 방편으로 걷고, 글 쓰고, 명상하고, 사람을 만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진흙을 묻혔나요? 아니면 한 톨이라도 덜어냈나요? 올해 제가 자신에게 던지는 화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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