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구가 한 말이 떠오른다. 사람을 바꾸려 했는데 잘 되지 않고, 대신 나 자신을 바꾸니 상대방이 다르게 보인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날씨와 사람이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날씨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자연환경이다. 날씨를 바꾼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날씨를 원하는 대로 바꿀 수가 없다. 오히려 날씨와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 역시 바꾸려고 노력해 봤자 힘만 빠질 뿐이다. 오히려 사람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 서로 화합하며 지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날씨나 사람을 바꾸거나 극복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날씨에 순응하고 사람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날씨와 사람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았다.
날씨는 늘 변한다. 종 잡을 수가 없다. 일기예보는 앞으로 변화될 날씨를 예측하는 것에 불과하고, 그나마 잘 맞지도 않는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온다. 구름이 가득하거나 하늘이 청명하다. 바람이 거세거나 미풍이 불어오기도 한다. 바다에도 잠잠한 수면이 나타나기도 하고, 파도가 무섭게 불어닥치기도 한다. 하지만 하늘은 늘 하늘 자체로 평온하고 바다도 늘 바다의 모습대로 고요하다. 사람도 늘 변한다. 웃거나 운다. 건강하거나 아프다. 사랑하거나 미워한다. 젊거나 늙어간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은 늘 그대로이다. 나쁜 일을 한다고 해도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니고, 그 행위가 나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서 그 사람을 평가한다. 사람의 원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고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 판단한다. 이는 하늘에 구름이 껴있다고 해서 하늘이 늘 구름으로 가득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파도를 보고 바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구름이 변한다고 하늘이 변하지 않듯이, 사람의 겉모습이 변한다고 해서 본성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언행의 이면에 숨어있는 본성을 존중해야 하고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모든 불화와 투쟁은 저절로 사라진다. 분별이 사라진 곳에 평온이 저절로 드러난다. 구름이 걷히면 하늘의 모습이 드러나듯.
날씨를 통제할 수 없듯이, 사람 역시 통제할 수 없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반작용만 커진다. 이때 할 수 있는 방법은 날씨와 사람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와 시각을 바꾸는 것이다. 어제 미웠던 사람도 오늘 아침에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의 기분이 나빠서라는 것을 알 때도 있다. 그러면 미움이 미안함으로 변한다. 그 미안함을 전달하면 상대방은 어제의 불편함 대신 고마움을 느낀다. 날씨도 이와 같다. 비가 온다고 바람이 분다고 걷지 않는다면, 비 오는 날 운치 있는 걷기를 즐길 수 없게 되고, 바람 부는 날의 시원함을 느낄 수 없게 된다.
날씨와 사람은 무상이라는 자연의 진리를 깨닫게 만들어 준다. 오늘의 날씨와 내일의 날씨는 같지 않다. 심지어는 한순간의 날씨와 다음 순간의 날씨도 같지 않다. 날씨는 늘 변한다. 무상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사람같이 보여도 실은 다른 사람이다. 하루만큼 더 늙었고, 어제의 기분과 오늘의 기분이 다르다. 무상이다. 무상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평온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늘 변한다는 진리는 우리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좋아하거나 싫어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좋다고 붙잡을 필요도 없고, 싫다고 밀어낼 필요도 없다. 그냥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굳이 바꾸려 애쓸 필요도, 뭔가를 이루려 애쓸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지금 이 순간의 날씨를 즐기는 것이고, 지금 이 순간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친구는 날씨와 사람이 같다는 통찰, 날씨와 사람은 바꿀 수 없다는 통찰. 그리고 이 통찰을 통해 자신의 시각과 태도 변화로 이들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삶의 지혜를 깨달았다. 그 친구의 통찰 덕분에 이 글이 나오게 되었다. 그 친구가 행복하길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