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일 기도

by 걷고

“광주 서구 무각사 청학스님. 19년 동안 5,000일 기도를 마치는 그는 ‘막상 기도를 마친다고 생각하니 가보고 싶은 곳도 없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딱히 없다. 매일 기도하는 이 방석, 이 자리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260130)


2007년 8월 13일부터 시작하셨다 하니 18년간 이어온 기도다. 이 기도는 2026년 2월 7일에 회향한다. 매일 세 번의 108배와 금강경 독송을 하셨다고 한다. 휴대전화와 자동차를 없애고 바깥출입을 하지 않으셨다. 두 가지 도구는 모두 외부 세계와의 소통과 연결을 의미한다. 전화는 누군가와 소통하는 도구이고, 자동차는 소통을 하기 위해 이동하는 도구이다. 주지 스님이라는 소임을 맡고 계시면서 이 두 가지를 끊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주지 스님의 소임을 충실하게 수행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그런데 주지 스님의 역할이 무엇일까? 주지 스님을 사찰을 운영하는 분이다. 운영하기 위해서는 시주금도 필요하고, 시주금을 위해서는 신도를 만나야 한다. 근데 청학 스님은 이 두 가지를 끊고 나니 신도들이 사찰로 찾아오셨다고 한다. 사람을 만나러 밖으로 나가느냐, 아니면 사람들이 만나기 위해 찾아오느냐는 만남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그 방편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기도하는 스님을 만나기 위해 신도들이 저절로 찾아오면서 주지 소임 역시 저절로 이루어졌다. 기도만 하면 할 일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예전에 부안 월명암을 자주 찾아갔던 적이 있다. 처음 방문했을 때 사찰은 거의 쓰러져가고 있었다. 매년 방문할 때마다 점점 도량다운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 사찰에 참배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40분 이상 급한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필요한 짐을 운반하는 모노레일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타기에는 위험해서 가능하면 신도들을 태우지 않는다. 그런 작은 암자에 신도들이 자주 찾아오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데 매번 불사를 하고 계셨다. 그 당시 주지스님께 여쭤봤다. “스님, 불사를 하기 위해서는 기금이 필요한데 어떻게 조달하세요?” 스님께서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 믿고 합니다. 부처님 집을 짓는 것이니 부처님이 알아서 하시겠죠.”


오늘 기사를 보며 월명암의 주지스님이 떠올랐다. 스님의 기도 공덕과 울력 덕분에 월명암은 안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선원을 갖춘 도량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청학 스님께서 무각사에 부임하실 당시 무각사는 상황이 열악했다고 한다. 지금은 광주 불교뿐 아니라 문화예술의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한 스님의 원력과 기도 공덕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세상과 인연을 스스로 끊고 기도 정진을 하며 당신이 해야 하는 역할, 즉 기도를 묵묵히 한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심신의 휴식 공간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수행을 위한 자발적 고독은 더 많은 사람을 품기 위한 고독이므로 자신만의 안위나 현실 도피를 위한 고독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자발적 고독을 통해 자신의 틀을 깨고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나 온 세상과 하나가 된다. 스님은 그 방편으로 기도했다. 기도의 힘은 꾸준함이다. 미련할 정도로 우직하게 꾸준히 해 나가야 한다. 그 방법을 청학스님은 우리에게 직접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언젠가는 스님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사찰을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부처님 집을 잠시 관리하고 있는 관리인이기에 소유욕 없이 주인에게 돌려주고 미련 없이 훌훌 떠나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다. 기도는 결국 자유를 찾는 여정이다. 자신과 세상과 함께 하며 동시에 그들로부터 얽매이지 않는 자유, 그 자유를 찾기 위해서 스스로 자유를 억압한다. 휴대전화와 자동차를 없애며 스스로 세상과의 소통과 만남의 자유를 억압하고, 그 억압을 통해 더 큰 자유를 찾은 후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 함께 어울리며 살아간다.


심우도의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入廛垂手)는 중생제도를 위해 속세로 나아감을 뜻한다. 청학스님은 우리에게 이 단계를 직접 몸으로 보여주셨다. 스님의 건강과 원만 회향을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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